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을 채우는 ‘촌’스러움 러스틱 라이프
    오도이촌 트렌드와 시골향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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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이촌 트렌드를 쫓는 현대인이 늘고 있다.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삶.
완전히 도시 생활과 멀어지는 귀농과는 달리 이처럼 일상에 ‘촌’을 한 스푼 더하는 것,

바로 그것이 ‘러스틱 라이프’의 매력이다.

글 박소현 • 참고도서 「트렌드 코리아 2022」(김난도 외, 미래의창)
 

 

시골, 좀 더 쉽게 꿈꾸게 되다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가 화제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처음 제시된 이 키워드는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느끼며 도시 생활에 여유와 편안함을 부여하는 생활 방식’을 뜻하는 말이다. 촌(村)스러움을 지향하다 보니 귀농·귀촌 생활을 떠올리기 쉽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러스틱 라이프는 도시와 단절되는 ‘이도향촌’이라기보다 일상에 시골 감성을 곁들이는 ‘오도이촌’에 가까운 생활양식이기 때문이다.
 

도시와 시골 생활의 비중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러스틱 라이프의 층위는 ‘떠나기-머물기-자리 잡기-둥지틀기’의 4단계로 구분된다. 잠시 떠나 짧은 휴식을 즐길수도, 한 달 살기로 조금 더 깊이 녹아들 수도, 시골 거점을 마련해 듀얼 라이프를 즐길 수도, 완전히 삶의 터전을 옮길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랜 팬데믹은 탈도시화의 원동력이 됐다. OTT 시장과 식품·물류 배송플랫폼, SNS 등 발전한 비대면 서비스들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개인을 만들어냈다. 거기다 인류를 오래 지배했던 끈끈한 집단주의 문화가 옅어지며 살던 곳을 떠나겠다는 결심이 보다 쉬워졌다. 이전의 귀농·귀촌이 용감한 소수의 도전으로 여겨졌다면, 러스틱 라이프는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캐주얼한 트렌드다. 이처럼 접근성이 좋다보니 관련 산업도 가파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개인과 기업, 지자체와 정부까지 러스틱 라이프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논밭뷰 카페부터 촌캉스까지, 대세는 러스틱

가장 발 빠른 변화를 보이는 분야는 바로 요식·숙박업계. 탁 트인 논밭을 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논밭뷰 카페가 호황을 누린다. 휴일이면 논을 보고 멍 때리는 ‘논멍’을 하기 위해 도시 밖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쌀로 만든 라떼를 마시며 청보리밭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경남 양산시 ‘아리주진’은 벼와 논을 모티브로 한 특별한 건축 외장재를 사용한 것이 인상적인 카페다. 이런 카페는 외관이나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메뉴에도 약간의 시골풍, 즉 러스틱함이 가미되면 더 인기를 끈다.
 

농촌에서 휴가를 보내는 ‘촌캉스’와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쉴 수 있는 ‘옥캉스’는 숙박업계에 새롭게 떠오르는 키워드다. 농촌에서의 하룻밤이라도 불편하지 않은 것이 핵심이다. 강릉의 ‘소금제’는 한옥 내부를 개조하여 시골집의 정취와 현대식의 편리함을 모두 갖춘 곳. 겨울에는 아궁이를 떼는 시골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실내에서는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해 편리한 야식을 즐길 수 있다.
 

 

체류형 여행의 모습도 이전과는 다르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보다, 속초·양양 등에서 찾은 ‘나만의 장소’에서 보름이든 열흘이든 여유로움을 즐기는 게 더힙hip해졌다. 보다 소박하고 유연해진 체류형 여행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마스터멘션’과 같은 장기숙박 예약 플랫폼의 매출도 함께 늘었다.
 

그저 즐겨도 좋고, 도전해도 좋은 시기

러스틱 라이프 열풍은 개인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어주었다. 이미 ‘둥지 틀기’ 단계에 도달한 일부는 귀농 일지, 시골집 매매 콘텐츠 등 자신만의 노하우와 일상을 SNS에 공유하며 부가적인 수익 창출을 맛보고 있다. 귀농 12년 차 손보달 씨는 유튜버가 되어 ‘솔바위농원(구독자 35만)’ 채널을 운영하며 자신의 고객과 소통할 뿐만 아니라 지역 농업인을 위한 홍보 플랫폼이 되길 자처하며, 방송국 피디 최별 씨는 전북 김제의 4,500만원짜리 폐가를 구입, ‘오느른(구독자 28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골집의 소박한 일상을 담아내는 중이다.

쇠락하던 시골 마을에 요즘 감성을 입힌 로컬 음식점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인구 감소로 폐쇄된 우체국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레스토랑 ‘안사우정국’처럼 말이다. 주민 8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농촌마을 경북 의성군 안사면에 자리 잡은 이곳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젊은 주인장이 러스틱 라이프를 실현하고자 만든 새 둥지이기도 하다.
 

물론 무조건 사표를 쓰고 시골을 찾으란 말은 아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홈가드닝 또는 홈파밍을 통해 소소한 러스틱 라이프를 즐길 수도 있다. 가정이나 소규모 농원에서 사용되는 식물 재배기의 시장 규모가 2020년 약 600억 원 규모에서 2023년 5천억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상속 ‘촌’스러움을 잘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러스틱 라이프가 이끄는 우리 사회의 미래

시골향(向) 생활양식의 확산은 경제 위축과 인구 감소, 고령화 현상 등으로 시름을 겪고 있는 지자체에도 희소식이다. 지역 체류형 관광자원 개발을 통한 새로운 도약이 기대되는 것.

특히 워케이션Worcation을 원하는 젊은 직장인을 불러들이기 위한 국내 지자체의 경쟁이 치열하다. 워케이션이란 휴가지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근무 형태이자, 도시의 직장인들이 부담 없이 러스틱 라이프를 실천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경남 하동의 워케이션 프로그램 ‘오롯이, 하동’과 제주 구좌읍 세화리의 ‘질그랭이 센터’가 대표적 사례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듀얼 라이프 또는 시골 한 달 살기 등을 꿈꾸는 러스틱족을 위해 특별한 공간을 마련하는 지역들도 나타났다. 폐가를 재활용해 도시인의 로컬스테이 체험과 예술가들의 아트 레지던시를 제공하는 동호지구 바닷가 책방마을이, 폐교 부지에 무인양품의 오두막 무지 헛MUJI HUT을 설치해 별장처럼 빌려주는 일본의 미나미보소 시가 그렇다.
 

체류형 관광자원 개발은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일이다. 워케이션이라면 어디서나 연결되는 무선 인터넷망이, 한 달 살기라면 깔끔한 편의시설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결국 러스틱 라이프 소비자를 적극 유치하려면 그에 맞는 시설 및 기술 투자가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러스틱 라이프는 현대인의 ‘녹색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지고 일상의 복잡함에 지쳐갈수록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게 되는 걸 보면, 이는 ‘도시’가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그야말로 롱런longrun할 비즈니스의 기회가 아닐까.
 


업데이트 2022-07-3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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