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하고만드는 재미, 모델링의 묘미죠
    이찬희 선수 삼성전기 프로 2022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프로토타입모델링 종목 동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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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년을 벼렸다. 

열일곱에 프로토타입모델링을 시작해

국가대표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나서기까지. 손등에 남은 무수한 상처만큼이나

치열했던 시간은 마침내 묵직한 동메달을 안겼다.

청춘의 올곧은 꿈이 이룬 쾌거,

삼성전기 이찬희 선수는 여전히 금빛 꿈을 꾼다.

 

* 프로토타입모델링은?

각종 가전기기, 자동차부품 등을 대량 생산하기 전에 디자인 요소와 주요 성능 구현 가능성을 검증하고자 CAD를 활용해 3D 모델링과 2D 스케치를 한 후 시제품을 제작하는 직종이다.
 

 

3년 만의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값진 동메달

제한 시간 22시간, 폐쇄된 경기장 안에서 무려 나흘 동안 펼쳐지는 접전. 경쟁자는 있지만 오롯이 혼자만의 싸움이다. 문제로 출제된 도면을 분석해 3D 모델링을 하고, 직접 케미컬우드를 깎아 그대로 시제품을 제작하는 프로토타입모델링 종목은 내내 긴박하게 진행된다.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한 이찬희 선수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날 없는 선풍기인 ‘블레이드 리스’가 문제로 출제됐어요. 기존에는 후보군을 미리 알려주고 그중 하나를 출제했는데 이번에는 당일 발표라 더 떨리기도 했죠. 실제로 처음 보는 도면이 나왔어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시제품 제작 과정에서 발생했어요. 기존에 사용하던 꼭 필요한 장비가 없더라고요. 결국 현장에 있던 공구를 즉석에서 변형해 사용했습니다. 사실 머리가 하얘져서 이것밖에 기억이 안 나요.(웃음)”
 


 

열악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대응한 덕분일까. 몇몇 실수가 마음에 걸려 메달을 포기하고 있던 이찬희 선수에게 값진 동메달이 걸렸다. 우리나라 선수단의 첫 메달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만에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인 만큼 간절함이 남달랐던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이찬희 선수의 메달 소식은 사기를 끌어 올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시상식 단상에 올라서도 얼떨떨하기만 했어요. 한국에 도착해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어머니의 목에 메달을 걸어드린 순간 비로소 실감이 나더라고요. 드디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구나.”
 

이찬희 선수가 묵직한 동메달을 쥐고 웃어 보인다. 프로토타입모델링 하나만 우직하게 파고든 시간이 고등학교 3년, 삼성전기에서의 2년을 더해 총 5년이다. 그동안의 땀과 노력을 메달 하나에 다 담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징표로는 충분했다.

 

프로토타입모델링, 설계부터 제작까지

“중학교 때만 해도 그저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경북기계공고에 다니던 동네 형이 기능을 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몸 쓰는 걸 좋아하니 재미있으려나 호기심이 생겼죠. 평소 나무 만지는 걸 좋아하고 깎아본 적도 있거든요. 그에 딱 맞는 직종이 프로토타입모델링이더라고요.”
 

이찬희 선수를 기능인의 길로 이끈 주인공은 2019년 카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옥내제어 직종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전필성 선수. 기능인으로 국가대표가 되고,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까지 따는 모습은 이찬희 선수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하지만 직종별 단 한 명뿐인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은 만만치가 않았다.
 


지역 대회 우승자끼리 전국대회에서 만나고, 전국대회에서 금메달,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국가대표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2년마다 기능올림픽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전년도 수상자와 다시 한번 겨뤄 최종 우승자 한 명이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인 2020년에 전국대회 금메달을 딴 후 국가대표 타이틀까지 연이어 거머쥔 이찬희 선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시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20시간 정도가 걸려요. 커피머신, 자동차, 스마트폰, 로봇팔 등 종류도 다양하죠. 도면 몇 장을 바탕으로 컴퓨터 모델링을 하고,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케미컬우드를 정교하게 깎고 다듬어 형체를 구현하죠. 마지막으로 도색까지 마무리해야 완성이에요. 학생 때부터 주말도 없이 쉬지 않고 훈련에만 몰두했어요. 국가대표 타이틀을 얻고 삼성전기 훈련생으로 입사한 후에는 기숙사에서 지내며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훈련을 이어갔지요.”

 

프로토타입모델링은 사이즈의 오차 없이 정교하게 설계해 만드는 것뿐 아니라 깔끔한 만듦새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3D 모델링과 2D 스케치 역량은 물론 주재료인 케미컬우드를 능숙하게 가공하는 손재주까지 필요한 까다로운 종목. 이찬희 선수는 하루하루 더 나아지기 위해 무려 5년의 시간을 쉼 없이 달렸다.
 

이제 금빛 지도자를 꿈꿔요

“사실은 2021년 8월 열리는 상하이 올림픽에 맞춰 전력질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올림픽이 무산되자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리더라고요. 이틀에 하나씩, 매번 다른 종류의 제품을 만드는 작업을 반복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올림픽이 1년 연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정말 힘들었어요.”
 

스무 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즐기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였다. 올림픽 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전진했기에 상실감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찬희 선수는 이내 마음을 잡았다. 그때 고등학교 선배이자 메달리스트 출신인 정현욱 코치의 든든한 조력이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새로운 꿈도 생겼다. 차기 국가대표 양성을 위한 코치로 활동하며 다시금 금메달을 노리는 것이다.
 

 

“프로토타입모델링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실력이 뛰어난 종목 중 하나거든요. 저는 아쉽게 동메달에 그쳤지만 후배들은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고 싶어요. 비결이요? 글쎄요. 역시 정신력 관리가 관건이지 않을까요. 지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힘이 되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호기심에 발을 디딘 프로토타입모델링, 사실 스스로 즐기지 않으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곧 눈을 반짝이며 말을 잇는다. “고생한 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잖아요. ‘이걸 정말 내가 만들었다니’라는 뿌듯함과 함께 힘든 순간을 잊게 돼요.”
 

스물하나, 아직 앳된 그의 손등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여럿 새겨져 있다. 숨기기보다는 “이게 정말 열심히 했다는 증거거든요.”라며 웃어 보인다. 최선을 다한 시간의 힘을 믿고, 자신의 노력을 자랑스러워하며, 새로운 내일을 설레며 기대할 줄 아는 청년. 이찬희 선수가 치열하게 배우고 익힌 기능은 단순히 프로토타입모델링뿐만이 아니라 거침없이 도전하고 실행하고 꿈꾸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호기심 많은 스물한 살 청년의 금빛 내일은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업데이트 2022-11-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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