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을 만들고 사람을 키우는 사람
    제과제빵 명장 ㈜파파앤썬 BY랑콩뜨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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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명장은 제과 인생 30여 년 동안 손으로는 빵을 만들고, 마음으로는 사람을 키워왔다.
성심당 실습생으로 시작해 17년간 기술을 쌓으며 총괄 셰프 자리까지 올랐고, ‘건강한 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연고도 없던 경주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세 명으로 시작한 작은 가게는 성장했지만, 대기업과의 경쟁 끝에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다시 손을 잡아준 직원들과 함께 울산에서 랑콩뜨레를 다시 일구며,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냈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는 2024년 대한민국 제과제빵 명장에 오르는 영광도 얻었다.
무엇보다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그 여정은, 제과기술보다 사람을 남기며 걸어온 명장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평범한 학생에서 제빵사가 되기까지

1991년, 충남 논산에 위치한 논산공업고등학교 식품공업과에 입학하면서 이석원 명장은 제과제빵이라는 길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생 시절, 방과 후 제과점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그가 이 세계에 본격적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 실질적인 첫 경험이었다.

 

제빵사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은 1993년, 대전의 유명 제과점 성심당에 실습생으로 입사하면서부터였다. 매일 새벽 출근해 반죽을 만지고, 빵을 굽고, 매장을 정리하며 기술을 익혀 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시간이 그의 실력을 다졌고, 장인의 뿌리가 되어주었다. 실습생으로 시작한 그는 17년간 성심당에 몸담으며, 마지막에는 총괄 셰프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로, 열정으로 채운 청춘의 무대인 대전을 떠나 경주로 향한다.
 

 

그렇게 2009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주에서 그는 마침내 독립을 실현했다. 건강한 빵을 굽고 싶다는 신념 하나로, 직원 세 명과 함께 ‘랑콩뜨레’를 열었다.

 

“‘랑콩뜨레(Rencontre)’는 프랑스어로 ‘만남’이라는 뜻이에요. 저는 빵 한 조각을 통해 정말 많은 만남이 연결된다고 믿어요. 손님이 맛있게 드시고 웃는 모습을 보면, 그걸 지켜보는 직원도 보람을 느껴요. 또 그 빵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준비해준 분들과도 마음이 이어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빵 하나하나에 따뜻한 만남이 담기길 바라요.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해지는 그런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그의 제과 철학은 단순히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가장 기본에 충실하면서, 그 위에 ‘발효’라는 정성을 더한다. 특히 랑콩뜨레의 모든 빵에는 그가 개발한 콩 유산균 발효 기술이 들어간다. 18시간 이상 발효시킨 콩을 빵 반죽에 넣고, 또 이를 24시간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발효의 미학’을 강조하는 그의 고집이기도 하다.

 

“발효와 부패는 사실 한끗 하나 차이예요. 못 먹는 건 부패고, 먹을 수 있는 이로운 건 발효죠. 근데 그 경계를 아는 게 진짜 어려워요. 손맛이라는 게 있잖아요?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었는데도 어떤 사람은 맛있는 빵이 나오고 어떤 사람은 아니에요. 그 차이가 바로 발효예요. 저는 이 발효의 감각을 후배들한테 제일 많이 강조해요. 이건 기술만으로는 안 돼요. 결국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 그게 맛을 만드는 거죠.”

 

실패 후 찾아온 깨달음

최고의 제과점에서 일하고 총괄 셰프에까지 오른 뒤, 자신만의 브랜드를 런칭했지만 그 모든 여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세 명으로 시작한 제과점은 불과 3년 만에 직원 40명 규모로 성장했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 밀리며 부도 위기를 맞게 된다.

 

“밤잠 안 자고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의지만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저를 믿고 끝까지 함께해 준 직원들 덕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월급을 반납하고, 누군가는 적금을 깨서 도와줬어요. 거래처 사장님들도 꼭 다시 일어나라며 손을 내밀어 주셨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이 커서, 그때부터 전국의 제과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시장을 직접 보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요.”

 

한번 실패를 겪고 난 뒤, 그는 제과점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졌다. 예전에는 ‘왜 저 집은 성공했을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왜 저 집은 망하지 않았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과정에서 결국 ‘내가 왜 망했는지’에 대한 답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자신이 부족함에 있었다. 그때의 공부는 오히려 값진 결과가 되어 돌아왔고, 마침내 다시 직원들과 마음을 모아 울산에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랑콩뜨레의 발효 빵이 입소문을 타면서, 울산 현대백화점으로부터 입점 제안을 받았어요. 그렇게 랑콩뜨레는 백화점에 자리를 잡았고, 브랜드 가치 또한 점차 높아졌어요. 그 안에는 늘 묵묵히 곁을 지켜준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울산 현대백화점 입점을 계기로, 현재는 경주, 울산, 대구에 1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명장의 역할, 명장의 길

이석원 명장은 제과 기술 그 자체보다,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 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제과제빵의 길을 걸어오며, 후진 양성에도 깊은 애정을 쏟아왔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금메달, 은메달을 수상하며 국가의 이름을 알렸다. 특히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기술 전수에도 힘쓰고 있다.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시민베이커리’에서 교육을 통해 일자리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 행보를 인정받아, 그는 2024년 제과제빵 명장에 선정됐다. 준비 기간만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그는 제과 기술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돌아보며, 명장이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을 단련해 왔다.
 

 

“기술력이라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과제빵에서의 진짜 기술력은 결국 그 사람만의 노하우, 맛을 내는 방식, 제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특허만 열두 건쯤 갖고 있고, 그 기술들이 매장 제품 속에 다 녹아 있죠. 근데 그런 건 사실 당연한 거라고 봐요. 진짜 중요한 건 후학을 양성해서 이 산업 안으로 이끌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과제빵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그 친구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 제가 생각하는 기능인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장님들이 산업 현장에서, 또 서비스 현장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저는 그 안에서 저만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을 뿐입니다.”
 

 

명장이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후학을 키우고, 기술을 나누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좋은 작물을 직접 기르고, 그 재료로 건강한 빵을 굽는 일. 빵의 시작은 결국 땅이라는 걸, 그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에 건네고 싶은 또 한 번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업데이트 2025-05-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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