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된 자격증이 있다.
텔레마케팅 관리사 자격증은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에너지를 주고 자존감을 세워주는, 자격증 그 이상의 존재였다. 내 이야기는 2020년 겨울부터 시작된다.
글 한진호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군 생활
2020년 2월, 당시 나는 힘들었던 대학생활 2년을 뒤로 하고 도망치듯 공군에 입대했다. 치열했던 두 번의 입시전쟁을 치루고 입학한 대학생활은 예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고, 입시보다 더한 또 다른 전쟁,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 경쟁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선택한 전공 역시 적성에 맞지 않아 후회가 깊어진 그때, 군대에서 잠시 학점·취업 걱정 따윈 내려놓고 좋아하는 운동이나 실컷 할 작정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내 자신감의 원천은 축구였다. 축구 실력이 좋아 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와 인정을 한 몸에 받아온 것이다. 그런 축구실력 덕에 군대에서도 풋살팀의 당당한 주축이 되며 군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불행이 찾아왔다. 부대 친선경기에서 좌측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하며 불명예 의병제대를 하게 된 것이
다. 수술과 수개월간 이어진 재활치료 끝에 다행히 부상은 차츰 회복되었지만 무릎은 예전 같지 않았다.
축구를 못하게 되니 자존감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앞으로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학교로 돌아가서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마칠 자신도, 전공과목으로 취업해 오래 버틸 자신도 없었다.
텔레마케팅 관리사를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불쑥 자격증 이야기를 꺼냈다. 국가기술자격증에 한 번 도전해 보라는 것이었다. 일단 따 놓으면 훗날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 처음에는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선배의 경험담을 듣다 보니 차츰 마음이 기울었다. 어차피 재활에 필요한 시간은 흘러야 했고,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자격증이라도 생기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우선 국가기술자격증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부터 검색했다. 크게 기능사, 기능장, 기술사, 기사 자격증으로 분류되는데, 취업에 유리하다는 기사 자격증에 관심이 커졌다. 건설, 경영, 회계, 사무, 영업, 예술, 디자인, 방송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을 확인하며, ‘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전문 분야가 많구나, 이 중 내게 맞는 직업도 있겠지’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민 끝에
내가 고른 것은 영업·판매 그룹의 유일한 기사 자격증인 ‘텔레마케팅 관리사’였다.
필기에 웃고 실기에 울다
일단 텔레마케팅관리사 필기시험에 접수하고 개념설명과 기출문제가 담긴 교재를 구입해 독학했다. 필기시험은 판매관리, 시장조사, 텔레마케팅관리, 고객관리 총 4과목 각각 객관식 25문항씩이 주어진다. 내용은 까다롭지 않았지만 암기할 분량이 많았다. 열심히 준비한 덕에 첫 필기시험에서 82점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어서 빨리 실기도 합격해 자격증을 손에 넣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실기시험은 단답형과 주관형이 혼합된 필답형 문제와 서술식 작업형 문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첫 실기시험에서 47점으로 불합격. 무려 4권의 실기교재를 구입해 열심히 공부했던 두번째 시험에서도 55점으로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으로 전의를 불태웠던 세 번째 시험에서도 55점으로 낙방하자 자존감은 다시 바닥을 쳤다. 다친 무릎의 상처만큼 마음의 상처도 깊어졌다.
실패의 굴레를 벗다
우왕좌왕 하며 보낸 2021년의 봄도 빠르게 지나고 여름으로 접어들던 어느 오후, 책장 한쪽 구석에 꽂혀있던 텔레마케팅 관리사 필기교재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차마 버리지 못한 교재들, 무려 1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오기가 생겼다. 필기시험 합격 유효기간이 지나기 전에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이번에는 공부 방법을 바꾸었다. 반복되는 실수를 고치기 위해 틀린 문제를 모아 정리한 뒤, 매일 반복해서 다시 풀기 시작했다. 서술형 문제는 실제상황인 것처럼 감정을 이입해 정성껏 풀었다.
어느새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 그렇게 진심을 쏟으며 공부하고 치룬 실기시험의 결과는 달랐다. 드디어 64점으로 합격! 물론 뛰어난 점수는 아니었지만 감격스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텔레마케팅 관리사 자격증을 받아들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에 뛸 듯이 기뻤다. 성취감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미래를 밝혀준 자격증
최근 텔레마케팅 관리사 자격증을 자랑 삼아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더니 정식 취업제안을 받았다. 비록 작은 기업이지만 자격증으로 인해 나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장 취업하기보다는 전문적인 공부를 더한 뒤 학위까지 받겠다는 계획으로 취업제안을 거절했지만, 이제 나의 미래는 뚜렷해졌다. 텔레마케팅 관리사 자격증이 나의 적성과 진로를 일깨워 준 것이다.
향후에는 시장 분석력과 마케팅 전략수립능력, 정보통신기술 활용능력까지 갖춘 전문 텔레마케터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밝은 전망도 나를 설레게 한다. 더 늦기 전에 전공을 바꿔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정한 지금, 힘들 때면 내 품의 ‘텔레마케팅 관리사 자격증’이 늘 힘이 되어 주리라 믿고 있다.
* 2021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