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년, 자동차의 진화와 함께 달려온 정비사의 길
    대한민국 자동차정비 명장 최 용 식 현대모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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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기계를 고치던 소년은 직업훈련원을 거쳐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까지, 오직 ‘노력’으로만 길을 닦았다. 끊임없는 연구와 열정으로 자동차 정비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사람, 최용식 자동차정비 명장의 이야기다.

 

손끝으로 닦아온 기술의 길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란 최용식 명장은 어릴 때부터 기계를 만지는 일을 좋아했다.

 

“공부는 정말 못했지만, 농기계를 고치는 손재주는 남달랐습니다. 동네 농기계가 고장 나면 제가 직접 뚝딱뚝딱 고쳤죠.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아버지가 ‘대학에 가기보다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워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따라 직업훈련원에 입소했고, 그때 처음으로 공부의 재미를 느꼈죠.”

 

그때부터 그는 자격증 공부를 위해 낯선 공학용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 외웠다. 그 과정에서 ‘알아간다’는 즐거움을 느꼈고, 그만큼 자신감도 자라났다. 직업훈련원을 마친 뒤에는 군에 입대해 기술병으로 복무했으며, 성실함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육·해·공군 본부의 장성 차량을 전담 정비하는 부서에 배치됐다. 그곳에서 그는 한층 더 넓은 현장을 경험하며 기술의 깊이를 쌓아 올렸다.
 

 

“전역 후에는 ‘더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야간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렇게 해마다 자동차 정비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 단계씩 올라갔죠.”

 

자동차정비 명장이 되기까지 그는 정식 교육 과정에 기대지 않았다. 모르면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이 기계를 모른다’ 싶으면 자료를 찾아 끝까지 파고들었다. 실습 장비가 필요하면 직접 만들어 썼다. 무엇보다 풍부한 현장 경험이 있었기에, 자격증 실기 시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기술을 갈고닦은 세월. 그렇게 쌓인 현장의 노하우와 독학으로 다져진 이론이 만나 그의 정비에는 세월이 만든 노련함과 깊이가 배어 있다. 그리고 3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동차를 만져온 그의 손에는 언제나 기름때가 스며 있다. 그 새카만 흔적이 바로, 그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다.
 

 

끊임없는 연구, 기술로 답을 찾다

자동차 정비 현장을 지켜온 세월 동안, 자동차는 ‘닦고 조이고 기름 치던’ 기계에서 첨단 전자장치로 진화했다.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등 전에 없던 기술이 쉴 새 없이 등장하면서, 그는 지금도 공부와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은 자동차도 AI와 IT가 접목된 디지털 시스템이에요. 정비사도 그 흐름에 맞춰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집니다.”

의사가 질병의 치료법과 약을 연구하듯, 정비사도 새로운 자동차에 맞춰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매뉴얼을 구해 분석했다. 포니, 르망, 에스페로, 제네시스까지. 웬만한 자동차의 정비 지침서를 모두 모아 공부했다. 이러한 집념은 결국 발명으로 이어졌다.
 

 

그가 직접 개발한 ‘하이브리드·전기차 고전압 배터리 셀 단위 진단기’는 셀 하나만 불량이 나도 팩 전체를 교체해야 했던 기존 정비의 비효율을 해결한 장치다.

 

“하이브리드·전기차 배터리는 휴대폰 배터리처럼 여러 개의 셀이 모여 하나의 팩을 이루는데, 각 셀의 전압이 일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셀 하나의 수명이 먼저 닳는 일이 생기죠. 기존 방식대로라면 그 한 셀 때문에 팩 전체를 교체해야 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폐기물 등 환경문제도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정비사가 빠르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회로 설계부터 안전장치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완성했다. 시중 장비는 5천만 원이 넘을 뿐 아니라, 지정사업소 외에는 판매조차 되지 않아 접근이 어려웠다. 그는 직접 설계에 나섰고, 3년에 걸친 개발 끝에 제작비 단 60만 원으로 장비를 완성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제 서비스센터 장비보다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그는 이 기술로 특허를 출원하고, 전국 10여 곳의 정비업체와 대학, 연구기관에 장비를 기증했다.

 

정비 현장에서 출발한 그의 기술은 이후 현장 개선을 위한 도구와 교재 개발로도 이어졌다. 차종마다 구조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라이닝 탈거 공구를 비롯한 여러 작업용 도구를 직접 만들었고, 신규 직원 교육을 위해 공정 리포트와 안전·법규 교재 50여 종을 제작했다.
 

 

“기술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공구와 자료를 나누면, 그걸 토대로 더 나은 기술이 탄생하죠. 결국 그게 우리 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입니다.”

 

그의 기술 개선은 자동차 디자인과 특허 분야로도 확장됐다. D컷 핸들,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계기판 구조, 다회전형 와이퍼, 길이 조절형 흙받이 등 총 3건의 특허와 다수의 디자인 등록을 보유하고 있다.
 

 

명장이 말하는 철학, ‘사랑’과 ‘열정’

현장에서 손끝으로 세상을 고쳐온 그는, 언제나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 믿음은 그를 2023년 대한민국 자동차정비 명장 선정으로, 그리고 2025년 숙련기술인의 날 산업포장 수상으로 이끌었다.

 

“발표 순간,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어요.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죠.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산업포장은 제게 ‘더 많이 사회에 환원하고, 후배를 가르치며, 숙련의 가치를 널리 알리라’는 명령처럼 느껴졌습니다.”
 

 

명장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는 단호히 조언한다.

 

“‘명장이 되겠다’는 목표부터 세우지 마세요.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정상 가까이에 서 있을 겁니다. 시간과 정성의 결이 다르거든요. 급히 쌓은 준비는 결국 빛이 바래요. 사랑과 열정을 담아 한 걸음씩 나아가세요. 그게 진짜 명장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선은 세계로 향한다.

 

“영어와 독일어를 배워 해외에도 기술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자동차가 해외에 많이 수출되어 있잖아요. 제가 쌓아온 공정개선 노하우와 교재, 특허를 해외 정비사들에게도 나누고 싶습니다.”

 

35년 동안 자동차의 발전과 함께 달려온 사람, 기름 묻은 손끝으로 산업의 심장을 지켜온 최용식 명장. 그의 여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누구보다 오래, 뜨겁게,그리고 묵묵히, 최용식 명장은 오늘도 말없이 엔진 옆에선다.

 

업데이트 2025-12-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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