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5분의 시간도 헛되지 않게, 자격증으로 벼려낸 자부심
    2022년 숙련기술 장려 활동 평가 최우수사례 선정 우수숙련기술자 김영진 (주)세기리텍 기술이사
  • 3957    

빨리 달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꾸준함을 갖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 온 김영진 ㈜세기리텍 기술이사의 꾸준함은 자그마치 103개의 자격증으로 돌아왔다.
그의 삶에 있어 자격증은 먹고 사는 도구이자, 절박한 도전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일깨워준 ‘전기’, 인생을 바꾸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소년의 삶이 달라진 건 중학생 때였다. 20 가구가 모여 살던 시골 마을에 뒤늦게 개통된 전기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빛이라곤 호롱불뿐이었던 밤에 형광등을 켜는 일이 가능해지자 그에게도 반짝이는 꿈이 생겼다. 바로 ‘전기기술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1979년, 대구 영남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야간과정에 진학해 낮에는 일을, 밤에는 공부를 이어가며 ‘전기기능사’ 자격을 취득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김영진 ㈜세기리텍 기술이사가 첫 자격증을 따기까지의 이야기다.
 

“1982년 1월, 공업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어요. 당시 기업에서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요구했고, 저는 이미 취득해 둔 덕분에 쉽게 취업하며 병역 특례 혜택까지 받을 수 있었죠.”
 

 

본격적으로 전기분야에 입문해 처음 맡게 된 업무는 선박 전선 설치공사. 고된 업무 환경에서도 그를 버텨내게 한 것은 대기업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먹고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입사 6년이 되던 해, 조선업계 불황으로 조선사업본부에서 구조조정이 단행돼 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했던 것. 하지만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엔진사업본부로 인사이동이 돼 오히려 새로운 일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동시에 ‘전기설비 유지보수’라는 새로운 업무를 위해 기술을 익힐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때 더 높은 등급의 국가기술자격증인 ‘전기공사산업기사’ 취득이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주경야독이 필수인 상황이었고, 고졸인 제게 전문대학 수준의 산업기사 공부는 분량도 내용도 버거웠지만 끈기로 승부를 봤어요. 그렇게 매일 3시간씩 6개월간 꾸준히 공부한 끝에 결국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죠.”
 

 

꾸준함, 103개의 자격증으로 돌아오다

전기공사산업기사에 이어 전기산업기사 합격에도 성공한 그는 본격적인 자격증 사냥에 돌입했다. 전기기사, 전기공사기사 등을 연이어 취득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갔다. 낙방의 고배를 마신 적도 있지만 포기는 결코 없었다. 그리고 1999년, 마침내 전기분야 기능인의 최고봉인 전기기능장 취득까지 성공했다.
 

“고졸인 제가 어렵기로 소문난 기능장 시험에서 기능대학 출신자를 제치고 당당하게 얻어낸 수석합격이라 더 의미 깊었죠. 매스컴에 화제의 인물로 보도되고, 회사로부터 특별 포상과 해외연수 기회를 받기도 했고요.”
 

2001년에는 직무적 변화를 겪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사내 기술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약 20년간 정들었던 생산현장을 떠나 교육·훈련 전문가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전기분야 직업훈련교사로서 보낸 시간도 꼬박 19년 3개월, 3천 명이 넘는 기술연수생을 배출하는 동안에도 자격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2년 평생학습으로 학점은행제를 활용하여 전기공학사를 취득하고, 2011년 직업능력개발 최우수유공자로 선정돼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영광스러운 순간도 이와 같은 노력이 있어서였다.
 

“물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쉬고 싶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단 5분의 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겠다는 신조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리고 그 수 분이 모여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죠.”
 

신조는 늘 결과로 돌아왔다. 3개의 기능장, 3개의 기사, 4개의 산업기사, 20개의 기능사, 기타 전문자격증을 포함해 그가 취득한 공인기술자격증의 총합은 무려 103개. 김영진 기술이사가 건네 보이는 자격증에서 각고와 단련의 세월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넘어야 할 것은 오직 어제의 ‘나’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20년 회사의 불황으로 인한 명예퇴직이었다.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그는 보란 듯이 연 매출 880억 원, 종업원 59명 규모의 유망 중소기업 ㈜세기리텍에 재취업했다. 퇴직 후 불과 2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자격증은 이처럼 계속해서 김영진 기술이사의 삶을 이끄는 버팀목이 됐다. 작년에는 울산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배터리 리사이클링전문기업 ㈜세기리텍에서 전기시설물 유지보수 및 운용관리 책임자로 근무한 지 약 2년, 그는 올해 기술이사로 승진해 이제 기업의 더 먼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임원이 됐다.
 

 

“최근에는 생산현장 혁신을 위한 ‘생태스마트공장 구축’에 몰두하고 있어요. 현장의 노후화된 설비를 개선하여 에너지 및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탄소중립공장으로 탈바꿈시켜 기업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영진 기술이사의 활약은 회사 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이자 대한민국스타훈련교사로서 오래 활동해왔고 13권의 기술서적까지 집필해온 그는 후진양성에도 진심이었다.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전기학과 산학겸임교수로서, 41년간 산업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전기실무기술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중소기업에 관련 기술지도 및 컨설팅을 제공하거나, 국가기술자격 시험감독에 참여하는 등 스스로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각 영역에서의 기여를 인정받아, 최근 2022년도 숙련기술 장려 활동 평가에서 최우수활동자로 선정되어 고용노동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일과 공부, 기술 전수와 후진양성에도 진심을 다하는 김영진 기술이사에게 못다 이룬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전기직종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등 이미 숙련기술인으로 공인을 받은 셈이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한민국명장이라는 더 큰 목표에 도전할까 합니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여러분도 끊임없는 경력개발과 자격증 준비로 승부를 거시길 바랍니다.” 

 

매일 써내려가는 새로운 기록과 타이틀. 그가 넘어야 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어제의 자신일 뿐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기술한국의 밝은 미래를 엿본다.

 

 

업데이트 2023-04-10 20:26


이 섹션의 다른 기사
사보 다운로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