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질 개선으로 경영 혁신을 이루다
    대한민국 명장(품질관리) 기능한국인 제147호 제일전기공업주식회사 김용규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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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절실함’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
생계가 달린 절박함에 배움에 대한 의욕이 뒤따르니 명장에게 모든 상황은 곧 기회가 되었다.
가장 시장성이 높은 제품을,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 제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품질 관리가 그러하듯 매 순간 한 치의 오차 없는 선택과 집중으로 걸어온 김용규 명장의 삶을 들여다본다.
 


제대로 하고자 하는 성미

부산 사하구에 있는 제일전기공업주식회사. 1955년에 설립된 이곳은 국내 최대의 전기 배선·배전기구(IOT·스마트배선기구/스마트분전반/차단기/전자개폐기 등) 제조업체이다.

관련 업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이곳에 오늘의 주인공이 있다.

올해로 자그마치 45년, 품질관리 분야에서 익힌 기술로 기업 경영 혁신에 한 획을 그으며 평사원에서 부사장의 자리에 오른 김용규 부사장이다. 품질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기질로 경영 혁신을 이뤄온 그에게 2020년, 대한민국 품질명장의 영예가 주어졌다. 걸어온 길에 찬사를 보내는 듯한 명장의 명패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모든 공정에 가장 기본은 품질이라고 말하는 김용규 명장.
 

“Quality·Cost·Delivery는 각각 품질, 원가 경쟁력, 납기를 의미합니다. 원가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품질을 의미하죠. 개발 단계에서부터 불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라인별로 불량이 발생했을 시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객 만족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품질 개선과 공정 혁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김용규 명장이 처음 품질관리 분야에 발을 디딘 것은 옛 국방부 조병창 군무원에 합격하면서부터다.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 학업을 놓을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당당히 기회를 잡아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합격했다.
 


하고자 하는 집념도 강했던 만큼 열심히 해서 산학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닌 후, 국방부 조병창 군무원 모집에 응시하여 1975년 입사했다. 우수한 기계설비와 전문 기술을 보유한 조병창에서 선진 기술과 품질 시스템을 배웠다. 이때 일반기계기사2급, 소방설비기사2급, 실기교사(기계)교원자격증, 품질관리기사1급 등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품질관리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입사 1년 뒤에는 부산공업전문대학 기계과를 다니며 이론과 현장을 오갔다. 지금껏 품질관리 분야에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벽함을 기하는 성미는 이때부터 다진 것들이었다.
 

“그때 정한 목표가 ‘부장(部長)’이 되는 거였어요. 직장에서 내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라고 생각했지요. 여기 보시면, 노트 중간 중간에 부장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어요. 항상 목표를 되뇌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명확한 목표와 더불어 꼼꼼하고 철저한 일처리 덕에 품질 개선 등에서 성과가 남달랐다. 신제품 개발관리, 초기 유동 관리 등 자동차 부품 생산용 특수 치공구 개발 및 품질 개선 활동에 대한 기여로 대표이사 표창을 받고, 사내 품질강사를 맡기도 했다.

 

‘부장’을 넘어 부사장이 되다

점차 입지를 다져가던 해, 중소기업에서 스카우트가 제의가 들어왔다. 모 기업의 생산과장 자리였다. 이때 명장은 조병창과 같은 대기업에서는 전문대학 학력으로 부장이 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을 했다. 무엇보다 자리를 옮기면, 그간 쌓은 품질 관리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이직한 새로운 환경에서 설비 제작, 원가 관리, Worst Item 개선 등 생산관리 전반에 대해 배웠다.
 

“당시 스카우트 제의를 한 사람이 해당 기업의 생산부장이었어요. 상급자인 그분에게 일을 배웠는데, 약 6개월이 지나니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관리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평을 들었죠. 그때 또 한 번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신뢰를 다지며 성장해가던 중, 기업에 어려움이 닥치고 사업을 철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다 제일전기공업(주) ‘품질부장’ 자리로 옮기면서 조병창 근무 시절, 목표로 세웠던 부장의 꿈을 20년 만에 달성했다.
 

