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과 도전, 기술로 꿈꾸는 100년 강소기업
    2023년 1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그린이엔에스 이숙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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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진출 보편화에도 여전히 벽이 높은 분야가 존재한다.
㈜그린이엔에스의 이숙희 대표는 그래서 더욱 눈에 띄는 인물이다.
골목길 전파상으로 시작해 정보통신 공사로 그 영역을 확장했고, 이제 친환경에너지 전력사업으로까지 걸음을 내딛고 있다.
‘여성기술인’이 아니라 ‘기술인’으로서 나아가는 그의 희망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파상 기술자에서

강소기업 대표로 성장하기까지

전국 곳곳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날, 나주시에 위치한 ㈜그린이엔에스를 찾았다. 억수 같은 비를 뚫고 만난 이숙희 대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안전모와 우비 차림이었다. 말 그대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다 온 기술인의 모습 그 자체. 빗속에서 대형 전봇대 설치 작업을 지켜보다 온 참이었다.
 

처음 이 직종에 뛰어든 것은 결혼 직후였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생활전선에 직접 나선 것이다. 1987년 대한민국은 시대적 격변을 겪고 있었고, 통신업계에는 한창 디지털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늘 원리를 알고 싶어 했어요. 하다못해 부엌에서도 고구마 줄기는 왜 어느 때는 잘 벗겨지고, 어느 때는 잘 안 벗겨질까 궁금해했죠. 하지만 모두 가난하게 살았던 그 당시는, 여성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남편이 통신기술자였지만 이숙희 대표는 자신의 이름으로 전파상을 차렸다. 일을 하고 싶었음에도 키가 작아서, 몸집이 왜소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고, 결국은 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화기가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던 시기, 이숙희 대표의 전파상은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다른 전파상과 달리 찾아온 고객에게 상세한 설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곧바로 수리까지 해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객 서비스’의 개념을 일찌감치 깨우쳤던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손님들의 신뢰를 얻었고, 회사를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렸다. 그리고 그 성장에 따라 사명도 여러 번 바꾸었다.
 

 

“기존 사명이 ‘금성전화공사’였는데, 이 용어 자체가 우리의 한계를 결정짓는 것 같았어요. 마침 IT 열풍이 불기 시작하며 통신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 1980년대 말이었기에, 사명을 ‘그린정보시스템’으로 변경했죠. 이후 2019년 환경사업 분야에 주력하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결국 ‘ENS’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녹색의 생명력을 좋아하던 이숙희 대표는 그린(green)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한참 전, 지금의 사명을 완성했다. ‘그린이엔에스’는 이처럼 회사의 비전과 대표자의 가치가 오롯이 녹아 있는 이름이었다.
 

AC·DC 다채널 전력미터가 
가져다준 명성

현재 그린이엔에스의 사업은 크게 통신과 전력 분야로 나눌 수 있다. 통신사업의 경우 기간통신사업자인 KT의 선로구축 협력사 업무와 각종 관공서에 네트워크 구축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전력사업으로는 자체 연구개발한 AC·DC 다채널 전력미터를 중심으로 하는 전력 IT사업을 진행 중이다. AC·DC 다채널 전력미터는 그린이엔에스의 사업 분야를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다.
 

 

“AC·DC 다채널 전력미터는 말 그대로 AC와 DC의 전력량을 동시에 측정하는 도구로서, 특히 신재생발전원의 발전량 그리고 전력공급과 전력소비량을 정밀하게 계측하여 관리시스템으로 전송하는 장비입니다. 신재생에너지원뿐만 아니라 스마트빌딩과 스마트공장의 전력부하감시에 적합하며, DC 전력설비의 에너지 효율 측정에도 활용할 수 있지요.”
 

이숙희 대표는 제품의 개발 배경으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를 개발할 당시는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또 DC 배전에 대한 기초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때였어요. 기존의 전력량계가 AC전력량을 측정하는 것처럼, 향후 AC와 DC가 혼재되는 배전망에서는 AC와 DC를 하나의 장비로 측정하는 전력량계가 필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AC채널 19개와 DC채널 3개를 동시다발적 으로 모니터링하며 각기 다른 직류와 교류의 전력 상태와 데이터를 운영·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이 장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수연구개발 혁신제품으로 지정됐고, 현재 해외 수출까지 바라보는 그린이엔에스의 효자 아이템이 되었다.
 

 

꼼수는 없다,

정직과 신뢰를 원동력으로

수백 개에 달하는 KT 협력사 중 유일한 여성 협력사 대표로서 걸어온 길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기술적인 면에서 신뢰받기까지 먼 길을 돌아와야 했으며, 영업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남편을 데려오라”며 소리치는 어르신들이 있는 것 또한 여성 기술인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숙희 대표는 이 모든 장애물을 오직 기술과 실력으로 뛰어넘어왔다.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은 채 날카로운 혜안으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쉼 없이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린이엔에스는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바로 친환경 에너지 및 기후변화대응 관련 사업이다.
 

 

“현재 아프리카 가나에 고효율 쿡스토브를 보급하는 청정개발체재 사업(CDM)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쿡스토브는 세라믹·금속·시멘트로 제작되어, 연료의 사용량을 20~30% 이상 절감해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줄여줍니다. 이 사업은 한국동서발전이 기후변화센터와 협력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저희는 현지 사업 운영의 용역을 수행하고 있지요.”
 

다양한 도전을 해왔고, 또 새로운 도전을 앞둔 이숙희 대표가 40여 년 동안 기업을 운영해오며 고수해 온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바로 “꼼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꼼수는 곧 또 다른 위기가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타파하고자 또 다른 꼼수를 부리게 되지요. 결과적으로 그간 쌓아온 정직과 신뢰가 다 깨져버립니다. 제게는 이런 마음가짐 자체가 바로 리스크관리 전략이에요.”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정도(正道)를 지켜온 이숙희 대표는 올해 초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그는 이제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향후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숙고하고 있었다.
 

“제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며,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서 100년 기업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가업을 승계 중인 아들과 함께 모자(母子) 기능한국인이 된다면 더욱 기쁘겠지요.”
 

수많은 목표 속에서도 무엇보다 명확한 꿈이 있다고 말하는 이숙희 대표. 그것은 바로 기술인으로서, 사업가로서 겪어온 다양한 경험을 후배 기술인들에게 전승하는 것, 그리고 보다 발전된 기술강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빛나는 꿈이었다.
 

업데이트 2023-08-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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