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영운(동상, 한국국제협력단)
* 2020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Story. 1 세네갈에서 느낀 자격증 취득의 필요성
나는 석 달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중등교장을 마지막으로 40여 년의 교육공무원으로서 정년퇴직을 하고,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 교육정책자문관으로 선발되어, 아프리카 세네갈 교육부에서 2년간 파견 근무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많은 편이라 설, 명절이 돌아오면 젊은 봉사단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곤 했었다. 교육부 현지인 친구들도 집에 자주 찾아왔다.
Story. 2 두 번의 실패, 합격의 밑거름이 되다
한 해는 설 때 세네갈 다카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봉사단원들과 다른 자문관들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집으로 초대했다. 전날 시장에 가서 소고기, 생선, 마늘, 파, 콩나물 등 많은 음식 재료를 사 왔다. 그전에 아는 한인을 통해서 떡국과 미역 등을 사두었다. 10여 명의 손님들이 찾아왔고, 떡국 등을 차려 대접했다. 그런데 떡국 맛이 이상했다. 거의 떡으로 쑨 죽 수준이었다. 나중에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떡을 마지막에 넣었어야 했는데 나는 처음부터 넣어서 끓였기 때문에 이상한 떡국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제주도에서 흔히 먹던 고기 국수를 대접한다고 자문단을 집으로 초청했다. 세네갈은 무슬림이 95% 정도가 되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다. 주로 양고기와 소고기를 먹는다. 결국 마트에서 수입 베이컨을 사다가 육수를 내었다. 그런데 국수가 푸석거리고 덜 익은 밀가루 맛이 그냥 배 있었다. 전화로 집사람으로부터
또 핀잔을 받았다. 국수는 세 번 정도 끓을 때마다 찬물을 부어주면서 익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하는 자취 생활도 처음이고, 요리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 매번 실패한 음식 대접에 항상 죄송함을 느꼈다. 설 명절에 죽이 되어 버린 떡국, 설익은 국수, 물이 맞지 않은 밥, 항상 같은 찌개와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너무 힘들고 슬펐다. 또 가장 필요한 김치조차 담글 줄 모르니 식생활이 엉망이었다. 오랜 해외 생활을 하면서 조리 기능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기회가 닿으면 제대로 익혀 보고 싶었다.
Story. 3 주경야독으로 합격한 필기시험
귀국한 후 우선 조리학원을 찾아갔다. 가장 기본적인 음식과 반찬 몇 가지를 익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학원에 가보니 기본 요리 과정은 없었고 모두가 기능사 또는 취업 전문가 과정뿐이었다. 그래서 기능사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30여 명이 등록했는데, 대부분이 여성이고 남자는 나와 또 한 분, 딱 둘이다. 내가 가장 연장자다.
기능만 배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론을 우선 익혀야 한다고 했다. 내용은 식품 위생론과 법규, 식품 위생 및 공중 보건학, 식품학, 조리원리 및 원가계산 등이다. 이젠 기억력과 순발력 그리고 학습 능력도 한참 떨어져서 필기시험에 두 번 응시하겠다고 2회의 원서와 응시료를 지불했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교재를 보며 열공했다. 어떤 때는 새벽까지도 불을 켰고, 또 출장으로 서울에 갔다 올 때는 비행기에서도 교재를 폈고, 지하철에서도 책을 옆에 두어야 불안하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인지 가장 좋은 성적으로 첫 도전에 합격했다.
Story. 4 본격적인 요리의 시작
이젠 요리 기능과 실기를 익혀야 했다. 한식 조리의 가장 기본은 무 채썰기다. 가늘고 일정하고 예쁘게 썰어야 하는데, 들쭉날쭉 굵고 가늘고 엉망이다. 하루에 2가지씩 매일 실습했다. 56가지 요리를 익혔다. 오이선, 어선, 육원전, 섭산적, 너비아니, 칠절판, 화전, 매작과, 배숙 등 대부분 생소한 이름과 메뉴들이었다. 그 사이에 세 번이나 손가락을 베어 소위 선혈이 낭자한 과정을 겪기도 했다.
매일 칼, 도마, 밥솥, 냄비, 각종 식기류를 큰 에코백에 담고 학원과 집을 걸어서 오갔다. 20분 정도의 거리여서 운동 겸 그래도 괜찮았다. 조리사 복장을 갖추고 실기 시험에 응했을 때의 두려움과 또 경건함을 잊을 수 없다.
어쨌든 국가기술자격증을 딴 기쁨은 남다르고 뿌듯했다. 이번에는 양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한식이 가장 어렵고 양식은 쉽다고 하는데 나는 양식이 오히려 더 힘들어 보였다. 슈림프 카나페, 피시차우더 수프, 스파게티 카르보나라, 솔모르네, 뮈니엘, 치키 알라킹, 바비큐 폭찹 등 33가지 요리의 레시피를 익히고 순서에 맞게 잘 조리해야 한다.
Story. 5 첫 실패를 맛보다
나는 진도 따라가기가 언제나 버거웠다. 원장님은 나를 특별히 배려해 세심히 가르쳐 주셨다. 세 차례의 도전 끝에 드디어 양식조리사 국가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조금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중식이다. 한식, 양식에 익숙해져서인지 중식 자격증은 한 번 도전해서 합격했다.
Story. 6 전과는 달라진 나의 일상
이제는 죽도 제대로 쑬 수 있고 또 밥도 쌀의 상태에 따라서 최적의 비율로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스페니쉬 오믈렛도 월도프 샐러드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유산슬과 유니짜장도 능숙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집사람은 수시로 자격증 있는 사람이 집 음식도 해야 한다고 성화다. 나는 다시 동티모르 교육부 교육행정자문관으로 선발되어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해외 생활에 대한 기대도 결기도 든든했다. 봉사단원들과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음식과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맛보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티모르는 우리 상록수 부대원들이 독립의 기반을 다지다가 다섯 분이 산화하기도 했던, 2002년 독립한 최신생국이다. 동티모르 교육부에 자문관으로 봉사하면서 거의 매주 시장을 보고 김치도 담그고, 요리도 하고 봉사단원과 자문단들도 초대하여 전보다는 안정되고 즐겁고 유쾌한 자취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두 한식, 양식, 중식, 세 가지 조리사 기능을 익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금 큰 소망에 가득 차 있다. 작은 음식점에서 주방 보조의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또 앞으로 요리기능을 더 열심히 잘 익혀서 가정과 사회와 세계에 맛있는 우리 음식을 충분히 알리고 제공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