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곧 열정이고 열정은 곧 중독입니다
    2021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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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청남도 온양에서 목수가 직업이신 아버지와 녹록치 못한 삶에 걱정이 많으신 어머니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진로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었고, 졸업과 동시에 산업전선으로 뛰어 들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글 김기완 

* 2021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연강판 전기용접직종과의 만남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1년, 병천직업훈련원(한국기계공업진흥회)에서 직업훈련 2급 기능사 양성 훈련과정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1차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훈련원에 합격했고, 용접기술을 배우면 급여가 많다는 담당 선생님 말씀에 어려웠던 가정형편을 생각해 ‘연강판 전기용접직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선택이 내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6개월간의 직업훈련원 생활은 그리 순
탄치 않았다. 생전 처음 해보는 야간 점호와 학교생활보다 더 절제되고 반복되는 용접이론교육과 실습교육은 결코 유쾌한 일과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사실에서 용접기능사 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하면 취업이 1순위로 가능하고 병력특례를 받을 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담소를 들었다.

“그럼 저도 자격증을 취득하면 병력특례를 받고 취업할 수 있나요?” 얼른 담임 선생님에게 묻자, 평소 의지가 부족했던 내게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그런데 그 모습에 이내 오기가 발동했다. “꼭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선생님과 훈련생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자. 그리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 돈도 많이 벌고 병력특례도 받자. 군 복무하면서 월급도 받아 저축까지 하는 일석이조의 목표를 만들자!” 그 생각을 마음에 품은 날부터 생각과 행동이 360도 바뀌었다.

 

오기로 시작된 용접기능사 자격시험

밤 9시에 기숙사 점호를 마치면 훈련원 도서관으로 달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나왔다. 그것도 부족해 모두가 자는 새벽시간에 휴게실에서 자격증 공부를 이어갔다. 이런 모습이 훈련원에 입소문이 났고 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용접기능사 필기시험 당일,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시험을 치렀다. 태어나서 가장 최선을 다한 공부의 결과는 기분 좋게 합격! 실기가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최종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기뻤다. 그 시간 이후 선생님은 더 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무사히 실기 검정까지 합격할 수 있었다.
 

이후 군 입대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았지만 어려운 집안형편 탓에 병력특례가 간절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1급 방위산업체 조선소에서 직업훈련원 수료생 중 용접기능사 국가기술자격증이 있는 학생을 모집한다는 취업공고가 난 것이다. 그것도 해군 군함 등을 건조하는 대기업이었다. 생애 첫 이력서를 쓰는 내게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은 엄청난 취업 무기가 되어주었고 대기업 방위 산업체 입사라는 인생의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직업훈련원을 수료할 때도 품행·학업 우수 학생으로 한국기계공업진흥회 회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잠수기능사·산업기사 자격증에 도전

조선소 입사 이후, 나는 우수 기능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중 조선소 특수용접 기술이 자주포에 적용되며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고, 4번의 고배 끝에 삼성중공업에 최연소 경력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후 윤택한 생활이 시작되면서 1996년부터 취미로 스킨스쿠버를 시작했다. 그때 알게 된 직무가 바로 산업 잠수였다.

잠수기능사는 수중 배관을, 잠수산업기사는 수중용접을 실기시험으로 치렀는데, 당시 경력으로는 잠수기능사만 응시할 수 있었다. 두 자격증 모두 시험은 년 1회만 치러졌는데, 희소성이 높아 관련 서적을 구하기도 연습할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거기다 한 번 떨어지면 한 살씩 나이도 같이 먹으니 불합격 타격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힘겨운 도전 끝에 7년 만에 잠수 기능사에 합격했고, 곧바로 ‘잠수산업기사 자격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수중용접은 지금까지 치른 시험 중 가장 많은 준비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특히 필기합격 후 2년 내 실기에 합격해야 했는데, 시험이 1년에 1번이니 기회는 2번 밖에 없는 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해 시험은 너무 큰 압박감으로 불합격하고 말았다.
 

사고를 극복한 드라마, 잠수산업기사 합격

아쉬움이 컸지만 반복훈련만이 답이라는 신념으로 불철주야 실기시험에 열중했다. 하지만 시험 몇 개월을 앞두고 사고가 터졌다. 하필 야유회 씨름 경기 중 왼쪽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30kg이 넘는 잠수장비를 착용해야 하는 실기시험 응시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끝내 시험을 치렀다.

그만큼 간절했던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았던 걸까. 뜨거웠던 그 해 여름날 휴대폰 문자 알림소리에 낮잠을 깼다. 꿈에 그리던 최종 합격문자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봤을 만큼 드라마 같은 사건이었다. 당시 취득한 잠수산업기사는 삼성중공업 그룹 최초 자격취득으로 그룹 사내 방송에 연일 언급되었고, 축하 메세지와 함께 ‘진급’이라는 기쁜 소식도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또 다시 중독처럼 열정이 발동했고 곧바로 용접기능장에 도전해 최종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이후 수중용접을 하는 용접기능장으로 2016년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건설 분야에 선정됐으며, 대한민국 최초 과정평가형 잠수직무 수중용접 등 교육훈련전문가와 교수로 활동하며 우수 인재 양성과 기술전수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만약 최초 전기용접기능사 2급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이글을 보고 있을 많은 청년과 직장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무엇이든 생각만 하지 말고 꼭 시작해보라는 것이다. 시작을 하면 열정이 생기고 열정은 곧 중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다.

 

업데이트 2022-08-1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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