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100대 기업’에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이 1위를 장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래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철강을 생산하던 전형적인 굴뚝 기업이었다.
불과 몇십 년 만에 굴뚝 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을 대표하는 녹색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 프랑스의 세계적인 에너지 관리 및 자동화 전문기업.
무엇이 녹색 기업을 만들었나
서울에 있는 모 기업의 본사 사무실, 언뜻 봐서는 여느 사무실 풍경과도 같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자리마다 조명등의 밝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정도에 따라 조명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공급한 기업이 바로 슈나이더 일렉트릭이다.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곳곳에서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핵심 사업은 에너지 관리 및 자동화 분야다. 주택·빌딩·공장·선박·발전소 등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곳에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처럼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녹색기술에 의한 매출이 전체에서 80% 이상을 차지하며, 2018년 이후 약 800만 톤의 온실가스를 절감하는 데 기여했다. 지속가능경영 100대 기업을 선정한 캐나다의 투자리서치·경제전문 미디어 그룹인 코퍼레이트 나이츠는 슈나이더 일렉트릭에 대해 “향후 탈(脫)탄소 시대의 세계 경제를 규정할 메가트렌드의 중심에 있다”라고 평가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프랑스에서 출발해 1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다국적 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100개가 넘는 계열사에 약 17만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녹색 기업 중심에 서 있는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과거 철강을 생산하던 기업이었다. 이후 전기 회사로, 다시 에너지 회사로, 인류 역사의 기술 진화와 함께 계속 변모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부터 그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제품이 아닌 해결책을 제시하다
지난 1836년 슈나이더 형제는 광산과 용광로, 주조 공장을 사들여 슈나이더 일렉트릭을 설립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전기 설비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인프라 재건사업 덕에 큰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가족경영 체제로 운영해 오던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1980년대에 첫 번째 변화를 겪었다. 전문 경영인 시대가 문을 열면서 새로 취임한 CEO는 향후 전기 산업이 유망하리라 보고 기업을 대표하던 철강과 선박 사업을 매각했다. 거대 복합 기업에서 핵심 사업 하나에 주력하는 기업으로 그 체질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두 번째 변화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 전기 시스템 제조업체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당시만 해도 생소한 에너지 분야로 눈을 돌렸다. 제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에너지 관리 및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려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기업들이 생산비 절감을 위해 에너지 효율화에 점차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원전사태와 블랙아웃 등을 겪으면서 ESG(환경·책임·투명경영)로 대표되는 지속가능경영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이는 슈나이더 일렉트릭을 급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미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일까. 장 파스칼 트리쿠아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를 꿈꾸는 기업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기업 내부가 아니라 언제나 외부, 즉 고객에게서 나옵니다.” 즉,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적절한 시점에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힘은 고객의 이야기를 흘려넘기지 않는 민감함과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을 수렴해 필요한 답을 건네는 신속함에 있었다.
변화하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산업을 크게 구분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나눌 만큼 두 산업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말인즉, 제조업이었던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에너지 분야의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먼저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의 기술자들을 훈련하고 그들의 능력을 계발하고자 했다. 다음으로 130여 개 기업을 인수·합병함으로써 인재를 영입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전 세계 지사에 인재가 골고루 분포된 점을 스스로의 강점으로 꼽으며, 혁신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걸어온 길을 살펴볼 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철강에서 전기 회사로, 다시 에너지 회사로 기업의 성격은 물론 조직 구조까지 모든 것을 바꿨지만 단 하나, 전기 기술이라는 핵심 역량만큼은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며 몸에 밴 품질에 대한 집착은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또 하나 잃지 않은 것은 고객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마음가짐이다. “고객이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다”라는 트리쿠아 회장의 말대로, 그 안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미래를 걸어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길을 보았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앞으로도 제3의, 제4의 변화를 시도할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변화하되 변하지 않는 것들이 슈나이더 일렉트릭을 더욱 성장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