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명과 청렴의 시대적 함의
    글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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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에서의 화두가 무엇인가를 통해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민주화라는 말이 대세라면 그 사회는 아직 독재 치하이거나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가령 근 1년 가까이 전쟁에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무엇보다 평화가 간절한 바람일 터이다.
 

돌이켜 보면 대략 민주화가 진전되어 가면서부터 우리 사회에 청렴·투명 등이 차츰 익숙한 말로 다가왔다. 우리에게도 그 가치들이 본격적으로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즉 우리 사회에는 아직 상당한 정도로 부패가 있고 투명하지 못한 요소들이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투명과 청렴이 요구되는 사회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3대 요인으로는 흔히 기아(굶주림), 폭력(전쟁과 폭압), 괴질(유행병)이 꼽힌다. 가난의 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한다. 개인적 고통을 넘어 천재지변에 따른 흉년으로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사례가 숱하게 기록되어 있다. 폭력에 의한 불행도 널리 퍼져 있었다. 개인 간의 작은 다툼에서부터 대소규모의 전쟁으로 다치고 죽어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이유도 모른 채 사람을 거꾸러뜨리는 괴질의 유행은 공포 그 자체였다. 중세에 유럽 전체를 휩쓸면서 엄청난 사람들을 희생시킨 페스트가 대표적인 경우다. 

 

고대와 중세를 통해 인류를 고통스럽게 한 기아와 폭력과 괴질은 근대에 접어들면서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 생산 총량이 획기적으로 커

졌다. 가난을 넘어설 수 있는 경제적 기초였다. 그러나 문제는 불평등이었다. 부익부 빈익빈은 그 이전부터도 관찰되는 인간사회의 기본 모순인데 생산력 확대와 함께 그 격차가 더 커진 데서 오히려 더 문제가 되었다.

이를 해소하고자 사유재산의 철폐를 주장하는 소련혁명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부의 불평등은 해결되지 못한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절대 기아의 고통에서 벗어난 인류의 비율이 대폭 커진 것은 사실이다. 괴질 또한 과학혁명으로 대부분 그 원인이 밝혀지고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졌다. 전쟁은 아직 근절되지 않은 채 그 규모가 커졌으나 총체적으로 그 빈도는 현저히 감소하였다.
 

자본주의 발달과 시민혁명 등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보편화 되어 갔다. 아직도 많은 지역과 국가에서는 독재와 압제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으나 어쨌든 이제 민주주의는 인류의 기

본적인 생활 조건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우리 역시 크게 보면 인류사의 전체 도정과 궤를 같이해 왔다. 원초적 불행의 3대 요소였던 기아와 폭력과 질병을 이제는 거의 극복하였

다. 근대화의 핵심이라 할 민주화의 과제도 수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 속에서 잘 수행해 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진사회로의 진입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예를 들면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함께 일상생활 속의 소소한 문제들까지도 하나하나 척결하고 넘어서려는 요구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일환으로서 청렴과 투명의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도 상당한 정도로 진척되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선진사회를 향해 가는 과정에 있음을 말한다.
 

돌아보면 이런 선진사회를 일찍부터 내다보며 우리를 일깨운 선각자가 있었다.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다. 그는 일찍이 나라를 잃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우리 한반도에 모범적인 공화국을 세우자고 동포들을 일깨우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자유롭고 평등한 진정한 민주독립국가를 내다보며 정직을 강조하고 그런 개인들이 어울려 사는 신용사회를 선망하였다. 정직·신용·청렴·투명 등은 사실 한 묶음의 어군이다. 선진국 수준의 생산력과 민주주의가 안착하는 과정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들이다.
 

우리가 현시점에서 청렴과 투명을 강조하고 그 온전한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업데이트 2023-02-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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