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기술의 빛을 담다
    시대와 소통하는 한복의 멋 대한민국 한복 명장 김명희
  • 600    

한복을 짓는 일은 시간을 잇는 일이기도 하다. 

전통 한복의 우아한 태 위에 과감한 자수와 화려한 색감을 더해

시대와 소통하는 김명희 명장.

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아 한복을 짓고,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옷을 디자인하는 그녀는

오늘도 한땀 한땀 수백 년 한복의 맥을 잇는다.

 

체형 맞춤형 한복, 한 끗의 차이

“누구나 한복 한 벌은 손수 지어 입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입문서를 내고 싶어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거든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가 해왔듯 말이죠.”

 

김명희 명장은 바느질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던 시절, 어머니의 소문난 솜씨는 부업을 넘어 한복집으로 발전했다. 잠시 일을 돕던 김 명장은 어느 순간 한복에 스며들었고, 1990년 어머니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최고의 스승이었죠. 특히 인체의 앞뒤, 측면까지 입체적으로 살펴 신체 치수를 추가해 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몸에 착 감겨 옷맵시가 나면서도 움직임이 편한 한복을 어떻게 짓는지 제대로 배웠습니다.”

 

한복은 평면재단이 특징으로 신축성이 없는 옷감으로 선이 돋보이면서도 단아하고 기품 있는 옷을 짓기 위해서는 정교한 치수 하나가 중요하다. 넓고 빳빳한 깃이 목을 불편하게 감싸는 모습에 인체 공학적 디자인을 연구해 깃 특허를 낸 것도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고유의 멋을 살리면서도 입는 사람이 편안한 한복은 김명희 명장이 34년 동안 지켜온 원칙이다. 한복이 박물관에 갇힌 전통이 아니라 국악 무대에서, 결혼식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는 우리의 옷이기 때문이다.
 

 

전통의 지혜, 우리 시대의 한복

대구 대봉웨딩문화거리에서 ‘명클래식’을 운영하는 김명희 명장은 배움의 힘을 믿는다. 2001년부터 내리 일곱 번 출전한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이를 증명한다. 뛰어난 기술에도 체계화가 안 되어 늘 시간이 모자랐던 김명희 명장은 오히려 과정을 즐기며 기술을 다듬어 갔다.
 

 

“여러 기술인과 교류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기술을 다양하고 세밀하게 익히는 재미도 있었고요. 당시 선생님이 따로 없었다는 아쉬움이 컸기에 지도교사로서 가르치는데 진심이에요. 알고 있는 기술은 여과 없이 모두 전해주려 합니다.”
 

 

물론 조상들의 지혜만큼 놀라운 스승은 없다. 상주 동학박물관 복식을 재현하며 발견한 ‘접음솔’은 일제강점기, 조각 천으로 빠르게 홑옷을 짓기 위해 적용된 바느질법. 김명희 명장은 무궁무진한 바느질법에 감탄하며 다시금 전통의 저력 느꼈다.
 


 

“일상에서 전통이 숨 쉴 때 더 가치가 있고 오래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전통 한복과 시대를 반영한 한복이 함께 발전해야 하는 이유죠. 내 한복, 아이 한복 정도는 직접 지어 입는 문화가 생기길 바라봅니다.”

 

김명희 명장은 한복이 고루한 옷에 머물지 않고 대중 속에서 살아나도록 누구나 쉽게 바느질을 배우고, 누구나 쉽게 한복을 만드는 환경을 그려본다. 배운 만큼 나누고 싶다는 듬직한 스승의 바람이다.

 



업데이트 2024-09-09 21:26


이 섹션의 다른 기사
사보 다운로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