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조리 명장이 되기까지, 정통으로 걸어온 길
    2024년 대한민국 조리명장 동경(주) 송추가마골 조리총괄이사 왕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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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조리 명장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란 어쩌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과 동의어일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쉽게 얻을 수 없는 자리라는 이야기다. 2024년 대한민국 조리 명장으로 선정된 왕철주 명장도 그렇다. 1987년 처음 조리사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고 2024년 대한민국 명장에 오르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견뎌온 그에게 명장으로 가기 위한 그 행로에는, 오직 최선을 다하는 방법 말고는 왕도란 없었다.

 글 ㅣ 장희주 ・ 사진 ㅣ 김태윤

 

 명장에 오르기까지, 지난했던 기록들

왕철주 명장의 원래 꿈은 ‘선생님’이었다. 그런 그가 조리사를 시작하게 된 건, 그 시절 누구나 그러했듯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조리사라는 꿈의 시작은 미미했을지라도, 그가 조리 명장이라는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 경력은 꽤나 다채롭다.

 

 “1983년 군대에 입대하고 전역한 후, 바로 학습지회사에 취업을 했어요. 막상 일을 해 보니 선생님보다 영업직 일에 가깝더라고요. 제 적성과도 전혀 맞지 않았고,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요리 학원에 등록을 하고 4개월 동안 학원을 다니며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조리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시작은 63빌딩 대생기업㈜ 외식사업부에서였다. 처음부터 요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건 아니었다. ‘견습생’으로서 선배들의 조리 기구를 세척하고 주방 청소, 채소 손질과 같은 기본적인 일을 담당했다. 6개월 동안 도마와 칼을 잡아볼 기회조차 없이 ‘허드렛일’을 담당했고, 마침내 정식 발령을 받게 됐다. 하지만 발령 후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육수를 거르고 소스와 스프를 끓이는 작업을 담당했다. 조리사로서 당연히 거쳐야만 했던 수순이었다. 그렇게 근무하던 중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와 동시에 서울에서는 외국인 관광객과 선수단들을 수용할 특급 호텔이 대거 생겨났다. 마침 그는 인터컨티넨탈호텔의 조리사 공채 모집에 응시해 합격하면서, 호텔에서의 조리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호텔 양식 파트에서 근무하면서 소스, 스프, 기본 재료 등을 조리해 업장에 공급하는 역할을 했어요. 호텔에서 요리를 하며 본격적으로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었죠. 하지만 3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단순히 손으로 익히는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어요. 관련 학교나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죠. 특히 서양 요리는 용어 자체가 매우 생소했고 식재료도 엄청 방대했어요. 조리법이 다양하기도 했고요.”

 

누군가를 붙들고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어깨너머 지식을 습득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아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조차도 없었다. 그가 찾은 방법은 주방 바깥에서였다. 근무가 끝나면 그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고 기초적인 이론을 익히는 데 집중했다. 단순히 조리법을 익히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스스로의 한계를 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요리에 대한 열정 말고는 답이 없었고, 주방 안과 밖에서 사투를 하며 그는 조리사로서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갔다.
 

 

정직하게 쌓아온 노력의 결과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37년이 흘렀다. 63빌딩 대생기업㈜ 외식사업부에서 첫 발을 내디딘 후 그의 행로는 특급호텔, 컨벤션센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등 다양한 외식 산업 분야를 두루 거쳤다. 그 결과 양식은 물론 한식과 중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각 분야의 조리 기법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전문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 시도 안주할 수 없었다. 뒤늦게나마 조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9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2017년 호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외식조리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어 2019년 가톨릭관동대학 대학원에서 조리외식경영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며 학문적으로 깊이를 더해갔다. 이러한 학문적 여정을 이어가면서 대한민국 조리사로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 나갔으며, 조리사로서의 진가를 증명해 나갔다.
 

 

“학업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조리사로서 평생 이 일을 지속하려면 기본적인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조리사의 연령이 갈수록 어려지고 있는데, 그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과정에서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자격도 하나씩 쌓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나온 길을 보면, 어떤 술수나 편법 같은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조리사라면 의례 거쳐야 할 과정을 성실히 밟아왔고,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은 끊임없는 공부로 채워 나갔다. 자연스레 조리사로서 갖춰야 할 자격도 하나하나 취득해 갔으며, 2010년도에 조리기능장에서 2015년도에 요리직종 우수숙련기술자로 그리고 마침내 2024년 대한민국 조리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모든 것이 그가 정직하게 쌓아온 노력의 결과였다.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단순히 개인적인 성취로 여기고 싶지 않아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로보고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후배를 양성하고, 그들이 요리사로서 긍지를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 요리를 해야하는지, 성공한 조리사가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가르치고 설파하는 것이 이제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게를 운영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외식 산업의 발전이라는 공익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거는 편이, 명장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현재 그는 동경㈜ 송추가마골에서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우리 전통음식의 풍요로운 정서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세련미가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조리기법을 접목해 신메뉴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일하는 조리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용기도 북돋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보유한 레시피도 기꺼이 꺼내 보이면서, 명장으로서 으레 가야만 하는 목적지가, 바로 후배들이 있는 그곳이라 믿기 때문이다.

“매스컴에서 보여지는 모습만 보고 조리사 일을 쉽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열정을 품고 있어야 해요. 자신과의 싸움도 필요하고, 나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죠. 요리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함과 동시에 우리가 만든 음식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의 건강과 행복을 전하는 ‘식도락(食道樂)’입니다. ‘고객이 가족이라는신념으로 요리를 접하면 정성과 사람의 향기가 담긴 요리를 할 수 있다’는 프로페셔널한 자세가 없다면 맛은 물론, 음식에 담긴 정성과 진심도 전달되지 않을 거예요. 자신의 열정과 성실함을 바탕으로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여러분의 노력과 정성이 진정한 프로페셔널로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힘들 때마다 그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도전하며 성장해 나가세요."

 

그 곳에는 대한민국 조리 명장인 왕철주 명장이 함께할 것이다.

 

 

업데이트 2025-03-2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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