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내일도 계-속 된다
    내 삶을 바꾼 희망의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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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살아야만 했던 베이비붐 세대!
1963년도에 태어나 현대화의 출발점에서 그 험난한 길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저 홀로 헤치며 살아왔다.
일개 기능공으로서 사회의 첫걸음은 내디뎠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하루하루 노력했던
나는 마침내 대학교수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글 김정혁(군장대학교 교수)


인생의 전환점, 새로운 길을 만들고
군산 대야의 조그만 마을에서 9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른바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집안이라 그야말로 배고픔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유년 시절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자니 그 시절 미처 털어내지 못했던 온갖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하다.

1981년,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했다. 2학년이 되어 기계 분야에서 용접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꿈이었기에 의무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했다. 그 결과, 학교를 졸업하기 전 경남 창원에 있는 대기업 생산직 기능공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학생 때 취득한 전기용접기능사(1983.10.04.) 자격증 덕분에 힘든 문턱을 조금 쉽게 넘을 수 있었다.

남자에게는 군 복무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는 한다. 병역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에 방위산업체병역특례:산업기능요원를 선택했다. 첫 자격증인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병역에 대한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5년간 근무를 하며 힘들 때마다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러던 중 삼성기술대학에서 실시하는 ‘자격증 취득 야간 집합교육 1년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접했고, 그때 두 번째 국가기술자격증인 용접산업기사 2급을 취득했다. 사내에서 특진 2호봉의 영광도 얻었다. 운 좋게도 해외 연수도 떠났다. 연수를 다녀온 후 가공공정개선팀으로 근무부서를 옮겨 공정 개선 등 많은 성과를 올렸다. 여세를 몰아 자동차기관정비기능사 2급을 한 번에 취득했다.

자격증은 굵은 땀방울이 묻은 내 삶의 훈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기계발이 필요했다. 삼성중공업(SHI)에서 근무하며 야간 전문대학에 다녔다. 그때 자동차섀시정비기능사 2급, 자동차정비기사 2급, 자동차검사기능사 1급, 자동차다기능기술자, 자동차검사기사 2급 등 6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야말로 자격증은 굵은 땀방울이 묻은 내 삶의 훈장이었다. 32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마산전문대학 자동차학과에 2년 동안 다니며 공부만 했던 기억밖에 없다. 내 인생의 진한 추억일지도 모른다.

전문대학을 졸업하던 해에는 제2의 정든 고향인 삼성중공업(SHI)을 떠나 고향인 군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 국가기술자격증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은 것은 물론 다른 일을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그 후 건설기계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유가 있을 때마다 자격증 공부를 해서 두 번 만에건설기계정비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기능장 덕분에 평생학점은행제를 통해 ‘자동차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기능장 자격증 덕분으로 기술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뿐만 아니라 밤낮으로 노력한 끝에 용접기능장 자격증도 취득했다. 경영컨설팅 전문가가 꿈이었기에 지도사 시험에 도전해 기술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용접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한 덕분에 직업능력개발교사 용접 2급을 취득했다. 이어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차량정비 2급도 취득하게 되었다.

자격증의 놀라운 위력은 그동안 일궈 온 사업마저 정리하게 만들었다. 직업전문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후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굴삭기운전기능사,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중기운전 2급 등 4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공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국립군산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것과 동시에 국립군산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 결과 2013년 2월부터 군장대학교에 재직하고 있으며, 본 대학연구실(실습실) 환경안전관리 총괄책임자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
국가기술자격증은 취득하면 할수록 자신의 기술능력을 더욱 배양하는 것은 물론 이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관련 분야에서 기술 강연이나 교육지도 강사로서 그 역할을 다할 때면 나의 잠재 능력이 무한히 발산되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강의의 수준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제 학력 시대는 지나가고, 경력과 능력을 고루 갖춘 인재를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국가기술 자격증은 꼭 취득해야 한다.(2015년 이후 금속재료기능장, 산업안전산업기사, 산업안전기사, 건설안전산업기사, 건설안전기사 자격증과 제강기능장, 열처리기능사, 금속재료기사, 금속재료산업기사, 금속재료시험기능사, 침투비파괴검사기능사 자격증 취득) 국가기술자격증이 미래의 꿈을 얼마든지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더 나아가 기능 한국의 용접과 열처리를 가르치는 교수다. 이 도전의 끝이 과연 어디쯤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국가기술자격증이 인생에서 얼마나 위대한지를 몸소
느끼고 또 체험한 사람으로서 무척 행복하다. 내 삶을 응원해준 모든 분께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큰 꿈인 ‘기술사’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기술과 자격증은 정년이 없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 평생교육시대, 자기의 목표와 꿈을 찾아가며 도전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
업데이트 2022-02-0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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