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들의 세상
    네버랜드 신드롬네버랜드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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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되기를 한껏 늦추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영원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 이른바 ‘네버랜드’의 피터팬들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생애 주기가 변화함에 따라 트렌드로 떠오른 네버랜드 신드롬에 대해 알아본다.

#어른이

#키덜트의 대중화

#추억을 팔다

#시니어 팬덤

#명랑골프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어른이

한국 사회에는 또래보다 젊게 사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동안’이 유행이던 시절처럼 외적인 젊음뿐 아니라, 행동과 마음가짐에까지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멋지다’ 보다 ‘어려 보인다’라는 칭찬을 더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흔히 ‘어른’ 하면 떠올리는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자신을 어른이자 어린이라는 뜻에서 ‘어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이 들기를 거부하며, 영원히 아이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을 서울대학교 소비자트렌드분석센터는 ‘네버랜드 신드롬’이라 명명했다. 동화 속 피터팬과 친구들이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으며 살아가는 곳 ‘네버랜드’의 이름을 딴 이 현상은 성인이 되어서도 유년 시절의 순수함과 동심을 보존하려는 욕구로부터 시작됐다.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사회적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어른’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동일한 개념으로 오해하기 쉬운 ‘피터팬 신드롬’과는 그 결이 다르다. 피터팬 신드롬이 현실 도피를 위해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고 ‘어른아이’로 남아 퇴행하는 부적응 상태를 일컫는 말인 반면, 네버랜드 신드롬은 사회 전반에 ‘어른이’라고 불리는 것을 즐거워하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점에서 보다 가치중립적 용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어리게 살고 싶은 욕망은 철없음이 아닌, 유쾌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잃어버린 추억과

순수함을 찾아서

#키덜트의 대중화

#추억을 팔다

어른들에게 ‘띠부씰’의 추억을 안겨줬던 포켓몬 빵의 재출시는 전국에 ‘어른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 사례다. 포켓몬 빵이 처음 출시된 1990년대 당시 어린이였던 고객의 향수를 자극했고, 재출시 43일 만에 1,000만 개가 판매되며 옛날의 인기를 넘어섰다.
 

이처럼 일부의 취미라 여겨지던 어린 취향, ‘키덜트(kid+adult) 문화’가 순수·대중문화 시장에서 마케팅 수단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완구 기업 레고(LEGO)는 2020년 미국에서 “어른들 환영(Adults Welcome)”이라는 캠페인을 벌였으며, 홈페이지에 성인을 위한 별도 섹션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 장난감 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8%가 본인을 위한 장난감 또는 보드게임을 구입한 적이 있을 정도로, 키덜트는 진정한 대중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편,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추억’일 것이다. 미국에선 추억을 무기로 한 관광 아이템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어른들을 위한 서머캠프’다. 서머캠프는 우리나라의 청소년 야영 또는 수련회와 비슷한 것으로, 전국 곳곳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다.

추억의 서머캠프를 그대로 재현한 어른들의 서머캠프에는 참가 후 24시간 동안 직업을 밝히지 못한다는 독특한 규칙이 있는데, 이는 사회인의 모습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친구가 됐던 오래된 경험을 상기시켜준다. 어른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또는 잊고 살던 예전의 순수함을 다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는 계속해서 인기를 끌 전망이다.

 

지금 나이 그대로,

즐겁게 놀다

#시니어 팬덤

#명랑골프

이제는 여가생활에서도 더 이상 나이가 중요치 않아졌다. 늦은 나이에 연예인을 좋아하게 된 고연령층의 팬을 지원하기 위한 팬덤 전문 학원이 등장할 정도다. 가수 임영웅의 팬들이 운영하는 영웅시대 네이버 밴드에서 만든 ‘참된 덕후 교실’은 ‘덕질’ 활동에 필요한 음원사이트 가입 및 승인 방법, 각종 응원법 등에 대한 무료 교육을 제공하며 시니어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느 여고생들의 놀이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활동을 즐기는 중년 여성의 모임도 존재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양말을 무지개색으로 맞춰 신고, 우정반지를 나눠 끼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한다. 한편 골프에 입문하는 ‘골린이’가 많아짐과 동시에 SNS에서는 ‘명랑골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규칙이 복잡하고 엄격한 기존의 골프와 달리, 명랑골프는 룰이나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주변인들과 편안하게 즐기는, 일종의 새로운 골프 문화다. 이러한 흐름은 코로나19 이후 실내를 벗어나 야외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골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생겨났다.

불안으로 가득 찬 사회 속, 어른의 삶에서 벗어난 취미는 삶의 압박감을 덜어주는 안식처가 된다. 돌이켜보면 ‘청춘’이라는 분류가 등장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았고, ‘중년’ 역시 20세기 말에 탄생한 개념이다. 성숙함과 어른스러움으로 스스로 한계를 지을 필요가 있을까? 어른의 무게를 짊어지고 불필요한 체면을 차리기보다, 하루쯤 ‘요즘 어른’의 모습인 어른이로 살아가 봐도 좋을 것이다.

 

업데이트 2023-08-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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