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타계한 서울대 김정룡 교수는 일반인들에게‘간박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73년 B형 간염 바이러스 항원을 혈청에서 분리해내는 데 성공한 김 교수는 1979년에는 B형 간염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인증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김 교수가 세계 최초 개발한 백신에 생산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시간을 끄는 사이 프랑스와 미국이 연달아 백신개발에 성공했고 효도 수출상품이 될 뻔한 백신은 오히려 비싼 수입상품이 돼버렸다. 신속한 국가 법률 제정이 국민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는 역사적 사례다.
최근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일자리다. 근래 공유경제와 관련한 각종 사회마찰에서 보듯 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문제는 직업능력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그간 심화돼온 청년실업 문제는, 청년이 원하는 기업 환경과 기업이 원하는 직무능력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으나 이를 서로 맞추지 못하는 것이 근본이유로 지적되었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5~29세 청년층이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업하는 데 평균 10.8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평균 졸업 소요기간이 4년 3개월이니 대한민국 청년은 취업을 위해 평균 5년이 넘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셈이다. 또한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자신의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신입사원 평균 근속기간은 1년 5개월에 불과하다. 우리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과 근로현장 적응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학습병행은 정부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스위스에서 2014년부터 도입한 산업현장 실무형 인재육성 제도다. 기업과 학교가 손잡고 1~2년의 기업맞춤형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해서, 근로자의 조기 직업능력개발과 고용안정 뿐만 아니라 기업의 체계적인 인재양성을 통한 생산성 향상도 가능하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소형무인기정비, 가상훈련시스템설계·검증 등 미래 산업의 유망 훈련 직종을 추가하였고, 고숙련 일학습병행(P-TECH)을 통해 융합·신기술 중심 인재양성도 추진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중인 기업 관계자들은 “중소기업도 인사 계획을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 있고, 미래 동력과 성장을 획기적으로 이끌 수 있는 혁신제도”라고 평가하였고, 참여 학습근로자들 역시 “체계적인 훈련으로 맡은 직무의 원리를 알 수 있어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고 답했다. 현재까지 8만 5천여 명의 근로자가 일학습병행 사업에 참여했으며 참여기업도 1만 4천여 개에 이른다.
그간 일학습병행 사업은 직접 관련된 법안이 없어 적극적 지원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참여기업 지원, 학습근로자 보호, 훈련 수료 후 고용에도 한계를 가졌다. 하지만 지난 8월 27일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이제 법적 근거를 마련해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사업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제 1년 후에는 시행되어 기업이 원하는 직업능력을 근로자에게 훈련하고 근로자가 원하는 안전한 기업 환경을 만드는 ‘한국형 청년 교육훈련 국가기반사업’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당나라 시대 선승 임제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했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세상만사가 진실하다는 뜻이다. 기준을 세우는 것은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이번 법제정으로 이제 청년취업과 산업현장 훈련에 있어 ‘맞고 틀림’을 가눌 수 있는 우리만의 ‘기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일학습병행법’이 학습근로자에게는 권익 보호를 위한 울타리가 되고 기업에는 인재양성의 지름길을 열어 행복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