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즐기는 자의 손끝은 오늘도 부지런하다.
스물일곱에 입문한 배첩이 여전히 재미있다는
조경실 배첩 숙련기술전수자. 병풍과 액자,
서책과 두루마리에 담긴 아주 오래된 서사가 그녀를 만나
역사와 유물로 생명력을 연장한다.
예술과 기술로 덧댄 배첩
“배첩은 서사가 담긴 물건을 대상으로 하기에 인류 문명을 전파하고, 전통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특수한 역할을 했어요. 배첩이 없었다면 자연 산화로 심하게 손상되거나 소실되었을 테니까요. 기록의 역사와 함께하는 기술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있습니다.”
배첩(褙貼)이란 글이나 그림 작품을 감상하거나 소장할 목적으로 일정한 형식과 규격에 맞게 그 사방과 뒷면을 종이나 비단으로 덧붙이고 장식해 예술성을 높인 공예 기술을 말한다. 책, 족자, 두루마리, 병풍, 가리개, 액자 등 우리가 접하는 완성도 있는 만듦새는 모두 배첩을 기본으로 한다. ‘표구’와 ‘장황’ 역시 같은 말로 서책 표지에 무늬를 내는 일부터 병풍과 액자 제작을 위한 목공까지 다방면의 기술을 두루 익혀야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충북대 지류유물보존처리센터에서 만난 조경실 전수자는 무덤에 봉인되었다 세상에 나온 유물과 마주 앉아 있다. 곰팡이가 슬고, 군데군데 삭은 그대로를 원형으로 삼아 작업 중이다. 1994년 여성 최초로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을 갖춘 덕분에 그녀의 활동 범위는 넓어졌다.
원형을 지키고, 시간을 살리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작품 앞에서는 늘 겸손해진다는 조경실 전수자. 덕분에 그녀의 배첩은 선을 넘지 않는다. 원형을 살리되 가역성을 유지하는 보존복원을 원칙으로 신중하게 다가간다.
“유물은 단 하나잖아요. 잘 안 붙는다고 본드를 쓰고, 곰팡이 제거를 위해 화학제품을 사용하면 되돌릴 수가 없어요.
화학적·물리적인 변화를 최소화하며 언젠가 다시 손볼 수 있도록 남겨야 합니다.”
‘아는 한 사람을 속일 수 없다’라며 보이지 않는 섬세한 부분까지 진심을 다한다. 과학적인 재료 분석과 화학적 변화를 공부하며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장황 분야 1호 박사에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일한 경력까지 배첩에 온전히 몰두해 온 지 40여 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슴이 뛴다.
“도무지 지루하지 않아요. 중학교 1학년 가정 실습 시간에 수놓은 비단 천을 표구한 경험이 있어요. 쭈글쭈글한 천이 팽팽하게 펴진 모습에 깜짝 놀랐거든요. 20대 중반에 표구 강습 광고를 봤을 때 번쩍 그때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운명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