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국적의 여행객과 승무원들이 한 공간에서 만들어 내는 열정적인 다문화 환경에서 일과 여행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던 23살의 나는 이 인터뷰 기사를 읽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마주하게 되었다.
글 전예은
미국 크루즈 승무원 도전기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꿈을 갖게 된 나는 자연 계열 출신에, 호텔의 ‘히읗’도 몰랐기 때문에 우선 크루즈와 가장 비슷한 서비스의 특성을 가진 곳에서 경력을 쌓자는 생각으로 국내 5성급 호텔에 입사했다. 출근해서는 프런트 직원으로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승선을 위한 경험과 경력을 쌓고, 퇴근 후에는 미국 크루즈 승무원에 관련된 정보, 자료, 취업 설명회, 도서, 블로그를 땅굴 파듯이 검색하고, 영어와 스페인어까지 공부했다.
꿈의 직업에 한 발짝씩 다가가던 중, 월드잡플러스를 통해 ‘Royal Caribbean Cruise, Guest Services Officer’ 채용 공고를 발견하게 되었다. 미국 최대 크루즈 회사에서 한국 승무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에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곧바로 지원했다.
이어진 불합격과 재시도의 반복에 좌절의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모든 실패와 어려운 순간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발판이라 믿고 노력했더니, 결국 미국 최대 규모이자 최고급 크루즈인 Celebrity Cruises 측으로부터 최종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미국 크루즈 승무원 합격, 그 이후
내가 크루즈 승무원이라니! 승선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교육을 이수하다 보니 곧 기다렸던 순간이 다가왔다. 비행기로 대략 20시간의 여정 끝에, 플로리다 Fort Lauderdale에 도착해 그토록 꿈꾸던 크루즈에 오르게 됐다.
바다 위의 5성급 호텔! 움직이는 리조트! 승선 이후 아름답고 찬란한 날들만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도착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채 안전교육을 받고 시험까지 쳤으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직속 상사 옆에 꼿꼿하게 서서 업무를 배우고 있었다.
1,500여 명의 승객이 내리고 또 1,500여 명의 승객이 승선을 하는 debarkation & embarkation day. 그야말로 전쟁터나 마찬가지인 현장에서 앞으로 크루즈에 대한 모든 정보와 일정을 알고 있어야 하며, 다양한 컴플레인에 대한 대처뿐만 아니라 환전, 기항지 정보, 게스트 입국 관련 정보, 돌발 및 비상 상황 대처 요령, 다른 부서와의 소통 방법 등을 익히고 숙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자니 첫날부터 정신이 혼미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투성이라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앞으로 더 성장하게 될 스스로가 기대되기도 했다.
승무원 살이, 적응하고 누리겠습니다!
고생스러웠던 적응기 끝에 나는 크루즈 내의 정보들을 익혀 고객들에게 완벽한 크루징을 제공하기 위한 적절한 응대를 하고, 컴플레인에도 당황하거나 상처받지 않고 대응하며, 위기와 돌발 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승무원으로 성장해나갔다.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이어지는 근무에도 나를 충전시켜주는 것들이 있었다. 새벽 갑판 위로 올라가 일출을 보며 출근하고, 노을과 함께 퇴근을 하며, 항해 중에는 Open Deck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돌고래가 무리 지어 수영하는 것을 목격하고, 퇴근 후 동료들과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와인 한 잔과 코스 요리를 즐기고,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운동할 수 있는 헬스장을 경험하는 등 특별하고 소중한 일상 모두가 원동력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느낀 가장 큰 특권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다 자연스레 서로의 삶에 대해 나누는 시간과, 그 시간을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새로운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해준 신선한 자극을 동반한 만남은 더더욱 잊을 수가 없었다.
바다 위에서 ‘간호사’라는 새 꿈을 키우다
크루징마다 유난히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승객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전동 휠체어나 특수 침대를 이용하는 승객, 호흡기에 산소통까지 달고 다니는 승객, 주 2~3회씩 투석을 받는 승객 등이다. 그제야 나는 크루즈 의료 인력과 장비, 시스템이 이 망망대해에서 3,00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의 목숨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더불어 몸이 아프고 불편해서 여행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크루즈가 한 줄기의 희망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웠다. 프런트에서의 업무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만, 나 또한 더욱 전문적인 기술로 승객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한마디로, 크루즈 간호사가 되고 싶어졌다.
한 계약 기간을 마친 나는 곧바로 미국 간호대학 학사 편입을 위한 서류와 지원서를 준비했다. SAT, TOEFL 등 대학마다 요구하는 지원 자격을 하나씩 채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작된 지원 절차와 면접, 불합격과 재지원 끝에 미국 플로리다주의 어느 간호대학에서 합격 소식을 받게 되었다.
네 번째 학기 개강을 앞두고 코로나 대유행으로 미국에 돌아가지 못한 나는 현재 국내 간호 대학에 편입하게 되어, 간호학과 학사 과정의 마무리를 지어가고 있다. 나는 이제 투석 전문 크루즈 간호사를 꿈꾼다. 고정적인 투석 스케줄로 해외여행을 꿈같은 이야기로만 여겨야 했던 이들에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목표다. 그리고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떠한 새로운 기회가 찾아와도, 서슴없이 뛰어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 2021년도 청년 해외진출 성장스토리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더욱 자세한 수기는 월드잡플러스(worldjob.or.kr)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