당시 품질 문제가 있었던 상황에서 명장은 전 직장에서 익혔던 현장관리 노하우와 개선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부서원들과 함께 품질 혁신을 이루어나갔다. 이후에는 생산 방식에까지 관여했다. 이때 과감히 셀 라인(Cell-Line) 방식과 유 라인(U-Line)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량 생산 시스템이 아닌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도입해 제품 경쟁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려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
 

“품질 혁신 활동이 1년 정도 되면서 품질이 안정 궤도에 올라서고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그 결과 3년 만에 품질부서장과 생산이사를 거쳐 상무이사 공장장이 됐습니다. 최단기간 승진이었죠.”
 

이렇게 회사가 안정적인 기반을 다질 무렵, 지인의 부탁이 있었다. 그 부탁으로 2004년, 모 노래반주기 회사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옮긴 곳에서 전반적인 경영에 대해 경험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끌어올린 시기였다.

 

기술력으로 쌓아 올린 길

그렇게 6년여 정도가 흐른 2010년, 제일전기공업에 전문 경영인 부사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회사는 적자가 이어져 제품의 금형비 지급이 어려울 정도로 매우 힘들었던 상항이었다. 김용규 명장이 분석한 결과, 원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원인이 저품질에 따른 생산성 저하에 있었다.
 

“품질이 나쁘면 생산성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생산하는 양은 정해져 있는데, 불량이 지속해서 발생하면 그만큼 원가가 높아지죠. 들여온 자재 수량에 맞게 정확히 생산할 수 있도록 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라인당 생산량을 철저히 계획하고, 불량/결함 발생 시 곧바로 전사 시스템에 반영하여 알람이 울리게끔 해 품질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도록 했다. 공정 개선으로 원가 절감이 이뤄졌고, 그 결과 1년 만인 2012년에 4~5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성과급을 지급했다. 성과에 따른 보상이 확실하니 직원들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이러한 모든 노하우는 김용규 명장이 직접 분석하고 개발한 ‘품질관리를 위한 CQ-6 Tool’ 및 ‘Cell Line 운영관리를 위한 CC-5 System’에 담겨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제일전기공업의 모든 시스템은 ‘스마트화’되어 있다. 성과에 힘입어 2016년 품질경영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회사는 2016~2020년 5년간 ‘품질 경쟁력 우수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과 ‘청년친화기업’에 선정되는 등 이미지 제고에서도 효과가 두드러졌다.
 

 

“회사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중소기업’하면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우리 제일전기공업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회사로 꼽히죠. 구성원 모두 이곳에서 꿈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고, 언젠가는 이곳을 발판으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합니다.”
 

올해 회사는 매출액 1,600억 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관리자와 구성원 모두의 노력일 것이다. 김용규 명장은 후학들을 위한 강연에서 꼭 전하는 말이 있다. “누군가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하고, 언젠가 할 일이라면 즉시하고, 어차피 할 일이라면 최고가 되자”라는 것. 어려운 환경에서 기술로서 이 자리에 올랐듯이 ‘기술이야말로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 그 분야 최고가 될 수 있는 힘’이라고. 오랜 절실함을 안고서 걸어온 길. 단단한 기술 위에 얹은 성과가 오래도록 빛나는 순간이다.

 

약력

1975  국방부 조병창 및 대우정밀 근무

1980  부산공업전문대학 기계과 입학

1996  제일전기공업(주) 상무이사 공장장

2002  동의대학교 산업기술대학원 산업공학과 공학석사

2010  제일전기공업(주) 대표이사 부사장

2016  대한민국 품질유공 대통령 표창

2019  기능한국인 및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20  대한민국 명장(품질관리 분야) 선정

 

업데이트 2021-08-0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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