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련기술인의 우직한 외길, 세계로 통하다
    200호 이달의 기능한국인 ㈜서울엔지니어링 이해양 대표
  • 708    

40년을 오롯이 바친 일터에는 꿈과 열정, 청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앳된 기능공으로 출발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이해양 ㈜서울엔지니어링 대표.
주조·열처리 분야 전문 기술인으로 200호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그는 숙련기술인의 자긍심을 높이며 대한민국 뿌리산업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입사 40년, 기능공부터 대표이사까지

“83년 11월 18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엔지니어링에 입사했어요. 홍천이 고향이고 춘천에서 기계공고를 나왔는데, ‘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가 멋지게 다가오더라고요. 물론 처음에는 현장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죠.”
 

인천 주안국가산업단지에 자리한 서울엔지니어링은 제철소에 공급하는 고로(용광로) 관련 설비 전문기업이다. 철광석을 녹이는 고로가 고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열풍을 공급하는 풍구가 대표적인 제품. 글로벌 시장의 30%를 책임질 만큼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서울엔지니어링의 풍구는 이해양 대표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공고에 진학했지만 언젠가 대학에 가리란 꿈을 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무 살 청년에게 6개월 만에 들려온 회사 부도위기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병역특례와도 연계되어 있기에 이직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재기할 수 있다, 성실하니 생산관리를 해봐라, 공부할 기회도 주겠다’라는 설득에 남게 되었습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에서 5년간의 병역특례가 끝나자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을 배워오라는 특명이 떨어졌어요. 풍구 제작 기술이었죠.”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으로 눈도장을 찍은 새내기는 5년 사이 훌쩍 성장해있었다. 그도 회사도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던 시기, 당시만 해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풍구의 국산화에 도전장을 내밀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설비 국산화로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던 포스코와 수출 경쟁력을 키우고자 한 서울엔지니어링의 교집합이 풍구로 모인 것이다.
 

 

풍구 국산화에 이어 세계 최고로 도약

“일본에서 1년 7개월간 기술 연수를 받았어요.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었죠.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이는 저의 경영 철학으로 발전했고요.”
 

기술제휴를 통해 풍구의 국산화에 성공한 서울엔지니어링.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철강업계 세계 1위 포스코에 납품하는 기업’이라는 명성은 기술력에 대한 보증수표가 되어 세계 시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때부터 이해양 대표는 해외영업 전문가로 변신해 제철소가 있는 곳이라면 미국, 유럽은 물론 인도, 브라질까지 세계 곳곳을 누볐다.
 

 

“유럽에서의 장기 출장이 끝날 즈음 급하게 일본 출장이 잡힌 적이 있어요. 아내에게 미리 연락해두고 인천공항에서 만나 짐만 바꿔서 다시 비행기를 탔죠. 출장 기간별로 싸야 하는 짐이 다 정해져 있었거든요.”
 

출장 중에 라면만 먹다 보니 위장병을 얻고, 장시간 비행으로 허리와 목, 어깨가 굳는 고질병도 생겼지만 깐깐한 세계 시장을 뚫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풍구의 불량이나 손상은 고로의 운행을 멈추게 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에 완벽한 품질로 승부해야 했다.
 

이에 이해양 대표는 기존 풍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회사의 기술력을 한데 모은 결과 효율성은 높이면서도 손상에 강하고 수명까지 긴 ‘장수명 2중 풍구’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외형은 기존과 같지만 내부를 이중 구조로 만들어 외부 손상 시에도 외부 쪽 냉각수를 차단하고 내부에서 열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 고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도 안주하지 않은 덕분에 서울엔지니어링의 풍구는 세계 36개국, 180여 개 고로에 납품되고 있다.
 

 

숙련기술인 육성, 뿌리산업의 근간

이해양 대표는 요즘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출근한다. 2020년, 기능공으로 입사한 지 37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그는 딱딱한 권위를 무엇보다도 경계한다. 현장 기능공부터 기사, 주임, 계장, 대리, 과장, 부장, 상무, 전무, 대표이사까지 차근차근 밟아 올라왔기에 일터 구석구석을 잘 아는 그다. 덕분에 현장의 고충부터 중간 관리자의 고민까지 눈높이를 맞춰 진정성 있게 들여다볼 줄 안다.
 

 

“말단 직원부터 제가 쭉 걸어온 길이니까요. 진솔한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엔지니어로서, 경영자로서의 제 철학이 정직하고, 올바르고, 허물없는 자세입니다. 주조 또한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그의 경영 철학은 서울엔지니어링의 ESG 경영과 잘 맞물려 돌아간다. 거래처와의 상생, 지역 사회에 환원, 친인척 채용 금지 등 경영의 근간을 투명하고 단단하게 다지는 중이다. 특히 내후년 상장을 준비하며 기업 가치를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입사 40주년을 맞는 해에 200호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의미도 남다르다.
 

“지금까지는 회사와 기술을 키우는 데만 집중했는데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되니 후배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사명감이 커졌습니다. 대한민국 뿌리산업이 자꾸 해외로 빠져나가는 게 안타까운 현실인데요. 주조·열처리 산업이 우리나라에 50년, 100년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예비 숙련기술인 양성에 앞장서겠습니다.”
 

 

이해양 대표는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도 ‘한 우물’의 힘을 믿는다. 시련과 고비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한 분야를 파고든 이가 반드시 성장하고, 인정받는 성공담은 꿈이자 희망으로 빛난다. 뜨거운 열에 녹아 흐르는 쇳물이 담금질을 거쳐 결국 단단한 강철이 되듯, 스무 살 기능공이 40년 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의 리더가 되듯 말이다.

 

업데이트 2023-12-13 20:23


이 섹션의 다른 기사
사보 다운로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