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탈모가 이제는 여성탈모, 청소년 탈모로까지 확산하는 추세이다.
많은 이들이 탈모 치료나 예방을 위해 큰 비용을 들이지만 사실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국내 탈모 인구가 1천만 명에 육박한다는 수치 속에서 최원프리모는 탈모인들의 삶에 새로운 지표를 던져주고 있는 업체이다.
2002년, 대한민국 명장(이용 직종)으로 선정된 최원희 대표를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대표님, 최원프리모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원프리모는 대구에 있는 가발전문업체입니다. 군대에서 이발을 배워 군사령관 전속 이발병으로 일을 하면서 제대 후 대구에서 이발소를 차렸지요. 그렇게 이용 일을 시작했다가 가발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40년째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용업으로도 소위 ‘잘나가는’ 사장님이셨다고 들었습니다. 가발 업계에 뛰어들었던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용업에 종사하면서 탈모가 됐거나 진행 중인 손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러던 중에 30대 중반쯤 되는 손님을 만났는데 이분이 탈모 때문에 결혼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선만 70번쯤 봤는데 전부 두 번을 못 만났대요. 또 선을 보러 간다기에 머리를 커트하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아서 잘게 가위로 잘라 머릿속 빈 곳을 채우고 스프레이를 뿌려서 탈모 티가 안 나게 커버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나갔더니 여자 측에서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더래요. 그때 해주었던 스타일을 요청하는데, 이미 머리를 감은 뒤라 그때의 스타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또 본인 머리카락이 없는 상태잖아요. 그래서 쓰레기통에 있는 머리카락을 모아서 씻어 다시 해줬는데 ‘아!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구나. 제대로 된 가발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탈모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써보고 불편함은 없는지 확인하면서 괜찮은 가발을 제작해보자 한 거죠.
1980년대 우리나라의 가발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요?
당시 시중에 나와 있던 가발은 너무나 티가 많이 났어요. 마치 머리에 뚜껑을 얹고 있는 것처럼 둔탁하게 느껴졌고 누가 봐도 “당신 가발 썼지?”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으니 상당히 우스꽝스러웠지요.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걱정됐고 가발을 쓴 채 샤워나 목욕, 수영하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정수리 부분,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 부분이 부자연스러웠어요. 처음부터 이런 부분을 개선해보고자 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가발회사가 있습니다. 다른 업체들과 구별되는 최원프리모만의 특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원프리모 가발은 고객의 두상, 피부의 빛깔, 기존 모발의 굵기, 모발의 양, 색상, 머릿결의 방향, 흰머리 비율, 가마의 위치 등 고객의 머리와 머리카락에 관한 모든 것을 조사하고 상담합니다. 그 후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 나이, 고객의 기호, 관리 방법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제안, 가발을 제작하며, 제작된 가발은 고객에게 씌워드린 후 트위스트 커트 기술로 고객의 본머리와 가발 머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들어드립니다. 고객 한 분 한 분을 위한 고급 인모 맞춤 가발을 아주 일찍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만큼 노하우와 기술이 축적된 업체입니다.
수많은 탈모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업적은 무엇인가요?
4개의 특허와 3개의 실용신안, 25개의 디자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성과는 인성작용 형상 기억 가발이에요. 기존의 가발은 고객 본인이 헤어스타일을 만들기 어려웠는데, 제가 개발한 이 기술은 1회의 아이론 시술을 통해서 가발 관리가 간편해지고, 빗질만으로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손쉽게 간단히 연출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사용자의 특성에 맞춰 가발 모에 인위적으로 인성작용을 투여(시술)해 그 형상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사용자가 세척 후 빗질만으로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원리죠.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고 수출을 병행하셨습니다.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내 주요 방송을 비롯해 해외방송에도 출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2008년에 일본 TBS 방송 프로그램에 한국의 가발 명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일본의 유명배우인 타야마 료세이라는 배우가 한국을 방문해 우리 집에 머무르며(저는 그렇게까지 찍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당황했어요) 제게 가발기술을 배워서 직접 본인의 가발을 만들어 착용하는 내용이 일본 전역에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일본과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고객들이 가발을 맞추러 직접 제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일본의 연예인들 또한 많이 방문했죠. 그 일본 방송을 본 미국의 가발 재료상에서 고객 두상의 본을 뜬 것과 머리카락 샘플을 저에게 보내면서 제작을 요청해 미국 수출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가발을 제작할 때 가장 신경 쓰시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가발을 고객이 착용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둘째, 가발을 쓴 표시가 나지 않게 하는 것, 셋째, 고객이 헤어스타일을 연출할 때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됐을 때 고객은 가발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2002년에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셨습니다. 명장이 되기 전과 후로 삶을 나눠본다면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을까요?
2002년에 서비스 분야의 이용 직종 명장으로 선정됐습니다. 많은 분이 이용과 가발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시는데, NCS 국가직무능력표준에는 이용의 직무 안에 ‘가발술’이라는 기술이 들어있습니다. 채점표에 보면 특허라든지 기술개발에 관한 것이 있는데, 이중에서 가발 관련 특허와 가발기술개발로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죠.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 전에는 명장에 선정되기 위해 기술개발에 매진했고, 명장이 된 이후에는 그 영예로운 호칭 아래서 제가 가진 기술을 후배기능인들에게 알려주어 기술양성에 도움을 줌으로써 쇠퇴해가는 이용 산업을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탈모로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려요.
탈모로 고민하시는 분들은 이식이 아닌 다음에야 사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 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더 나빠지지 않는 정도이죠. 탈모에 대해서 너무 크게 고민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고 이가 상하면 임플란트를 하듯이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가발에 접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찾아온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왜 진작 이 좋은 가발을 안 썼는지 지난 시간이 후회된다”입니다. 자연스러운 가발을 쓰고 편안하게 자신감을 느끼고 사시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