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기업을, 그리고 삶을 경영할 것인가
    독일 기업 데엠의 특별한 철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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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업 ‘데엠(dm)*’은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연 매출 13조 원, 창립 이후 45년 연속 흑자, 17년 연속 업계 1위,

전 세계 3,500개 매장에 6만여 명 고용,

매일 200만 명이 방문하는 초대형 드러그스토어(2019년 기준).

그러나 데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수식어는 ‘독일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기업’일 것이다.

과연 무엇이 데엠에게 이처럼 놀라운 성취와 명예를 가져다준 것일까.

* 유럽 최대의 드러그스토어(Drugstore,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중심으로 건강·미용용품이나 식품 등을 판매하는 매장)


오늘의 유토피아를 내일의 현실로 만들다 

데엠의 창립자 괴츠 W. 베르너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드러그스토어를 놀이터 삼아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기 위해 독일 곳곳의 드러그스토어에서 일을 배웠다. 그러나 베르너는 ‘모든 상품을 취급하며 빨리 구할 수 있다’라는 아버지의 철학에 반기를 들었다. 전통적인 경영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그만 아버지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베르너는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드러그스토어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1973년, 29살의 나이에 은행 빚을 얻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게를 열었다. 데엠 1호점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과연 데엠은 기존의 드러그스토어와 무엇이 달랐을까. 이전까지 드러그스토어는 1만 가지가 넘는 품목을 모두 똑같은 가격에 판매했다. 직원이 카운터에서 손님에게 물건을 건네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데엠은 상품의 가짓수를 대폭 줄이고 가격은 다른 가게에 비해 훨씬 낮게 책정했다. 매장의 면적은 평균 수준보다 세 배 이상 넓었다. 모든 상품을 개방하여 고객들이 물건을 직접 고르는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베르너의 아버지를 비롯해 그의 직장 상사까지 모두가 반대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년 만에 무려 20호점을 열 정도로 데엠은 규모를 확장해 갔다.

 

스스로 답하고 책임지게 하다 

그러나 1987년부터 데엠의 성장은 예전 같지 않았다. 매출도 매장의 증가 추세도 확실히 주춤했다. 그 무렵 베르너는 왜 모든 매장이 같아야 하는가에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에 불을 지핀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베르너가 한 매장에 방문했을 때였다. 빗장에 살짝 등을 기대었는데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빗장이 슬슬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었다. 해당 지점장은 벌써 4주 전에 구역담당자에게 이를 보고했으나 아직 그가 오지 않아서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모든 직원이 그에 걸맞은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1991년, 데엠은 수직적인 위계를 수평적인 구조로 개편하기 위해 매뉴얼을 없애고 본부를 폐지했다. 이로써 각 지점이 매장 디자인과 업무 방식, 직원 채용과 급여, 선택 상품, 심지어 가격까지도 독자적인 권한을 지닐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지점에게 힘을(power to the branches)’이라고 이름 붙였다. 데엠은 이처럼 조직을 개편하고 기업 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바로 ‘대화의 경영’이었다. 직원들에게 단순한 지시를 내리는 대신,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직원들 스스로 ‘왜 일을 하는가’를 체득함으로써 스스로의 권한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자기 경영’을 실현한 것이다.

 

소비자가 아닌 사람으로 다가가다

데엠은 지난 20년간 모든 고객만족도 순위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 바탕에는 지난 1982년 정립한 고객 원칙이 있다. 데엠은 ‘고객의 소비 욕구를 가치 있게 만든다’라는 원칙으로 고객들의 욕구를 가볍게 자극하지 않고 고객의 진정한 필요를 채우고자 노력했다. 데엠이 공격적인 광고를 하지 않는 이유다. 데엠은 고객을 탐욕의 대상이 아닌 노력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데엠에서 고객이 아니라, 소비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고 믿는다.
 

1992년, 데엠은 또 하나의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당시에 상식으로 자리 잡았던 할인 행사를 폐지하는 결단이었다. 주기적인 할인 행사는 물론 99센트로 끝나는 특가 가격, 각 매장이 주력으로 내세우는 코너 상품을 모두 없앴다. 이와 같은 행사는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닌, 기업이 재고를 소진할 목적으로 시행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신 모든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 상품을 항상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로 했다. 모든 결정의 바탕에는 소비자를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베르너 회장은 말했다. “우리는 가장 큰 기업이 될 필요는 없으며, 가장 좋은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효율과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시대에, 데엠은 기업이 자기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공정과 윤리를 지키면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사람이 없으면 기업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기업, 데엠. 오늘날 데엠의 놀라운 성취와 명예는 바로 여기서 출발할 것인지도 모른다.

 

업데이트 2022-04-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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