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재석(투명사회운동본부 운영위원, 변호사)
공평한 힘과 기회의 중요성
학폭 피해의 경우, 주변 학생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간 후 혈기왕성한 사춘기 학생들의 약육강식 논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한다 한들 ‘학생보호 차원의 갈라놓기’ 외에는 속 시원히 해결되는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너 아버지 뭐하시노”를 먼저 묻는, 즉 부모의 권력이 영향을 주는 학교라면 그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럴 때 피해 학생, 가해 학생 모두에게 복싱을 가르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두 학생 모두에게 서로 맞고 때릴 수 있는 공평한 힘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로의 입장을 동등하게 살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당함에 반기를 들기 어려운 이유
괴롭힘은 어른이 되어 군대,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컴퓨터, 자리 배정, 따돌림 등으로 동료가 괴롭힌다 해도 고용복지부에 고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소한 문제로 회사에 누를 끼치는 문제아로 낙인 찍힐까봐 고민하게 되고, 회사와 각각 근로계약의 연결고리를 가진 다른 동료들 역시 외면하기 쉽다. 노조나 대변단체조차 없다면 대응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내부 고발자의 사정 역시 비슷하다. 여성이 성차별을 제기했다가 회식 자체가 없어지기도 한다. 명랑사회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유리한 수단으로 경쟁의 우위에 서는 현실
자녀 교육의 사례를 보자. 미국처럼 다양한 인재 선발을 위해 대학 선발에 스펙을 요구하게 되면, 학부모는 탈법 여부를 떠나 친인척과 지인, 학원 등을 통해 힘닿는 데까지 합격방법을 강구하게 마련이다. 중고생이 부모 찬스로 세계 유수의 논문을 쓰는 현실이니 벌써 자습서에 파묻혀 근시가 되어가는 초등생 부모 입장에선 미리부터 걱정이 되고, 어떻게든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하려 노력하게 된다. 평소에는 남들이 어떤 과정으로 자녀 합격을 돕는지 알 길이 없지만, 부모가 장관후보가 되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상황이 심각해진다.
이때 더 큰 문제는 수사와 대서특필 속에 둘로 나뉘는 국민의 위치다. 현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의 전수조사는 대부분 흐지부지된다. 누구는 수사하고 누구는 안하는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일반 국민이 기소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일본의 검찰 심사회나 미국의 대배심이 일반 국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 국민은 주어진 질서 속에서 남이 유리한 수단으로 경쟁의 우위에 서는 현실에 한없이 분노한다.
가수 유승준이 몇 십 년째 비자를 받지 못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메이저 마라톤 행사장에 가면 유력인사 소개가 이어진다. 행사의 실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지역육상협회나 동호인이 아닌, 유명인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실도 어찌 보면 공평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한 단편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의 필요성
‘북’의 로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은 인터넷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방문은 위법이 아닌데 글을 남기거나 물건을 사면 또 안 된다고 한다. 지금도 ‘남’을 친일, 미일제국주의의 종속국쯤으로 선전하는 ‘북’의 입장은 ‘남’의 입장에선 체제위협이 맞고, 한편 ‘북’의 입장으론 ‘남’의 성장이 체제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며칠 전 상반된 입장을 가진 여야 정부가 교체되었다.
1995년 북핵 위기 이후 결국 남북 사이의 경제교류가 단절되었다. 정부는 민간교류를 제의해보지만 북은 묵묵부답이다. 새 정부가 미국과 인도적 지원을 협의하고 코로나 지원문을 보내려 해도 받을 기미가 없다. 분단과 전쟁 이후 오랜 세월에도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류와 국제적 지원의 토대는 아직도 요원하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새 정부의 출발점인 오늘, 사회전반과 법집행에까지 구성원의 참여가 소통과 투명을 낳고 권리를 보호하며 국민이 주인되는 변화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