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과 예술의 융합, 대한민국 대표 가구를 만들다
    우수숙련기술자 김장회 우드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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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이르러 공간은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다. 공간을 채우는 가구가 인테리어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목재에 기술과 예술을 새겨넣는 가구숙련기술인, 우드갤러리의 김장회 대표를 만나보았다.

글 이경희  사진 이성원
 

 

손재주가 좋았던 소년, 기술인이 되다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우드갤러리 매장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풍겨오는 나무 향기가 방문객을 반긴다. 천연 나무를 다듬고 잘라 만들어낸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정취도 뒤따른다.

김장회 대표가 가구에 입문한 건 비교적 어렸을 때다.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공부를 잘했고, 교육에 진심이던 아버지 덕분에 고등학교까지 진학했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이 계속 공부를 하는 건 욕심이라는 철든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까지 찾아와 만류했지만 결국 학교를 떠나, 기술을 배우고자 무작정 세차장에 취직했다.
 

한동안 세차만 반복하던 그는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서울로 올라왔다. 체계적으로 기술을 배우고자 직업훈련을 시작한 것. 높은 경쟁률을 뚫고 훈련생이 된 그는 건축목공 과정을 선택하며 본격적으로 가구 직종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은 반도체나 개발 분야가 전망이 밝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가구를 최고라 쳤어요. 아파트가 분양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구 사업은 떼돈을 버는 사업이라 여겨졌죠.” 

시골에서 자란 김장회 대표에겐 타고난 손재주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무를 깎아 썰매, 팽이, 연 등을 만들었던 솜씨는 훈련원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면 금세 따라 했고, 어려워하는 주변 친구들도 많이 도와줬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김장회 대표는 기능올림픽 대회를 위한 특수훈련생이 됐고, 위계질서가 강한 분위기 속에서 밤늦게까지 훈련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방대회, 전국대회에 차례로 도전하며 마침내 국가대표로서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출전 자격을 얻게 됐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그리고 창업까지

김장회 대표는 1985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28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가구 직종 분야에 도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저는 기술을 배워서 빨리 돈을 벌고 싶었어요. 저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제가 가진 기술을 전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지요. 그래서 메달을 땄을 때 더욱 기뻤습니다. 제 꿈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이후 브랜드 침대회사, 원목가구 회사 등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1992년, 종합가구회사 우드갤러리를 창업했다. 워낙 어린 나이에 입문했기 때문에 그의 나이 채 서른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구에도 유행이 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작업 조건도 끊임없이 달라졌다.

창업 후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노동집약적 사업이었던 가구 제조업은 동남아시아로 공장들을 옮겨갔고, 아이템 전환 역시 빠르게 이루어졌다. 대형가구들은 지금도 김장회 대표가 디자인·설계해서 해외 아웃소싱을 하고 있는데, 도마 등 원목 소품 역시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그 종류가 크게 늘어났다. 그는 급변하는 시장에 대비해 꾸준히 공부를 이어갔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축인테리어 전공으로 대학도 마쳤다. 수없이 가구박람회를 다녔고, 아웃소싱을 위해 매달 베트남 공장에 방문해 개발작업에도 매진했다.
 

한편 월넛, 오크, 애쉬 등 좋은 원목을 골라 좋은 가구를 만드는 게 기본이라는 그에게는 몇 가지 엄격한 원칙이 있다. 디자인, 가격 그리고 품질이다. 디자인에만 집중하면 실용성이 부족한 작품이 되고, 가격에만 집중하면 제품의 질에 문제가 생긴다. 튼튼하기만 해서는 또 소비자의 심미안에 차지 않는다. 김장회 대표는 이를 위해 친환경 도료와 천연원목을 이용하고, 전통적인 짜맞춤 기법과 최신설비를 사용해 어떤 수입 가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섬세한 가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덕분일까? 우드갤러리에는 단골이 유난히 많다. 식탁을 사 갔던 손님은 다시 와서 장식장을 사가고, 지인들에게 소개해 또 다른 단골이 생기곤 한다.
 

 

대한민국 가구제작의 밝은 미래를 꿈꾸다

김장회 대표는 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아들까지 대를 이은 가구 마이스터 가문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 역시 가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와서 나무를 만지고 자르면서 놀던 아이였죠. 대학까지 합격해 놓고선 급작스럽게 진로를 바꿨는데, 입문 8개월 만에 전국대회에서 7등을 하는 등 저력을 보여주더군요.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해 우수상 받기도 했습니다.”
 

큰아들까지 합세해 세 부자가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지금, 김장회 대표는 스스로를 ‘좋아하는 일을 가족과 함께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 말한다.

가구에 몰두한 지 어느덧 40년. 이제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장, 국제심사위원, 가구 마에스트로, 산업현장 교수 등으로 더 바쁜 일상을 보내며 기술 전수와 후진양성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저는 평생 혜택을 받아왔어요. 좋아하는 가구를 만들었을 뿐인데 훈장부터, 포상금, 기능장려금 등 다양한 기회를 얻었고, 지금도 누리고 있죠. 이제 받은 만큼 돌려드리고 싶어요.”
 

2021년, 김장회 대표는 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됐다. 그동안은 타이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후배들의 기대에 보답하고 자신을 부르는 수많은 호칭을 통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비로소 명장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나무를 만진 지 40년이 넘었지만,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다는 김장회 대표. 그의 꿈은 명확했다.
 

“앞으로 좋은 사람들과 차 한잔이든, 막걸리든 먹고 마시면서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요. 가구를 배우려는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제 일엔 은퇴가 없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이 일을 끝까지, 오래도록 놓지 않을 것입니다.”

 

 

업데이트 2023-03-1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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