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밤 9시면 잠자리에 든다.
‘걸어 다니는 시계’라 불릴 정도로 규칙적인 삶을 살던 철학자 칸트의 이야기다.
2022년 트렌드 중 하나로 제시된 ‘바른생활 루틴이’는 이처럼 스스로 생활 속 루틴 만들기를 실천하는, 21세기형 칸트 같은 존재다.
셀프 일상 설계로 만드는 갓생 살기
‘갓생 살기’가 주목받고 있다. MZ세대가 좋은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접두어 ‘갓’과 ‘생(生)’을 합쳐 만든 말로, 바른 생활을 지향하는 생산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뜻한다. 갓생의 핵심은 부지런함이다. 사실 예전에는 직장과 학교가 개인을 ‘부지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와 워라밸에 대한 인식 강화가 현대인의 생활 및 업무에 높은 자유도를 안겨준 것. 하지만 강제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오히려 철저한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갓생을 살기 위해 자기주도적으로 일상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는 이처럼 외부적 통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루틴routine을 통해 자기만의 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바른생활 루틴이’라 명명한다. 루틴은 매일 혹은 규칙적인 주기로 행위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습관’과 유사하지만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의식적 노력’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두 개념 모두 반복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루틴은 습관보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다.
그들이 만드는 루틴은 운동루틴·업무루틴처럼 특정 행위와 관련되기도 하고, 아침루틴·저녁루틴처럼 특정 시간대에 하는 일련의 행동묶음이 되기도 한다. 반복적 생활양식을 설계함에 있어 거창한 이유나 원대한 목표가 따르지는 않는다. 바른생활 루틴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 성취가 아닌 개인의 만족이며, ‘자기 돌봄’의 시간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움에 더하는 강제성 한 스푼, 자기 묶기
루틴을 실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운동 영상을 찾아보면서도 ‘나중에 꼭 따라 해야지’ 하며 스크랩만 해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바른생활 실천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제안하는 세 가지 전략, 자기 묶기·도장 받기·되돌아보기를 차례로 살펴보자.
먼저 ‘자기 묶기’는 셀프바인딩self-binding, 즉 스스로 루틴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도록 강제하는 자기 구속 전략이다. 루틴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 행위를 스스로 제한하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대표적인 자기 묶기의 예로는 ‘바디프로필’을 들 수 있다. 바디프로필은 혹독한 운동 및 식단 관리를 통해 만들어진 최상의 신체를 촬영하는 찬란한 결과물 그 이상으로, 개인에게 훌륭한 목표이자 동기부여가 된다. 바디프로필 촬영에 들어가는 스튜디오 대여를 비롯한 헤어·메이크업·태닝·소품준비 비용까지 고려하면 ‘돈money’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스마트폰 중독 방지 애플리케이션’도 일종의 자기 묶기를 통해 시간 및 학습 관리를 도와주는 서비스다. ‘포레스트’는 스마트폰 잠금 앱으로, 설정한 잠금 시간을 지키면 나무가 자라고 이를 어기면 말라 죽는 미니게임 형태를 활용했다. 유사 애플리케이션이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는 시장에서 참신한 컨텐츠를 접목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다.
참 잘했어요! 인정받기와 셀프 토닥임
두 번째 전략은 타인에게 나의 실제 루틴 수행행위를 노출하며 인정받는 ‘도장 받기’다. 코로나19로 급부상한 원격회의 프로그램이나 PC 모니터링 시스템이 그 도구로써 활용되곤 한다. 실제로, 최근 보스웨어Bossware 혹은 태들웨어(고자질 프로그램)Tattle+ware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소프트웨어는 재택근무 중인 직원들의 얼굴을 실시간 캡처하고, PC에 입력된 내용이나 인터넷 방문 기록을 체크해 관리자에게 전송하는 기능을 탑재한 원격감시 프로그램이다.
한편 온라인 작가 커뮤니티에는 ‘짓시’ 멤버를 구하는 게시글이 연일 올라오는데, 집에서 나태해지기 쉬운 전업 또는 겸업 작가들이 시간을 정해 화상회의 도구 짓시미트Jitsi Meet를 통해 모여 함께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손캠(손을 촬영하는 카메라) 또는 화면 공유를 통한 인증이 필수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도장 받기’는 페이스메이커를 통한 일방향 감시나, 그룹원들의 상호 감시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거나 동기부여 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전략은 자신의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는 ‘되돌아보기’다. 여기서는 검토를 뜻하는 리뷰review 보다 회고, 즉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에 가까운 의미다. 자기 돌봄을 목표로 하는 바른생활 루틴에게는 성과 측정보다 나의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는 되돌아보기 전략이 필요하다. 계획한 루틴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그저 되돌아보며, ‘셀프 토닥임’을 해주는 것이다. 루틴이들의 등장에 따라 문구·팬시시장도 순풍을 타고 있다. 하루를 돌아보는 ‘회고족’이 늘며 다이어리를 열심히 꾸미는 ‘다꾸족’ 또한 다시 증가하고 있기 때문. 다이어리, 감정 기록 앱 역시 꾸준한 인기다.
바른생활 루틴이를 사로잡아라
소비자가 하루하루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바른생활 루틴이’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 기업들 역시 그 성향을 겨냥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울 때다. 동기부여 및 자극 요소가 필요한 루틴이들에게는 앱 기능 중 푸시 알람이 유용한 도구다. 대표적으로 전자책 대여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서는 ‘루틴’ 알람을 커스텀 설정할 수 있다. 규칙적인 독서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유저 개인이 설정한 요일·시각에 맞춰 앱 푸시를 보내 책읽기 시작을 독려한다.
독서 목표를 설정하거나 통계를 살펴볼 수도 있어서 더욱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루틴 수립을 자극하는 캠페인도 효과적 비즈니스 전략이 될 것이다. 이미 농심 켈로그의 건강한 아침 10분 습관 만들기 ‘시리얼퍼스트 캠페인’, 백산수의 물 마시기 루틴화 ‘바른 물습관 캠페인’ 등 제품과 습관을 연계한 마케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앱을 통한 푸시 알람과 게시물 인증 등의 기능을 더해 적극적인 소비자 참여까지 유도한다.
더불어, HRM(인적자원관리)에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규칙 없는 것이 규칙’이라는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기본은 ‘신뢰’다. 이제 기업은 임직원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바른생활 루틴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회사와 직원이 윈윈win-win하는 건전한 지향점을 찾아야 한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방종을 경계하는 현대인, 나아가 일상을 설계하고 자기 향상을 도모하는 바른생활 루틴이. 개인과 기업은 그 궁극적 목표가 스스로의 만족과 자기 돌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올바른 방향성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