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 호텔리어에서 모래사막을 나는 항공기 승무원까지
    글. 김은수(장려상,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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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도 성공 해외취업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도전의 서막,

Grand Hyatt Banquet Server

어느 날 학과 게시판에서 우연히 K-Move 안내문을 보며 영어 전공 인문계 전문대생으로 평범한 나의 이력이 화려해질 기회를 만났다고 직감했다. 영어권 국가이면서 비교적 짧은 비행거리와 서양인에게 주눅 들며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곳, 싱가포르만큼 적합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었다.
 

공단과 함께한 싱가포르 호텔 취업 프로그램으로 영어면접 준비와 호텔 인턴십 외에도 여름방학을 이용해 영어캠프 봉사활동과 해병대 캠프, 10km 마라톤도 참여했다. 한양여대 K-Move 호텔리어 프로그램을 마치고 싱가포르에 도착해 처음 마신 공기는 독특했다. 지금은 너무 반가운 냄새지만 그때는 집을 떠났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냄새였다. 외국에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든든한 동기들과 함께하니 직장인이 되어서도 계속 학교에 다니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싱가포르 5성급 호텔, 그랜드 하얏트. 나와 몇몇 동기들은 연회장에 배정되었다. 연회장은 호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 있는 업무다. 행사에 맞춰 공간과 장식을 결정하고 오디오, 조명, 식음료 메뉴 등을 정하고, 손님맞이와 마무리 정리까지. 어제는 스탠다드차타드의 VIP 초청행사, 오늘 오전은 일본 분재협회 사모님들의 자선행사, 저녁에는 브랜드 론칭 파티. 프라이빗 다이닝을 선보이던 나의 직장 생활.

그러나 파티가 끝난 뒤 허무함이 찾아오듯 잘나가던 연회장에 비수기가 찾아오고, 상대적으로 바쁜 업장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당시 우리가 다른 업장(레스토랑)의 유니폼을 입고 구내식당에서 슈퍼바이저들을 만나면 그들의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나 호텔에 남의 일이란 것은 없었다. 호텔 전반에 걸친 업무 경험은 인재로 성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호텔리어에서 승무원의 길로

업무에 적응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이 들던 차, 같이 살던 친구와 여행을 다녀왔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여행은 당시 내 상황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돌연 호텔리어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5성급 월드 와이드 호텔에 몸담았었다는 어쭙잖은 패기로 한국식 호텔 업무환경에 타협하고 적응하지 않겠다며 다른 길을 찾았다. 취준생이 된 2013년도에 싱가포르의 생활을 곱씹으며 중국어를 배울 걸, 호텔리어로 더 성장할 걸, 편입해서 일과 공부를 잡을 걸 하는 자책도 있었지만, 다시 해외취업이 가능하면서 가끔 한국에 돌아올 수 있는 외국항공사 승무원의 길에 우연히 들어서게 되었다.
 

사와디캅의 도전, Air Asia

싱가포르 호텔리어의 경험으로 운명의 회사 ‘에어 아시아’에서 1,400명의 지원자 중 최후의 14인이 되었다. 에어 아시아는 2014년 태국 방콕에 ‘타이에어 아시아엑스’를 설립한 후 ‘방콕-인천’ 노선 운항을 맡길 한국인 승무원 직접 채용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싱가포르에서 친구와 여행을 다닐 때 경비 절감을 위해 선택한 LCC 에어아시아의 승객 탑승 경험과 동남아시아 근무 경험이 면접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급격히 인상된 연봉과 태국 현지 물가를 고려한 두 번째 해외 생활은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회사는 비용을 아끼지 않고 1기 외국인 크루들을 돌봤고 승무원으로 처음 마주한 세상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과 커리어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5년 차 크루가 되어가던 중,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외로움도 커졌다.
 

5성급 항공사, 중동 항공사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카타르 항공’은 2017년 중동에 고립된 채 살 길을 강구했고 공격적인 마케팅과 채용공고로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 에어 아시아에 근무하며 이직을 준비하기는 쉽지 않았다. 애정을 쏟은 만큼 헤어지는 기간도 길었다. 이직 준비만 1년 반. 2018년 겨울,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카타르 항공’ 면접에 당당히 합격했다. 고향 같은 존재인 에어 아시아를 뒤로하고 중동으로 날아갔다.
 

모래사막을 날다(feat. Qatar Airways)

카타르 항공 경력직 신입 승무원. 운 좋게도 교육 감독은 태국인과 결혼한 말레이시아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 세상이 판을 짠 건가 싶었다. 전 직장에서 탄탄하게 쌓은 비행기 기종 및 안전교육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덕분에 5성급 항공 서비스 교육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아시아에 집중했던 에어 아시아와 다르게 전 세계 160개국으로 출근하는 카타르 항공 스케일에 압도당했고 다양한 기종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른에 첫 유럽 땅을 밟았다.
 

카타르는 전체 인구의 80%가 외국인이라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회사 내에도 130개국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이 있었다. 비행 내내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세상을 알아가는 이 시간이 소중했다. 다가올 2020년이 정말 기대되는 마음으로 겨울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의 일상 침범

그러다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에 새로운 형태의 비행을 하게 됐다. 마스크, 장갑, 고글, 일회용 가운과 함께하는 거리두기 비행. 코로나로 나와 같은 입장인 해외취업자와 유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 자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데 그걸 가장 바로 옆에서 돕는 동료 승무원들의 노고가 크다는 것을 안다. 나도 2020년 4월 싱가포르 비행을 마지막으로 무급휴가를 신청해 귀국했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도 해외취업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외국인 근로자로서 살아남겠다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내가 자랑스럽다. 영어 공부를 위해 선택한 길에서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술까지 습득하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하루빨리 종식되길 전 세계에 흩어진 친구들과 기원 중이다.

아직 날개를 접을 때가 아니니,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재정비하며 우리를 떠난 여행이, 일상이 돌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공단의 K-Move로 시작되어 대한민국에서 받았던 특혜와 대학의 지원 그리고 나를 지탱하게 해준 지인들의 격려와 사랑의 힘을 세계를 향해 떠나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베풀고 싶다.


 

업데이트 2021-12-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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