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에는 이유가 없다.
하나하나 섬세한 선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낙화의 길이 아직도 행복하기만 하다는 이성수 우수숙련기술자.
낙화가 내 인생이자, 내 인생이 곧 낙화라 말하는 그를 만나, 그가 새겨 놓은 38년의 낙화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끝없이 새로운 세상을 안내하는 낙화
낙화의 역사는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동장씨라는 여성이 한복 옷고름을 피던 인두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낙화의 첫 시작이다. 낙화는 인두를 불에 달궈서 종이나 나무, 가죽, 모시 등의 소재 위에 그림이나 문양을 그리는 전통 회화다.
“낙화는 흑백 사진과 비슷합니다. 인두를 잡은 손의 힘으로 섬세한 선을 표현하죠. 농도는 인두의 온도에 따라 달라져요. 뜨거운 인두를 나무에 가져다 댔을 때는 짙은 갈색의 강한 농도가 표현되고, 어느 정도 온도를 식힌 인두는 옅은 질감이 표현되죠. 이런 선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이 바로 낙화입니다.”
낙화를 보고 있으면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멀리서 볼 때 가까이서 볼 때 그림이 모두 달라진다. 각도에 따라 인물의 표정이 변화한다. 풍경도 마찬가지다. 산새가 드리워지고, 나무가 자라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화려한 색채가 입힌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낙화만의 매력이 있다.
절실한 마음 하나로 시작한 낙화의 길
“우연히 잡지에서 본 낙화를 배우고 싶어, 무턱대고 무형문화재 김영조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섯번 거절당하고, 여섯 번째 겨우 저를 제자로 받아 주셨죠. 낙화의 기술을 익히려면 수년이 걸린다고 하시더라고요. 보수도 적을 거라고요. 하지만 배워야만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요.”
국가무형문화재 136호 김영조 선생의 제자로 그는 낙화장의 길에 들어섰다. 묵묵히 홀로 걸어야 하는 예술의 길이 고단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잡아준 것은 그의 스승 김영조 선생이었다. 99가지를 참고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려 하냐는 선생의 말에 그는 또다시 인두를 손에 쥐었다.
“계속 낙화를 그렸지만, 무명 화가로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전승공예대전에 처음 작품을 출품하게 되었어요. 그때 출품한 작품이 ‘월출산마애불’입니다. 2년에 걸쳐서 정성을 다해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그 작품이 전승공예대전 입상을 하게 되었죠. 그게 낙화장으로서 첫 성과였습니다.”
그 후로 그는 전승공예대전에서만 다섯 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점점 낙화장으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숯에 달궈지는 뜨거운 인두, 구수하게 타들어 가는 나무 냄새, 섬세한 선들의 향연이 여전히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었다.
“낙화를 그린 지 올해로 38년째입니다. 한 가지 일을 수십 년 했다는 것은 그 일을 미치도록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적 미술 시간, 다른 아이들은 화려한 색을 입힐 때 저는 갈색 크레파스 하나로만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저는 낙화를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마치 운명처럼요.”
경기도 양평 용문산 초입, 수십 년 전 스승이 마련해준 ‘운전화랑’ 이곳에서 낙화장 이성수는 오늘도 낙화를 그린다. 2024년 우수숙련자로 선정된 된 후, 명장에도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쏟아버린 낙화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양평에 또 다른 작업실을 내려 합니다. 양평군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찾아와 낙화를 보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해요. 사람들에게 직접 낙화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요. 제가 사랑한 낙화를 널리 알리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할 마지막 도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