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이제 바퀴가 달린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다. 지구환경을 지키고 첨단기술로 자율 주행이 가능하며 전기 배터리로 달리는 거대한 가전제품으로 그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쉬지 않고 진화하는 자동차 정비 분야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공부하는, 미완(未完)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물, 2020년 선정된 자동차 정비 명장 유재용 그룹장을 만나 보았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
광주광역시 현대자동차 광주서비스센터 하이테크지원팀 그룹장으로 일하는 유재용 명장의 사무실은 손님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 컴퓨터 한 대와 기술 전문 서적, 자동차 수리 기술서들이 가득했다. 자동차 정비 기술자의 방이라기보다는 학자의 방 같은 느낌이다.
“요즘 자동차들은 일반 차량이 아닙니다. 내연기관(연료의 연소가 기관의 내부에서 이루어져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는 기관)은 점점 사라지고, 모든 게 자동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자동차는 두 개의 축, 즉 친환경과 자율주행차로 갈 거예요. 자동차가 핸드폰 바뀌듯 바뀌는 겁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그 차들을 따라갈 수 없어요.”
유재용 명장이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시기는 1993년, 현대자동차서비스센터 공채 1기 수석으로 들어온 것이 그 출발이었다. 자동차 수리는 고교를 졸업한 뒤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따서 군대에서 정비병 생활을 한 것이 최초였다.
“어릴 때를 돌아보면 특별히 자동차를 좋아했다거나 기계를 좋아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다만, 성격은 내성적인데 좀 집요한 구석이 있었지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손에서 놓지를 못했으니까요.”
여기에 타고난 근면함과 성실성이 더해지니, 끊임없이 숙제를 던져주는 자동차 정비 분야는 그에게 딱 맞는 맞춤옷 같은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재용 명장이 입사해서 자동차 정비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20년, 30년씩 되는 경력을 가진 대선배들은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운 존재였고 모든 장비가 코앞에 착착 세팅되어 있지 않으면 선배들은 일도 시작하지 않던 시절이다.
“신차가 나올 때마다 회사에서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았지만, 현장에서 다진 ‘경험’이야말로 정비 기술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어요. 차종은 몇 종류 되지 않았고, 그 차 수리에만 수십 년 경력을 가진 선배들은 소리만 듣고도 어디가 고장났는지 알 정도였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가파른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변화는 새로운 니즈를 만들어냈다. 내연기관이 사라지고 컴퓨터가 차 안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과거 차 정비로 쌓은 경력은 점점 무용지물이 되어 갔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능을 장착한 새 차가 나오는 시대,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고 이는 유재용 명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 명장은 원래부터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쓰는 인물로 유명했다. 신입 시절 홀로 7시 30분에 출근을 시작, 30분씩 앞당기면서 새벽 5시 출근을 습관으로 만들어버린 지 십수 년. 그렇게 새벽 출근을 한 유 명장은 컴퓨터를 켜서 자동차 관련 최신 뉴스를 찾아보고 관련 기술 서적과 인문학 서적을 읽는다. 하이테크 그룹장들끼리 매일 아침 한 시간씩 하는 화상회의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룹장들은 이 회의를 통해서 현안을 의논하고 품질개선 문제를 발표하면서 전국에 일어났던 자동차 정비기술 관련 정보를 공유합니다. 정보와 정보를 결합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만들어진 사안들은 또 다른 부서에 전달하는 거지요.”
유 명장이 이처럼 치열하게 현장 업무를 하면서도 조선대 대학원에 들어가 기계공학 석사를 받은 것은 자동차는 ‘공학’이라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유 명장이 주변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히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자동차 사내 강사로 20년 넘게 강단에 서고 우수숙련기술자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실력도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무엇보다 그의 성품이 숱한 후배들을 따르게 만든 것이다.
“제가 아는 것들은 당연히 후배들에게 전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죠. 후배들이 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 또한 묻고 도움을 받습니다. 기술 공유는 지금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해요. ‘내가 누구인데’ 하는 이런 체면이나 권위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모르는 건 누구에게나 묻고 배울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가 정비업무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명장이라는 무게에 대한
쉼 없는 숙고
유 명장은 숱한 공적을 쌓아왔다. 차량 관련 사내품질 제안은 1,200여 건에 달하고, 신차가 나오면 품질과 관련해 작성하는 품질 정보보고서를 통해서도 수많은 개선을 이루어왔다.
엔진을 제어하는 컴퓨터가 특정 영역대에서 RPM이 불안정해, 해당 데이터를 잡은 뒤 로직을 설계해달라고 요청해 설계에 반영시키고, 배터리 방전이 열 번도 넘게 계속된 차량에서 단자에 없어야 할 회로가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해 수정하도록 하기도 했다.
자동차 정비를 하다 보면 기존제품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수리를 위해 특수장비와 공구도 직접 만들어 냈다. 특허 6건, 디자인 특허 8건은 그 결과물이다. 특히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센터의 특성상 까다로운 고객을 만족시켰을 때의 성취감은 그 어떤 결과물보다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다른 곳에서 수리를 못 해서 여러 차례 입고됐던 차를 여기서 완벽하게 수리했을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내가 당신 때문에 또 현대차를 산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지요. 그렇게 만난 고객들과 맺은 오랜 인연은 제게 소중한 자산입니다.”
2020년도 대한민국 명장(자동차정비 분야)으로 선정된 후 회사에는 여전히 커다랗게 플래카드가 붙어있지만, 그는 ‘명장’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자동차 정비의 경우, 끊임없이 진화하는 분야이니 과연 내게 명장의 자질이 있는지 끊임없이 묻게 됩니다.”
이 질문은 그가 앞으로도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답변인 셈이다.
“제가 가진 기술들을 정리해서 책을 내고 싶습니다. 퇴직 이후에는 학생들을 기초부터 탄탄하게 교육하고 배운 기술을 어떻게 적용하고 접목할지 가르치고 싶어요. 봉사활동도 더 적극적으로 하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후배들에게 언제나 기초학습을 튼튼히 하고, 아는 만큼 현장에서 실천하라고 독려하는 유재용 명장. 그에게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 돌아보게 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치열하게 오르게 하는 가장 어렵고 묵직한 그 ‘무엇’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약력
1993 현대자동차 서비스센터 입사
2007 현대자동차 정비기술경진대회 동상
2011 소방의 날 소방방재청장 표창
2012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15 근로자의 날 대통령 표창, 국제기능올림픽대회
2015 한국위원회 회장 표창
2015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선정
2020 대한민국 명장 (자동차 정비 분야)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