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임없는 도전으로 장애를 이겨낸 대한민국 용접기능장
    용접기능장 자격 취득 수기 - 글 강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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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내 머릿속은 충격과 좌절로 온통 뒤범벅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취업해 당장 돈을 버는 것이 급선무였을 수도 있지만, 결국 남은 학업에 충실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앞으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라도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고등학교 2학년 생애 처음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이어진 성취 뒤 찾아온

좌절

고등학교 졸업과 군 복무 후, 나는 1994년 12월 경남 거제도 소재 모 중공업 기능직 생산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직장 선배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신입사원의 티를 벗을 때쯤, 노동부가 후원하는 사내 민간기능경기대회가 개최되었는데, 나는 2001년과 2003년에 각기 선각다기능 부문, 철구다기능 부문에 입상할 수 있었다. 너무나 큰 성과였다. 부서 내에서도 기술을 인정받고, 선체건조기능사까지 연이어 취득하였다.
 

그러나, 불행이 나의 행복을 질투한 것일까. 2007년 4월 건조 중이던 선박의 선실 내부 작업 중 철판 약 1,000kg의 내부 부재가 넘어지면서 나는 허리뼈 3·4·5번 골절과 대동맥박리, 시신경 위축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지역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하여 헬기로 마산 소재 병원으로 이동해 허리 수술을 받은 후, 다시 서울의 큰 병원으로 후송돼 대동맥박리 수술까지 견뎌내야 했다.
 

긴 입원 생활 후 회사로 복귀했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계속된 기억력 감퇴와 우울증을 겪었다. 아내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으로 자꾸만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불행이 오면 다시 행복도 온다고 생각한 나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장애를 이겨내고 취득한 용접기능장 자격,

지금의 나를 만들다

2011년 회사 사내 야간전문대학에 입학하여 낮에는 회사업무, 밤에는 학업에 매진했다. 그 결과 수석 졸업이라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으며, 기억력과 건강도 점차 회복되어 갔다. 이어서 모 대학에 전문학사과정으로 입학도 하게 됐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니 점차 불편한 몸과 부정적인 생각이 희미해지며 스스로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전문학사과정을 밟으면서 나는 ‘용접기능장’ 국가기술자격증에 도전하게 됐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쪽 눈에 장애가 있다보니 용접 실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자격증 취득을 준비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필기는 무난히 합격했지만, 문제는 실기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실기시험에서 연이어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며 좌절도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심기일전하여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네 번째 시험 날. 왠지 모를 자신감이 나를 감싸고, 결과물을 제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그날의 시험으로 결국 용접기능장에 최종 합격하게 됐다. 나는 마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처럼 승리의 눈물을 흘렸다.
 

용접기능장 취득 후 어느덧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수험생이 아닌 국가기술자격시험 감독위원, NCS 홈닥터 등 각종 대외활동을 하고 있으며 2021년 직업능력의 달에는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을, 2022년 근로자의날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자격증은 나를 장애라는 나약함에서 벗어나 밝고 희망찬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마음에 장애와 불행을 안고 있는 모든 분이 나의 이야기로 조금이나마 희망과 행복을 되찾길 바란다.

 

업데이트 2023-11-1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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