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가위 끝에는 온기가 머문다.”
기술보다 사람에 먼저 빠져들었다.
미용은 머리를 매만지는 섬세한 손기술만큼이나 상대와의 교감이 중요하다.
30년 넘게 전북 정읍에 뿌리를 내리고 미용 명장으로 성장한 서선민 원장은 사람이 좋아 미용사의 길을 택했다. 그 덕분일까?
기능대회로 다진 기술의 잠재력
“어머니께서 ‘여성도 내 일을 가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라며 미용사를 추천해 일찌감치 자격증을 준비했어요. 기술 하나를 배우면 바로 적용하고 싶어 옆집 언니들을 손질해 줬는데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 모습이 행복해 지금껏 미용실을 떠나지 않고 있답니다.”
1987년 자격증을 취득해 미용사의 길을 걸어온지 37년, 자신의 이름을 건 ‘서선민 헤어’는 초심 그대로 즐거움이 머무는 공간을 추구한다. 100% 맞춤형일 수밖에 없는 미용 기술을 섬세하게 연마해 손님의 만족을 이끌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수였다. 20대 초반부터 도전한 프랑스 MCB 세계대회와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은 기술을 체계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저녁 9시 퇴근해 먼동이 틀 때까지 마네킹과 씨름하며 기술을 익혔어요. 하루 3~4시간만 자고도 지치지 않더라고요. 대회 출전용 과제를 풀이하며 기술이 쑥쑥 늘었으니까요.”
실용과 예술이 어우러진 미용 기술을 향한 갈증은 늦깎이 대학 진학으로 이어졌다. 감각만 믿고 덤비는 기술이 아닌 이론적 토대 위에 통일성을 갖춘 실무 체계를 쌓기 위해서였다. 특히 미용대회 작품의 기술력이 실무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석박사 논문으로 입증하고, 입증 기술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형 교육을 개발한 것은 서선민 원장의 걸출한 성과다.
이주여성의 자립을 돕는 기술
작은 소도시에서는 대회를 준비할 곳이 없어 서울로 오가야 했어요. 그 불편함을 알기에 저는 정읍에 뿌리를 내리고 중고등학교 진로 교육은 물론 미용 대학교 강의, 소상공인 기술 전수, 산업현장 미용인 교육에 열정을 다했어요.
“가르치면서 저 역시 성장하더라고요.”
“기술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강조하는 서선민 명장에게 특별한 제자들이 있다.”
중국,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에서 온 다문화 이주여성이 기술을 갖춰 미용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스승을 자처한 것이다. 어려운 미용 용어를 쉽게 풀이하며 눈높이 국가자격시험 수업을 진행한 지 10년이 훌쩍 넘는다.
"저희 매장에서 채용한 직원 두 명은 각각 창업해 지역 소상공인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어요. 다른 매장에 취직한 학생들도 ‘잘 가르쳐 주어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들 실력이 뛰어나고 성실합니다."
미용인은 기술뿐 아니라 고객 서비스와 상담 역량, 경영 마인드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제자들과의 인연을 길게 이어간다. ‘명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웃어 보이는 서선민 명장은 이토록 사람에게 진심이다. 각기 다른 두상, 머릿결, 머리숱을 고려해 모류 교정을 기본으로 한 스타일링을 선보이고, ‘한올의 모발도 소중히’라는 원칙을 되새기며 오늘도 가위를 든다. 그 가위 끝에는 날 선 차가움이 아니라 성실하게 쌓은 37년 내공과 진심이 따뜻하게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