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3월 각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4월께부터 실시될 정부의 경영평가를 위한 준비에 몹시 분주하다. 올해 경영평가 준비기 중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이 지난해부터 ESG 경영위원회 또는 ESG 정책을 만들고 실시하여, 이를 평가보고서에 담아 제출하였다는 것이다. ESG 경영과는 거리가 있는 공공기관들도 이에 참여한 것은 다소 의외였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속에는 반가운 의미도 담겨 있기에 이를 음미해 본다.
한국에서는 지난 몇 년 사이 ESG 도입 열풍이 불었다. 한국의 10대 그룹 대부분은 2019년 3월~5월 사이에 그룹 차원의 ESG위원회를 집중적으로 만들었고, 그룹 산하 99개 상장사 중 68개사가 지난해 7월까지 ESG위원회를 만들었다. 금융권에서는 2019년부터 5대 금융지주 모두와 주요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들이 ESG 관련 조직 및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정부 쪽에서는 2020년 4월 22일 대통령이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디지털뉴딜, 그린뉴딜을 중심으로 하는 야심찬 한국판 ESG 정책을 발표했다. 2021년 12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K-ESG 가이드라인 v1.0을 발표하여 ESG 도입에 어려움을 느끼는 기업들의 지원에 나섰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2021년 ESG 투자 강화에 나섰고,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은 대한상공회의소와 손잡고 중소기업의 ESG 정책 도입을 지원하는 지속가능성연계대출(SLL)을 올 2월 시작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일찍부터 ESG 경영을 윤리경영의 일환으로 권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진행 위에, 공공기관들이 대거 ESG 경영 대열에 합류하였다는 소식을 얹혀보니, 한국에서는 ESG 경영 체제가 유례없는 속도와 열정으로 구축되었음을 알게 된다.
ESG 경영은 환경 E, 사회 S, 지배구조 G 카테고리들 속의 비재무적 가치와 이슈들을 존중하는 경영 체계이다. ‘ESG’는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 2004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자산가들에게 호소한 <Who Cares Wins>라는 리포트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어이다. 이후 ESG 경영은 기후위기, 금융위기, 팬데믹위기 속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 낼 어젠다로 서서히 유럽과 미국에서 자리잡아 갔다.
유럽에서는 기후변화에 일찍부터 대응해 온 시민운동을 동력으로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전통에 따라 어렵지 않게 ESG 경영이 자리잡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주주자본주의 종주국의 환경에서 기복이 심했지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회장 래리 핑크가 2020년 1월 돌연 “앞으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을 투자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겠다.
석탄 및 화석연료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한을 세계 주요 기업 CEO에게 보낸 것을 계기로 ESG 경영이 급속히 자리잡았다. 이와 같은 미국 금융 기업인들의 태도 변경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여론조사(2018년) 결과 ESG를 고려하여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 중 78%가 밀레니엄 세대임이 밝혀진 점 등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밀레니엄 세대의 ESG 가치 추구는 앞으로 기업경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과는 다른 배경을 가진 한국에서 그토록 짧은 기간에 ESG 경영 체제가 자리잡은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특히 이러한 흐름의 막바지에 공공기관들이 대거 합류한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공공기관들이 정부가 요구하는 공공기관 운영 기준을 넘어 글로벌 수준의 윤리경영 기준까지 반영하여 기관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E에서 환경, S에서 인권, G에서 반부패 등의 대표적 가치와 이슈를 존중하여 글로벌 수준에서 경영을 해나가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공공기관들 대다수가 지난해 ESG 경영위원회 또는 ESG 정책을 만들어 ESG 경영 체제에 합류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