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어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비정규직 미술강사를 하면서 정규직 직장을 찾아야 하는 불안한 위치였다.
학생들에게 우리 전통미술에 대해 소개하면서 옻칠(漆)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
1,400년 동안 썩지 않은 옻칠 갑옷 유물, 현대에는 전자파도 차단한다는 옻칠의 효능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옻칠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시 무형문화재 채화칠장 김환경 선생님을 찾아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옻칠의 매력에 푹 빠지다
옻칠은 작업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다. 옻칠하고 샌딩 작업하고, 다시 칠하는 반복 작업이다 보니 먼지가 많이 나고 옻칠이 손에 묻으면 물로 지워지지 않아 화학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칠로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나무에 도료로도 사용하고, 금박을 부착할 때 접착제로도 사용하는 옻칠에 매력을 느꼈다.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옻칠을 전문적으로 공부했고, 옻칠이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몇 해의 시간이 흐르고 김환경 선생님의 권유로 문화재수리기능사 자격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술 분야에 무슨 자격증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전통예술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오히려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험 당일, 오랜 시간 붓을 잡고 옻칠을 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감독관이 가까이에 오면 붓이 손에서 떨어질 것처럼 덜덜덜 떨렸다. 오전부터 시작하여 오후까지 이어지는 실기 시험과 면접을 잘 마치고 나는 한 번에 문화재수리기능사에 합격했다.
지역 예술인의 성장을 도운 창업의 기회
자격증 취득 후에도 예술인의 정규직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예술의 도시 5개 지역을 선정하여 예술인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예술인도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한지와 옻칠을 활용해 친환경 소재이면서 가죽의 느낌을 살린 소재를 만들고 싶었다. 한지의 단점인 방수 기능을 옻칠이 보완해 주고 옻칠의 다양한 기법을 적용하여 지갑, 핸드백 등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대 한지 생산지인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제품 개발에 큰 장점이 되었다.
예술가이면서 관련 분야 국가기술자격증을 갖추었기에 중소벤처기업청 창업아이템에 선정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창업 후에는 타 아이템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250시간이 넘는 전문 창업 교육을 받으면서 사업가 마인드를 키워나갔다. 다양한 분야에 옻칠 기술을 접목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분야의 기술인들과 협업을 시도했다. 신소재인 탄소섬유에 옻칠해 특허 등록에 성공했고, 제품개발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신제품으로 개발된 ‘옻칠한지 금박지갑’으로 정부조달문화상품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이를 정부조달 상품으로 등록할 기회도 주어졌다.
백수백복(百壽百福)의 기운으로 전통문화를 알리다
이후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에 등록할 수 있는 작가에 선정되었고, 저작권 등록해두었던 백수백복(百壽百福) 16점의 작품들이 한국무역협회 달력을 장식하게 되었다. 백수백복은 옛날 임금님이 수(壽)와 복(福)으로 된 글자를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궁궐에 큰 잔치 병풍에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서 백(百)은 ‘가득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금과 백성들의 장수(壽)를 기원하고, 복(福)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임금의 마음이 담긴 것이다. 이처럼 우리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에 선정되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무역인들에게 수와 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알릴 기회도 얻게 되었다. 옻칠 예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장인 사절단에서 희망을 품고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대통령의 이탈리아 공식 방문에 맞춰 마련된 한국·이탈리아 장인 사절단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고급 소비재에 관한 한 세계 최강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이탈리아로부터 중소기업 활성화와 고부가가치 산업의 활로를 직접 보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Made in Italy’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 밑거름에는 기업 그리고 예술가 장인들이 있었다.
우리 전통문화와 예술 또한 그렇게 성장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이후 해외시장 진출에 관심을 두고 박람회 기회를 찾던 중 디자인진흥원을 통해 해외 박람회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져, 수출이라는 또 다른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고 시장을 보는 안목이 더 넓어지는 기회가 되었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가는 길
고용노동부 선정 우수숙련기술자에 선정되어 대한민국 명장으로 가는 길에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되었다. 명품 브랜드 개발을 꿈꾸면서 전통예술 분야, 신기술 분야, 산학연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이 작은 노력이 우리나라 명품산업의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명품 ‘Made in Korea’의 꿈을 꾸고 있다.
취업이 힘들어 예술을 포기해야 할까 고민하며 방황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옻칠에 몰두하여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고, 창업으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세계적인 예술가 앤디 워홀의 명언 중에 ‘사업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매일 최고의 예술을 하고 있다.
* 2021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