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장의 숙련기술, 세월 갈수록 무르익죠
    (사)대한민국명장회 서완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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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명동에는 잠만 자고 나면 새로운 의상실이 생겼다.
그곳에서 차곡차곡 꿈을 키운 청년은 입체패턴의 대가로 성장해 후배들을 이끌고, 이제는 대한민국명장회를 이끌며 숙련기술인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힘을 쏟는다.
쉼 없이 달려온 50여 년, 여전히 명동을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명장회 서완석 회장은 꿈을 재단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입체패턴 1세대, 대한민국 패션의 선구자
 

“아버지가 예순이 넘어 저를 얻었어요. 고등학교 졸업 당시 이미 연로해진 부모님을 보며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의상실을 하던 친척의 권유로 명동에 발을 딛게 됐습니다. 국제복장학원에서 기본기를 배우고 의상실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서완석 회장은 명동에서 패션의 전성기를 온몸으로 누렸다. 재단사로서 기술이 느는 재미에 고단한 줄도 모르고 보낸 시간이었다. 이미 손에 익은 기술만으로도 제 몫을 충분히 해내던 그였지만 더 나은 기술이 있는 곳이라면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렇게 한 세미나에서 접한 일본인 강사의 입체패턴 강의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출국 허가를 받는 데만 6개월씩 걸리던 1982년, 과감히 일본 유학을 떠난 것이다. 어렵게 떠난 유학길인 만큼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입체재단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반탄디자인연구소’와 ‘일본문화복장학원’에서 기술을 익히고, 주말에는 스승의 작업실에서 일본 패션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입체패턴을 익히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곧바로 꽃길이 펼쳐지진 않았다.
 

“일반적인 패턴은 종이에 옷본을 그린 후 재단하지만 입체패턴은 마네킹에 바로 천을 대고 핀을 꼽으며 패턴을 만든 다음 본을 뜹니다. 곡선이나 볼륨감을 더 생생하게 구현할 수가 있죠. 하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입체패턴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었어요.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드니까요. 그렇다고 평면으로 돌아가면 힘들게 배운 기술이 녹슬 것 같아 ‘입체패턴연구소’를

직접 차리게 됐습니다. 지금 있는 명동, 이 자리에요.”
 

 

대한민국 입체패턴의 선구자로서 묵묵히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패션기업들이 기성복 시장을 확대하며 디자인의 다양화를 꾀했고, 입체패턴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국내에서 믿을만한 입체패턴 전문가라면 단연 서완석 회장. 그에게 입체패턴 기술지도를 받지 않은 패션 대기업 소속 재단사가 없을 정도로 그는 우리나라 패션의 진일보에 공헌했다.

 

시간을 뛰어넘는 50년 숙련기술

패턴사는 그야말로 숨은 조력자다.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지만 최고의 옷을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으로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해나간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아닌 패턴사가 주목을 받는 이례적인 일이 생겼다.

1997년 제1회 서울패션위크 전시관에 프랑스의 세계적 디자이너 마들렌 비요네의 디자인을 완벽하게 재현한 옷이 걸린 것이다. 전문가도 까다로운 숙제로 여길 만큼 이음선 없이 한 폭으로 디자인한 드레스의 등장. 과연 누가 어떻게 구현했느냐에 관심이 쏠렸고, 이는 입체패턴에 몰두한 지 24년 만에 ‘서완석’이라는 이름이 주목받는 순간이었다.
 

 

“국내에서는 최초이자 30년 만에 재현한 드레스였어요. 섬세한 주름과 굴곡이 모두 한 폭으로 이어지는 만큼 저 역시 수수께끼를 풀 듯이 접근해갔죠. 그간의 경험, 숙련기술인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입체패턴 기술이 주목받으며 2004년 대한민국명장, 패션디자인 분야 양장 명장에 오르는 영광도 얻었죠.”
 

명장의 가르침을 원하는 학생들이 늘자 서완석 회장은 2006년, 모즈복장학원을 열어 본격적으로 후학 양성에 나섰다. 그를 거쳐 간 제자만 어림잡아 2,000여명. 해외 유명 디자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방학이면 그 밑에서 입체패턴을 배웠다.
 

“실루엣, 비례감, 균형을 강조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옷이 만들어져요. 특히 체형을 따라가는 옷이 아니라 체형을 감싸주는 옷을 만들라고 강조해요. 체형에 맞추는 건 너무 뻔하잖아요. 우리는 더 멋있게,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옷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의 패션 철학은 시대를 관통한다. 2013년, 패턴사로는 처음으로 세계패션그룹 한국지부가 수여하는 패션대상을 받은 그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2017년 패션디자인 박사가 되었다. 2020년에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PB 브랜드 텐먼스의 론칭에 참여해 3년을 함께하며 매출 예상액의 270%를 달성하는 대박을 이끌었다. 여성브랜드 더온미와의 성공적인 협업 또한 명장의 기술은 시대를 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
 

 

세계로 뻗어가는 K-명장의 자부심

2023년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숙련기술인으로 외길을 걸으며 명장에 오른 지 20년만에 대한민국명장회 회장을 맡으며 명장의 위상과 사회적 책임을 높이게 됐다. 마침 올해로 대한민국명장회가 30주년을 맞는 해인 만큼 그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숙련기술인이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명장회가 더 다양한 활동을 펼쳐야죠. 아직도 기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명장들이 기술 하나로 은퇴 없이 50년 이상 활약하는 모습을 통해 숙련기술인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서완석 회장은 취임 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명장의 자부심을 강조한 창립3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고, 1박2일 워크숍을 통해 명장회 조직을 더 탄탄히 구축했다. 무엇보다 국

제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하노이산업대학과 맺은 MOU는 걸출한 성과로 꼽힌다. 우리나라 명장이 특임교수로 파견되어 기술지도를 하고, 교류 첫해 학생 2~3명을 명장이 운영하는

산업체에 취업시키는 것이 주요 골자. 우리의 뛰어난 숙련기술인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기술 한류의 모습이다.
 

 

“9월에는 명장 150명이 함께하는 봉사활동, 10월에는 금속산업대전 전시와 인사동 전시, 11월에는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어요. 홈페이지 개편과 함께 명장 기념품을 판매해 재정도 보충할 생각이고요. 아주 바쁩니다.”
 

서완석 회장은 기술은 하루아침에 무르익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숙련기술은 10년, 20년 세월이 쌓일수록 더 깊어진다. 때문에 연로한 명장이 계속종사장려금을 받지 못하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꼼꼼한 통계를 기반으로 한 개선안 마련에도 힘쓰고 있다. 숙련기술인이 쌓아온 성취를 단절 없이 꾸준히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명장은 단순히 기술만 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인성과 품격도 갖춰야죠. 그래서 윤리, 철학, 도덕도 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본이 되어야 하니까요.”
 

서완석 회장은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말한다. 기술과 재능의 빼어남은 물론 훌륭한 인품을 갖춘 사람, 명장의 품격이란 이런 것이다.

 

업데이트 2023-08-2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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