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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실누비) 김윤선 색실누비 숙련기술전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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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선 명장의 손끝이 빚어낸 색실누비 작품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땀 한땀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고 한지를 이용하는 전통 침선 기법을 고수하고 있으나 그것을 표현하는 감각은 지금 시대에 걸맞게 지극히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일상 속 쓰임과 예술의 균형 속에서 색실누비 종주국의 자부심과 사명을 갖고 오늘도 바늘을 잡는 그를 만나러 북촌에 가보았다.
 

 

명장님께서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색실누비 직종 숙련기술전수자이십니다. 입문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는 바느질 자체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집에 있던 할아버지의 담배쌈지를 보고 그게 뭔지 궁금해 하던 정도였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미술 공부를 하던 중, 어느 날 다시 쌈지를 보게 되고 새삼 ‘이걸 어떻게 이렇게 누볐지?’라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봤죠.

원래는 한지를 넣고 누벼야 하지만 제게는 그런 재료가 없으니, 이불 꿰매는 누런 실을 몇가닥 꼬아서 넣고 바느질을 해봤는데 제법 모양이 나는 거예요. 주머니도 몇 개 만들어서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전승공예 공모전’에 대해 알려주더라고요. 그렇게 공모전에 출품을 하며 본격적으로 색실누비에 대해 공부하게 됐지요. 이후 우리 전통미가 담긴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오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색실누비를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색실누비란 무엇인가요?

섬유 침선의 일환으로, 두 개의 천 사이에 한지 끈이나 면 끈을 넣어 색실로 한땀 한땀 정교하게 온박음질을 해서 완성하는 걸 색실누비라고 해요. 우리나라 섬유공예를 대표하는 수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원래는 민간에서 이름도 없이 사용된 기법이라 다들 그냥 ‘손누비’라 불렀어요.

1998년 첫 번째 개인전을 할 당시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의 유희경 교수님께서 제 작품을 보고 ‘색실누비’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거죠. 그 뒤로는 문화재위원들이나 전통 침선 분야에 계신 분들도 모두 사용하는 보편적인 단어가 됐습니다.
 

 

색실누비가 담배쌈지에 많이 쓰였던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는 담뱃가루를 쌈지에 넣어서 다니다가, 작게 자른 종이에 말아서 부싯돌로 불을 붙여 피웠어요. 젖어 있으면 담배를 피울 수가 없으니까요. 한지는 통풍성과 습도조절에 뛰어나 담배나 부시같이 습도에 민감한 물건을 보관하는 쌈지의 재료로 쓰기에 적합했죠. 또 완성품을 만져보면 굉장히 단단한 걸 느낄 수 있어요. 예로부터 천은 100년을 가고, 한지는 천년을 간다고 하죠. 이처럼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습도까지 조절해주니 담배쌈지에 유독 색실누비가 많이 쓰인 겁니다.


담배쌈지에서 알 수 있듯 색실누비를 이용한 공예품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색실누비를 이용한 공예품은 무궁무진합니다. 유물로는 담배쌈지, 버선본집, 부시쌈지, 안경집 등이 대표적이죠. 저는 해마다 다른 컨셉으로 작품을 만드는데요, 목침, 두루주머니, 반짇고리, 목침기러기, 브로치 등… 보다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작품들을 구상하고 있어요. 전통을 살리되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으려 노력합니다. 답습은 곧 사장(死藏)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과거의 색실누비와 현대의 색실누비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일단 소재의 변화가 큽니다. 옛날에는 대부분 무명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명주를 써요. 무명의 투박하고 소박한 느낌을 덜어내는 거죠. 그리고 문양과 색감, 패턴의 다양성을 추구해요. 예전에는 원색 계통을 많이 썼지만 지금은 귀하고 단정해 보이는 흰색이 인기입니다.

또 전통 색실누비에는 기하학적 문양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봉황, 나비 등 다양한 문양을 넣어요. 젊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또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거예요. 이는 색실누비라는 전통공예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도에 숙련기술전수자로 선정되셨어요. 그간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요.

색실누비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나라 침선 기법이에요. 같은 동북아시아권인 일본이나 중국에도 전혀 없는 기법으로, 한국이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갖고 있지요. 그 덕분에 국내외에서 대단한 관심을 받았고 전시회도 많이 했습니다.

본격적인 기술교육의 경우 한국문화재재단 전통공예건축학교를 통해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교육을 맡으며 제가 가진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 전수는 우리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점에서 비할 데 없이 중요한 일이에요. 제 딸도 색실누비 계승자로 일하고 있으니 스스로 더 큰 사명감을 느끼죠.
 

40여 년 동안 색실누비 작업을 해오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몇 년 전 진행한 루이비통과의 콜라보 작업이 떠오르네요. 우리나라 전통 결혼문화 중 하나인 ‘함’에 루이비통 트렁크를 접목해 ‘함 트렁크(Hahm Trunk)’를 만들었어요. 봉황과 모란 무늬를 하나하나 손으로 누벼서 내부를 색실누비로 장식한 거죠. 함 트렁크는 VIP 전시회에서 모두 판매된 이후 추가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였어요.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 색실누비의 가치를 알아줬다는 것이 뜻깊었고, 우리 전통에 현대적인 감성을 더한다는 게 흥미로워 작업 과정도 즐거웠어요.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있으실 텐데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죠. 재료 구입도 전시회도 전부 돈이 드는 일이니까요.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제게 “거의 다 왔다, 끝이 보이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며 응원해주신 분이 계신데, 그 말을 들은 지 벌써 15년도 더 됐네요(일동 웃음). 이 일에 끝이 없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북촌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색실누비를 했기 때문이잖아요.

그동안 많은 분들께 알려져 색실누비의 위상이 조금씩 갖춰지는 게 실감나기도 하고요. 또 학생들이 제게 배워서 각자의 개성대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걸 보니 뿌듯함과 성취감이 생겨요. 그렇게 매 순간을 이겨내 왔듯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길을 나아갈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요?

조만간 영국왕립자수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작품집도 내려고 준비 중이에요. 예전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욕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해나가는 게 목표에요. 욕심 없이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나 일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또 학생들에게 단순히 테크닉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작업 과정 자체를 공유하면서 실전성 있는 교육에도 좀더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색실누비에 후배 계승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오래 지속하면 확실히 발전하고, 나만의 연륜이나 개성도 생기거든요. 바느질이라는 반복 작업과 집중을 통해 내면의 나를 만나고, 이걸 지니고 다닐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미학적인 고민도 하다 보면 창의적인 자신과도 조우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색실누비 종주국의 계승자로서 자부심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업데이트 2022-10-2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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