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제한 철폐와 능력중심사회 [경기일보, 2014.8.14]
박영범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앞으로 근로자를 모집하고 채용할 때 학력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
취업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도록 규정한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의 차별금지 항목인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학교, 혼인, 임신, 병력에 ‘학력’이 추가된다.
연구소에서 석사나 박사학위 소지자에 한해서 인력을 뽑는 것은 법 위반이 아니지만, 인력관리를 이유로 대졸 이상 혹은 고졸 이하로 학력을 제한하는 관행도 불합리한 차별로 간주된다.
처벌 조항이 없어서 강제력은 없으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되는 추세에 비추어 공공기관이나 상당수 대기업은 채용 시 학력을 제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학력을 속이고 입사했다 발각이 됐다고 해도 해고사유가 되지 않는 것은 법원 판례로 이미 오래 전에 확립된 것이다.
10여 년 전에 대학 졸업을 숨기고 고등학교 졸업사실만 기재하고 입사하여 노조활동을 주도하다가 학력 허위 기재를 이유로 회사 측이 해고한 근로자에 대해 법원은 부당해고로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경력 사칭을 이유로 징계해고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근로 3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를 위법한 행위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고, 또한 “청년실업률 증가 등으로 종래 고졸 이하 학력을 가진 근로자들이 주로 취업하던 직장에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고학력자를 채용하지 않는 것은 학력에 의한 차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의 생산직 근로자 채용에 대졸자도 지원하는 길이 열리면서 오는 8월 22일부터 시행되는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은 산업현장에서 색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의 고졸 생산직은 대졸자보다 급여도 많고, 정년까지 고용보장이 되기 때문에 고졸 이하라는 채용조건이 완화(?)되면 많은 대졸자들이 지원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렵게 정착되어 가는 고졸취업 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과도하게 학력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노동시장에서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젊은이가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채용 조건을 학력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 차별될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학력별 구직자의 임금충족률(구직자의 평균 희망임금 대비 채용 기업들이 제시한 임금의 비율)을 보면 학력이 높을수록(104.3인 중졸 이하를 제외하면) 임금충족률이 낮다.
고졸 취업자가 110.4로 가장 높았고, 전문대졸 106.6, 대졸 104.8의 순인데, 특히 대학원 졸업자는 98.6으로 구직자가 원하는 급여보다 실제 받는 액수가 적었다. 학력이 낮을수록 기대임금이 높지 않은 영향도 있지만, 고학력자의 절대 수가 늘어나면서 대졸 눈높이를 채울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는 학력이 아닌 능력중심사회의 구현이다. 그러나 학력만이 유일하게 노동시장에서 인적자원을 평가하는 수단인 상황에서는 학력중심의 노동시장 관행을 개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올해로 개발이 완료되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대한 기대도 크고 그만큼 정책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숙련수요를 잘 반영하는 NCS가 개발되고 현장의 변화하는 수요에 맞추어 부단히 개선된다면 학력을 대체하는 노동시장에서 인적자원을 평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NCS는 교원들의 현장 경험이 부족한 특성화 고교와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을 보다 현장 숙련수요 중심으로 개편하는 기저도 된다.
교육부는 NCS에 기반을 둬 특성화고교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130여 개의 전문대학 중 100개 대학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선정의 가장 큰 준거의 하나가 교육과정을 NCS에 기반을 둬 개편했느냐의 여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