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백리 정신과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 3741    

글. 양세영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공동대표 

 

조선조 세종대에 대사헌을 역임했던 정갑손(鄭甲孫)은 청백리로도 유명하다. 함길도 관찰사로 근무하였을 때의 일이다. 마침 임금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가는 도중 지역 향시 합격자방이 붙어, 유심히 보니 아들 오(烏)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정갑손은 곧 시관을 불러 꾸짖었다.

“내 아들은 공부가 아직 부족하거늘, 어찌 요행히 임금을 속이려 하느냐.” 그러고는 아들의 이름을 지워 없애버리고 시관까지도 부당하게 처리하였다는 이유로 파면시켰다. 이는 자기가 관찰사로 있으면서 그 지방 시험에 자기 아들이 합격했다고 하면 분명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것을 우려한 것이자, 자식이라도 그 실력을 냉정히 평가함으로써 아들의 학문을 보다 더 증진시키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참고: 국민권익위, 나라의 오동나무는 관아의 것이다)
 

 

앞으로는 공공기관에 가족의 채용이 제도적으로 제한된다. 공개채용 등 경쟁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고위공직자 등의 가족을 채용하는 것은 금지된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상황을 예방하고 부당한 사익 추구 행위를 근절하는 내용의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 2021년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정갑손의 아들은 향시라는 공개채용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오늘의 법적 기준에서 보면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시의 관행 등을 고려할 때 청백리로서 더욱 엄정한 자기관리의 모범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갑손의 ‘청렴정신’은 지금도 소중한 교훈이 아닐까 한다.
 

2013년 제19대 국회에 법안이 처음 제출된 후 8년만에 입법화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은 시행령 제정 등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 5월 19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UN, OECD 등 국제기구에서는 오래전부터 공공부문의 부패예방을 위해 회원국들이 이해충돌방지제도를 도입하도록 강조해 왔으며,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공직자의 이해충돌이 핵심 이슈가 되어 이를 엄격히 관리해 오고 있다. 그래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선진국형 청렴제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이 법이 제정됨으로써 우리나라도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이해충돌방지제도를 갖추게 되었고, 우리 사회의 청렴 수준을 한 차원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동 법은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하여 공직자의 신고·제출의무 5가지와 제한·금지행위 5가지 등 총 10가지의 행위기준을 담고 있다.

① 사적이해관계자 신고·회피·기피 및 조치 (제5조, 제7조) : 사적인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16개 유형의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고 그 업무를 회피

② 공공기관 직무 관련 부동산 보유·매수 신고 (제6조) : 부동산을 직접 취급하는 공공기관 공직자와 그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존비속이 해당 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부동산을 보유·매수하는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

③ 고위공직자의 민간 부문 업무활동 내역 제출 (제8조) : 임기 개시일을 기준으로 최근 3년간의 민간 부문 업무활동 내역을 제출

④ 직무관련자와의 거래 신고 (제9조) : 공직자, 배우자, 직계존비속(배우자의 직계존비속으로서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 포함) 등이 공직자의 직무관련자와 금전, 부동산 등 사적 거래시 신고

⑤ 직무 관련 외부활동 제한 (제10조) : 직무와 관련한 지식·정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행위 등 직무수행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외부활동 원칙적으로 금지

⑥ 가족 채용 제한 (제11조) : 공공기관(산하기관, 자회사 포함)은 공개채용 등 경쟁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고위공직자 등의 가족 채용 금지

⑦ 수의계약 체결 제한 (제12조) : 공공기관(산하기관, 자회사 포함)은 고위공직자 또는 그 배우자, 직계존비속(배우자의 직계존비속으로서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 포함) 등과 수의계약 체결금지

⑧ 공공기관 물품 등의 사적 사용·수익 금지 (제13조) : 공공기관이 소유하거나 임차한 물품·차량·건물·토지·시설 등을 사적으로 사용·수익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사용·수익하게 하는 행위 금지

⑨ 직무상 비밀 또는 미공개 정보 이용 금지, 부정한 이익 몰수·추징(제14조, 제27조) : 공직자(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 포함)는 직무상 비밀 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이익을 취득할 경우 처벌, 그 이익은 몰수·추징

⑩ 퇴직자 사적 접촉 신고 (제15조) : 직무관련자인 소속기관의 퇴직자(공직자가 아니게 된 날부터 2년 이내의 자에 한함)와 골프, 여행, 사행성 오락을 하는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 등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인 공직자(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등)는 약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비록, 어느 공공기관 사태를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제정된 법이지만 청탁금지법과 함께 공직자들의 사익추구를 통제함으로써 청렴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오랜 국민적 요구가 배경이었다는 점에서 공직자의 의식과 공직문화가 법의 취지에 맞게 조속히 변화될 필요가 있다.

법의 추상적인 규정들도 명확히 해석되고 풍부한 사례도 사전에 폭넓게 교육되어 공직자의 이해도가 증진될 필요도 크다. 그래야 법의 효과적인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공기관과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 등 민간 영역에서도 동 법의 취지와 내용을 잘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이 법이 지향하는 ‘청렴한 세상’은 민관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업데이트 2021-11-01 14:17


이 섹션의 다른 기사
사보 다운로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