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노동시장이 청년 일자리 막는다(문화일보, 2015.1.19)
박영범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지난해 우리나라 고용 상황이 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취업자는 2559만9000명으로 전년 대비 53만3000명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 폭은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업에 의한 기저효과가 반영된 2002년 59만7000명 이후 최대치다.
산업별로는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취업자 증가를 주도하면서 농림어업의 감소 폭 확대, 금융 및 보험업의 감소세 전환을 상쇄했다. 특히, 우리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이 10만 명 이상 늘었다. 취업자 증가로 고용률 지표도 개선돼 15~64세 고용률은 65.3%로(정부가 당초 기대했던 65.5%에는 못 미쳤지만) 0.9%포인트 올랐다. 일자리의 질도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계약이 1년 이상인 상용직이 44만3000명, 임시직이 14만 명 늘고 일용직이 3만5000명 줄었다.
고용이 양적으로 대폭 늘어나고 구조가 개선됐음에도 질 제고(提高) 측면에서는 국민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통계 분류상 상용직은 같은 직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를 의미하는데, 계약직 근로자,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15~29세의 청년(靑年)실업률이 9.0%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 상승이 구직을 포기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면서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있던 상당수의 젊은이가 구직 활동에 나선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으나, 첫 직장을 잡은 청년의 20.1%가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것은 우려스럽다. 청년층의 1년 이하 계약직 비중은 전년(21.7%)보다 약간 낮아졌지만 관련 통계가 처음 작성된 2008년의 11.5%에 비해 2배, 2011년 이후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신성장동력, 뿌리산업 분야의 중소기업에 취업한 고졸 근로자에게 근속 1년마다 연 100만 원의 근속장려금을 3년 간 지급하고, 청년인턴에게 주는 취업지원금의 액수와 대상을 확대하고 있으나, 청년층의 고용 증가와 질 제고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 등에서 좋은 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고, 중소기업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 특히 노동시장이 개혁돼야 한다. 2013년 기준으로 청년층 고용률은 3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0.9%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 학벌이 중시되는 노동시장에서 고졸자 10명 중 7명이 대학을 진학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잡는 데 평균 1년 이상 걸린다. 학벌이 중시되고 연공(年功)에 의해 보상이 결정되는 닫힌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이 첫 직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가 그다지 활용 가치도 없는 과도한 스펙을 쌓기 위해 많은 비용을 치르고, 졸업을 유예하면서 대학을 5~6년씩 다니고 있다.
지난해 일자리 증가의 82.4%를 50대와 60대가 차지한다. 하지만 50, 60대 일자리 증가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아래서 생산성을 고려할 때 지나친 보상을 받고 있는 중장년층이 정규직에서 밀려났으나 아직 일자리를 잡지 못한 자식들을 위해 경비 등 비정규 일자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지난 연말 노사정은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본격적인 협의를 약속했다. 고용 관행, 임금체계 등 노동시장의 근원적인 개혁에 대한 노사정의 조속한 합의를 기반으로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