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지수와 청렴한 세상
    글 박인환 변호사(전 흥사단투명사회운동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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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행복은 과연 어디서 구할 것인가. 행복은 정녕 잡을 수 없는 파랑새인가. 행복은 소극적으로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이고 적극적으로는 쾌락과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행복을 느끼는 정신적 상태는 개인의 생활환경이나 조건, 인생관,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행복은 과연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수치화될 수 있을까. 현대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은 경제력(구매력)에 비례하고 욕심(소유욕)에 반비례한다. 결국 개인이 행복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개인의 구매력을 높이는 물질적 접근과 함께 소유욕을 줄이는 정신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을 제일 먼저 들고 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고 ‘중용의 덕’을 실천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했다.
 


행복과 물질의 상관관계 

지난 3월 ‘세계 행복의 날’을 맞이해서 UN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행복보고서는 2012년부터 매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안전망, 건강 기대수명,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 관용 정신, 부패지수 등 6개 항목의 3년분 조사 자료를 토대로 개별 국가의 행복지수를 산출해서 순위를 매겨 왔다.
 

2019년~2021년분 자료를 토대로 한 올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 순위는 146개 나라 중 59위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제력이나 사회복지 수준 등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순위다. 항목별로 보면 GDP(26위)와 건강 기대수명(4위)에서는 상위권이나 부패지수 등 나머지 항목에서는 거의 하위권이다.
 

흔히들 행복은 돈이나 물질에 비례하지 않는다면서 세계적 빈곤국가에 속하는 부탄이나 네팔의 행복지수가 세계 1, 2위라고 오해해 왔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발표된 부탄이나 네팔의 행복지수는 90위 내지 100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 면에서 행복지수는 경제력과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5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그 뒤로는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웨덴, 노르웨이, 이스라엘, 뉴질랜드가 차지하고 있다. 북유럽 선진 복지국가들의 강세가 올해에도 계속된 셈이다. 결국 소득이나 사회복지 수준이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불평등하게 기회를 독점하는 부패 

지난 2월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발표한 2021년 전 세계 국가별 부패지수(CPI)에서 우리나라는 180개 나라 중 32위로 나타났다. 이는 ‘공정성인식’, ‘기관신뢰도’, ‘준법의식’ 등을 통한 부패인식지수로 평가된 것이다. 그 중 ‘준법의식’ 평가는 자기 자신이 평소 법을 어느 정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종합 평가에서 핀란드와 덴마크, 뉴질랜드가 청렴 국가로 공동 1위, 노르웨이, 싱가포르, 스웨덴이 공동 4위에 오르는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는 반부패 청렴 국가로서도 장점을 보이고 있다. 이는 행복지수의 산출에 부패지수를 반영하도록 한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부패는 불평등하게 기회를 독점하거나 선점하려는 태도이다. 부패는 불공정한 과정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공짜심리에 기인한다. 부패는 필연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성경에는 ‘일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말라’고 했지만 부패에 물들면 아무도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 부패는 부를 축적하면서 비교하는 심리에 따라 건전한 근로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결국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부패는 개인적으로는 불행의 길, 국가적으로는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
 

‘행복경제학’의 창시자이자 ‘지적 행복론’의 저자인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다. 이제 행복을 원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데 힘쓸 것이 아니라 가정생활과 건강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게 좋다. 다시금 2000년 전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업데이트 2022-09-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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