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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꽃보다 더한 열정으로 대한민국 제강 기술을 이끌다
    대한민국 명장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강부 2제강공장 전로 부문 김영화 취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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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9월, 포스코에 경사스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 35년간 한결같은 열정으로 포스코 전로 부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능력을 발휘해온 김영화 취련사가 마침내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는 뉴스였다. 정년퇴직을 앞에 두고 기술인으로서 가장 큰 명예를 선물 받은 그, 김영화 명장을 만나러 포항으로 달려가 보았다.


제철소의 주요 기술자, 취련사의 꿈

철처럼 강하고 쇳물처럼 열정을 내뿜을 강한 기술인을 상상하며 만난 김영화 명장은 뜻밖에도 한없이 푸근하고 인자한 옆집 아저씨와도 같았다. 명장 선정에 대한 소회를 묻자 대번에 형언 못 할 기쁨과 감사함을 전하는 표정 또한 마치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순수하다.
 

반평생을 1,700도에 달하는 쇳물을 다뤄온 김영화 명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취련사(吹鍊士)’이다. 취련사란 취련 작업을 하는 전문가를 일컫는 말로 자동차, 배 제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제철소의 주요 기술자이다.
 

용산공고 재학시절부터 금속을 다뤄온 그는 타고난 근성을 가진 소년이었다.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의 이러한 성향은 고교 시절은 물론 회사에서 기술을 배울 때도, 일하며 석·박사 과정을 밟을 때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포스코에 입사한 이유요? 한 편의 영화 덕분이었습니다. 『팔도강산』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아버지가 전국 팔도강산에 뿔뿔이 흩어져서 사는 자식들의 초대로 유람여행을 떠나는데 자식 중 한 명이 포항제철이라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거기 나오는 공장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연고가 전혀 없었음에도 꼭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포항까지 내려가 시험을 봤습니다.”
 

김영화 명장이 옛 시절을 생각하며 활짝 웃는다. 1986년에 포스코에 입사한 그는 취련사의 보조역할만 5년을 했다. 지금이야 자동화된 시스템 덕분에 1년 반이면 개인 코드를 받아 취련 업무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절대 쉽지 않은 길이었다. 까마득한 선배들 얼굴은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웠고 업무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온도 측정은 쇳물에 온도계를 꽂아서 쟀고 쇳물도 직접 떠야 했다니 그 위험도와 긴장도가 얼마나 높았을지 미루어 짐작하기도 어렵다.
 

“일이 너무 힘드니까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이 못 견디고 많이 떠났습니다. 야근 후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자리도 많이 가졌는데 저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입사 초기에는 회식자리가 매우 곤혹스러웠어요. 그래도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취련기술을 배우고 익혔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술을 익힌 그는 5년 만에 개인 코드를 부여받으면서 마침내 한 명의 당당한 취련사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철처럼 강하게,

쇳물처럼 뜨겁게

제철 제강 분야에서 취련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용광로에서 철을 녹여 만든 쇳물에 고압의 산소를 불어 넣어 인, 황, 탄소, 규소, 망간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취련사의 숙련도에 따라 제품의 재료가 되는 쇠의 품질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번 작업할 때마다 전로에는 용선 쇳물과 고철 수백 톤이 들어가는데, 취련 정련 후 그 쇳물인 용강을 Slab, Bloom으로 만들어 굳히면 우리가 흔히 보는 자동차나 배를 만드는 철판이 된다. 당연하게도 금속제품의 원재료가 되는 쇠를 만드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강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시스템적으로 강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쓸모 있는 강을 제조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오직 기술자의 숙련된 노하우와 판단으로 만들어집니다. 예로 솥 밥을 지을 때 어머니들이 각자의 노하우로 짓잖아요. 얼마나 물을 넣어야 하는지, 불은 언제 키우고 줄여야 하는지 등 그런 부류의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작업 중 가장 까다로운 공정은 ‘인 [P]’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 [P]’을 10ppm 이하로 낮게 만들지 않으면 압연 시 압하력에 의해서 쇠에 금이 가버리기 때문이다. 김영화 명장은 ‘인 [P]’을 완벽히 제거하기 위해 일하는 내내 꾸준히 연구했다. 한방에 되는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이치를 터득했고 전문 이론을 알기 위해 대학원 공부까지 시작했다.

‘인 [P]’을 뽑는 모든 경우의 수를 빼곡하게 적어 놓은 손때 묻은 노트도 십여 권에 달했다.
 

“현재 우리 회사의 경우 매우 안정적으로 ‘인 [P]’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사의 경우 아직도 그 기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기술들을 철저히 기밀 사안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인 [P]’을 잘 제거하면 불량률이 엄청나게 낮아지고 제품 납기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원가와 물류비 절감은 물론 회사 신용도까지 높아질 수 있다. 김 명장은 그래서 ‘인 [P]’을 없애는 것은 굉장히 장점이 많은 중요한 과정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35년간 쇳물과 함께한 영광

김명화 취련사에게 명장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것은 분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취련 기술력이다. 그러나 김 명장은 지금의 자기를 만들어준 것은 포스코와 직장 동료, 선후배 그리고 가족이라고 말한다.
 

“제가 공부를 하는 동안 동료들이 많이 고생했습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제 빈자리를 메꿔준 건 전부 동료들이었거든요. 학교에 강의하러 다닐 때도 모두 묵묵히 옆에서 응원해주고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도 해줬습니다. 또 제가 공부하는 동안 옆에서 같이 잠도 못 자고 내조해준 아내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꼭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제강 공장에서 나가는 강종만 무려 600여 종, 화학성분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모르는 상황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메꿔주는 것은 바로 동료들과의 협업이라는 김 명장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취련은 팀워크로 작업합니다. 전로 하나에 3명이 작업하는데 한 사람은 취련, 한 사람은 노 운전, 한 사람은 프로세서를 제어해요.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작업을 완수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소통하고 독려하면서 의견을 나눕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양보하지 않는 부분은 딱 하나, 안전과 관련된 부분이에요. 일하다가 화상을 입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퇴직을 앞둔 김영화 명장의 꿈은 하나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후배들과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과거에, 고집으로 자신이 터득한 기술을 움켜쥔 채 놓지 않고 있다가 결국 그대로 사장되는 기술들을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이 얼마나 컸던가. 

 

“한때 기술이 천대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기술은 국가의 근간을 이룹니다.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열쇠를 가진 전문기술자 여러분이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고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요. 저 역시 퇴직 이후에도 명장의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35년간 쇳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던 시간, ‘명장’이라는 묵직한 이름을 갖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 김영화 명장은 힘껏 달려갈 준비를 이미 마친 것처럼 보였다.

 

약력

1986 포스코(포항제철) 입사

2004 제강기능장 취득

2007 금속제련기술사 취득

2010 서라벌대학 겸임교수

2015 선린대학 겸임교수(현재)

2016 금속 공학박사 취득

2017 경상북도 최고장인

2020 주조기능장 취득

2020 대한민국 명장(금속재료제조) 선정


업데이트 2021-09-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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