• 가난을 디딤돌로 금속재료제조 분야 최고 자리에 오르다
    대한민국 명장(금속재료제조 직종) 탁영준 (주)포스코 기술연구원 공정시험섹션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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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라는 좌우명처럼 힘든 과정 속에서 습득한 노하우는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탁영준 명장에게 지난해는 잊지 못할 한 해였다. 35년간 몸 바쳐온 금속재료제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 ‘대한민국 명장’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쟁기로 힘들게 밭을 일구는 모습을 보고 금속에 대한 호기심을 느꼈다는 탁 명장. 가난의 단편으로 기억된 쟁기를 디딤돌로 금속재료제조 분야 최고 명장 자리에 오른 그에게 성공은 어떤 의미일까. 그 뜨거운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이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기술인의 꿈을 꾸셨나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쟁기를 끌던 부모님 모습이 생각납니다. 소가 끌어야할 쟁기를 사람이 끌어야할 만큼 참 가난한 시절이었지요. 꿈을 꾼다는 것조차 사치였던 그 때,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겠다는 생각 하나로 전액 무료였던 포철공고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 87년 포스코에 입사해 22년간 제강 연속주조분야에서 근무했지요. 블룸연속주조, 슬라브 연속주조를 거쳐 STS연속주조부문에 두루 종사했고, 지금은 기술연구원에서 연속주조, VOD 수모델장치를 실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포스코에 입사해 제강공정을 눈으로 확인하던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그토록 깊게 각인되었던 쟁기를 이곳에서 만들고 있더군요. 무슨 인연이었을까요. 그렇게 35년간 금속재료제조 분야 기술인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금속재료제조 직종에서 33개 특허를 가지고 계십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포스코 입사 초기에는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가던 시기였기에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원망과 공허함이 있었지요. 그런 저를 잡아준 것이 취미로 시작한 마라톤과 사내 제안제도였습니다. 마라톤이 자신감과 끈기를 키워주었다면, 사내 제안제도는 기술의 재미를 일깨워주었어요.

당시 사내 제안제도는 설비개선이나 장치개발 후 효과가 좋으면 특허로 연계해 고유 기술로 확립해주었는데, 내 이름을 단 특허가 늘어나는 기쁨이 참 크더군요. 그렇게 꾸준히 출원한 33개의 특허들을 인정받아 2016년 금속재료제조 분야 경상북도 최고장인, 2018년 우수 숙련 기술인,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명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요?

2018년 세계 최대 사이즈의 수직연주기가 건립되고 조업정상화요원으로 파견되었던 때가 떠오르네요. Pos Mega Caster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신설 연속주조기 조업을 정상화 시켜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현장의 우수 요원들이 파견되었고 기술연구소 에서는 제가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조업 초기 때가 1월이었는데 영하 16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냉각수 배관은 얼어 터지고 조업은 되지 않고 손끝은 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시행착오는 줄지어 일어났고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조업조건을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가는 과정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설비 문제점을 프로젝트 과제로 풀어 2건을 성공시켰고 이와 연관된 특허 3건도 등록했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조업정상화를 완료하고 복귀할 때쯤에는 날씨가 영상 39도를 웃돌았는데, 외기가 39도 정도면 연속주조기 앞은 영상 6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지금도 가장 춥고 가장 더웠던 한 해로 기억하고 있지요.
 

현재 Pos Mega Caster는 연 3만 톤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장 앞에는 최초 생산한 100톤 슬라브가 기념비로 우뚝 서 있고 조업정상화 요원 이름이 일일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곳에 새겨진 제 이름을 볼 때마다 가슴 뿌듯합니다.

 

꾸준히 특허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대상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좋아하게 되면 관심을 갖고 더 자세히 깊게 살피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문제점이 보이고 해결점까지 찾을 수 있는 법이지요. 저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한 번에 해결하기 보다는 넣어두었다 수시로 꺼내보는 편입니다. 어떨 때는 화장실에서 유레카를 외칠 때도 있지요. 길을 걷다 독특하거나 예쁜 제품을 보면 한참을 감상하기도 하고, 발명대전 같은 전시회 참관도 즐깁니다. 기발한 작품들을 보면 요즘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소름이 돋지요. 그런 사물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접목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원천인 것 같습니다.
 

현재 주력하고 계신 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속주조는 제철공정 중의 한 공정으로 쇳물을 제강공정으로 이송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합금철을 첨가해 강철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후 압연공정으로 이어지는데 이때 불순물이 생기면 제품 전량을 폐기해야 할 만큼 품질에 큰 영향을 주는 공정이지요.
 

특히 공장설립이나 설비변경 시에 사전 실험을 통해 최적의 현장 조업조건을 도출하는 일이 중요한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연속주조 수모델 실험장치’입니다. 이 실험장치 개발에 참여해 특허기술 6건을 출원했으며, 중국장가항 공장 및 포항 신설공장 가동, 18년 세계 최도구대 사이즈 수직연주기 가동 등을 지원해 철강소재 품질향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명장님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명장이 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직종에 30년 이상 재직하다보면 저 뿐 아니라 누구나 명장 이상의 기술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지요. 한 분야에서 기술력을 정량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특히 조국에 인정받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큰 영광인 것이죠.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요. 선정된 직후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분들의 그늘 없이는 오늘 이 영광도 없었을 겁니다.
 

대한민국 명장이 되신 후 느끼는 감회가 있으시다면요.

인생은 바둑과 참 비슷합니다. 바둑을 둘 때 포석이라고 하지요. 태어나면서 오른쪽 귀퉁이에, 초등학교 들어가며 왼쪽 귀퉁이에 돌을 하나 놓았을 겁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포스코에 입사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둑돌 놓기를 이어 나갔겠지요. 그렇게 30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돌들이 군데군데 집을 만들고 대한민국 명장이란 큰 집으로 퍼즐조각이 맞추어지듯 이어져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명장이 되겠다는 대단한 포부를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매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돌 하나씩을 놓았을 뿐이지요. 대신 작은 일도 쉽게 넘기지 않았고 쉬운 일보다는 어렵더라도 의미 있는 길로 가려 애썼습니다. 간혹 사석도 있고 오점도 있겠지만, 그 모든 돌들이 이어져 지금의 자리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간 가슴에 새겨 오신 신념이 있으신가요?

‘氷凍三尺非一日之寒’ 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중국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중국 속담인데요. ‘얼음이 3척 두께로 얼려면 하루의 추위로는 안 된다’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이 하루 춥거나 하루 따뜻하다고 해결될 수 없어요. 모든 일에 정성이 필요하고 정성에 정성을 거듭해야 비로써 조금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좋아하게 됩니다. 인간관계도 일도 다 마찬가지지요.
 

앞으로의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요?

혼자만의 기술과 성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위에 계신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려웠겠지요. 이제 그것을 주위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현재 공부 중인 재료공학 박사과정을 잘 마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이후 기술을 후배들에게 체계적으로 전수해 우리나라가 세계최고 철강기술로 우뚝 서는데 일임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명장은 ‘등대와 같다’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후배 기술인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길을 알려주는 등대 말이죠. 저도 선배 명장들을 보며 걸어 왔듯이 후배 기능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든 세월이 30여 년 지나면 모든 것들이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포석을 하는 중에 대충 대충 했다거나 회사 생활을 할 때 나태하게 돌을 놓았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 또한 인생이고 전환점이 될 수 있어요. 지금 현시점에서 어디에 어떻게 돌을 놓을 지만 고민하시면 30년 후에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되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업데이트 2022-06-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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