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기술자격으로 다시금 되살린 삶
    2021년 국가자격 취득자 수기공모전 대상 수상작 - 글. 라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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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출신, 손목 절단 사고,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으로 의 이직 등 굴곡 있는 삶 속에서 국가기술 자격을 취득하며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삶이 변화되었던 경험을 공유합니다.
과거의 저와 같이 꿈이 없거나 무엇이 하고 싶은지 모르거나 긴 시간 방황하는 분들께 긍정의 동기부여로 다가가길 희망합니다. 

* 2021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Story. 1 사춘기, 모범생에서 문제아로 180° 변화

어린 시절 꿈이 없었다. 아니 찾지 못했다. 학교에 다님과 동시에 3개의 개인 학습지, 3개의 학원에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친구를 만나기보다 펜을 들고 있었고, TV에 나오는 만화보다 학원 칠판이 더 익숙했다.
 

진로를 정할 때조차 부모님은 공부‘만’을 말했고 그렇게 ‘사춘기’라는 이름과 불타는 반항심으로 방황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모님의 뜻대로 인문계 진학 뒤에 공부를 손에서 놓았다. 참았던 화산이 분출하듯 180° 다르게 변했다. 오토바이를 타며 밤새 배회하고, 신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다니며 금전은 배달 아르바이트 등으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1년, 대학 진학을 위한 주변 친구들과 실력 차이를 더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틈나면 경찰서를 내 집처럼 드나드는, 흔히 말하는 ‘양아치’가 되어있었다.
 

Story. 2 내 삶의 신의 한 수, 기능사

자유인과 같은 생활도 어느새 지나가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위탁교육을 추천해주었다. 위탁교육 참여자는 나와 비슷하게 공부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정말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 두 부류였다. 고3 위탁 과정 참여자는 기능사 필기가 면제되고 실기 응시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때 ‘국가기술 자격증 항공기 기체 기능사’를 취득했고, 이것이 차후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렇게 기능사를 취득한 뒤 성취감과 함께 항공정비사의 꿈을 키웠다.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해 공군 엔진 정비 분야로 입대하여 공군 F–16 전투기 항공기 기관병으로 엔진의 정비를 배웠다.

전역 이후 꾸준히 항공정비사를 준비하는 중 어이없게도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손목을 지나는 정중, 요골, 척골, 신경과 동맥 2개 건, 힘줄 등 약 85%가 절단되는 사고로 생사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다행히 국내 수지 접합 분야 최고 권위를 가진 원장님께서 마침 당직이셨고, 사고 이후 1시간 이내에 응급으로 수술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수술 후 한동안은 손을 사용할 수 없었다. 오른손으로 가는 신경과 건, 힘줄 등이 끊겨버린 것이다. 새로 연결한 신경과 근육, 건 등을 되살리기 위해 집중 재활실에서 재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아주머니부터 지긋이 나이가 든 분, 외국인 노동자까지, 재활실에 있는 100명 중에 95%가 산업 현장에서 벌어진 사고로 온 이들이었다. 그렇게 약 1년의 재활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Story. 3 산업 현장의 산업안전관리자

우연한 기회로 공항철도 철도정비 분야 하청 업체로 취직했다. 약 100명이 철도 차량정비를 수행하는데, 나는 5조 3교대를 하며 정비를 비롯하여 안전·보건 업무를 맡았다. 재활과 동시에 현장의 위험을 보는 시야를 키우고 안전에 대한 현장 개선을 이어나갔다.
 

4년 차에 접어드는 어느 날, 반장이 산업안전기사 공부를 한다며 쉬는 시간 내내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안전에 대하여 자부심이 있었는데 툭 던지는 이론 질문에 관해 대답하지 못했고, 반장이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호승심을 던져놓았다. ‘이 자격증은 어려워서 넌 이 자격증 합격 못 할 거다’ 그렇게 필자에겐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산업안전기사는 삶을 바뀌게 하였다. 밤새워 공부했고, 틈새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점차 진화하여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회사 출근→ 퇴근→ 구립도서관’의 루트로 오로지 회사 업무와 자격증, 이 두 가지 위주로 생활하며 6개월가량 최선을 다했다. 아직도 산업안전기사 합격의 짜릿함이 종종 생각나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취득한 기능사와 군대 정비병, 철도정비 분야의 경력 사항이 충족되어 응시가 가능했다.
 

이후에도 지게차운전기능사, 위험물산업기사, 산업위생관리기사를 취득하고 위험물 분야에서 쌓은 실무 현장 경험과 이론을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여 현장 최고 자격증인 위험물기능장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산업안전기사’를 통해 습관을 재창조하며 삶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Story. 4 제1의 은인, 국가기술 자격증

자격증이 하나 둘씩 늘어갈 때마다 자부심이 높아졌고, 업무를 대하는 태도는 견고해졌다. 또한, 자격증으로 학점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규 대학교와 같은 안전공학사를 받았다. 그리고 관련 자격증으로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했고, 아이가 생긴 후로는 잠을 줄이며 기술사에 도전하여 얼마 전 제124회 2차 면접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공부하는 습관부터 시작하여 무엇인가를 해낸다는 성취감은 담배나 술보다 더 강력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이 있다. 첫 산업안전기사 시험을 응시할 때, 눈 맞은 것처럼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노 신사분께서 연로한 나이임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던 모습이다.
 

국가기술 자격증을 토대로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 회사의 발전, 나아가 국가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더한 굴곡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감히 말하자면 ‘그 언제냐가 문제일 뿐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국가기술 자격증 전도사이다. 꿈이 없거나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면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당장 관심 있는 분야에 자격증 공부를 하라고. 그게 시작이라는 것을 먼 나중에는 꼭 알게 될 것이라고. 항상 믿고 지지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 여러분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업데이트 2021-12-1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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