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살아있게 하는 그 이름, 디자인
    소피아 아틀리에Sophia Atelier 김홍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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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로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씩씩한 디자이너

김홍경 대표가 의상을 작업하는 아틀리에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들어서 있다. 때문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늦가을 볕 아래 일렁이는 억새밭을 지나 구불구불한 산길까지 지나고서야 겨우 시작됐다. 번잡한 도시보다는 고즈넉한 자연의 품에 안긴 이 곳, 순천이 좋다고 말하는 그녀는 지난 2005년 핀란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드레스 메이킹 분야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당당히 동탑산업훈장까지 거머쥔 실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다. 주 종목은 드레스. 우리나라에서는 평생에 딱 한번, 결혼식 때나 입을 법한 옷이지만 파티 문화가 발달한 해외에서는 이브닝 드레스, 칵테일 드레스 등의 수요가 많다. 그녀가 별도의 외국어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외국인들과 거래하는 이유다.

“제가 만드는 옷은 스포츠댄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요. 가령 텔레비전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의 드레스는 정말로 화려하잖아요. 그런 옷들을 만드는 거죠.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해외에서 더 시장성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매 시즌마다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 발표하는 컬렉션을 참고해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내는 기성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옷을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굳건한 결심의 결과로 소피아 아틀리에Sophia Atelier가 탄생했다.

아직 고작 32살에 불과한 그녀는 2012년 (사)국제기능올림픽선수협회로부터 공로상을 받는 등 벌써부터 그 활약세가 심상치 않다. 두 아이의 엄마 역할까지 해내려면 힘들 법도 하건만,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 구상으로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 참 대단하다. 아이를 출산하며 아기와 산모임산부를 위한 홈드레스웨어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녀는 이후 주문제작 형식으로 옷을 판매해왔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발판삼아 조만간 새롭게 기성복 브랜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평소 집에서도 화려한 잠옷을 입는 편이에요. 빅토리아 시대나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 풍을 좋아하는데, 그런 스타일의 잠옷은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집에서 편안하면서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소규모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순조롭게 이어진 덕분에 론칭을 준비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된 거죠.”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출전과 함께 열린
패션 디자인의 길

의상학을 공부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적부터 원단, 미싱 등에 둘러싸여 자란 김홍경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동생을 위한 원피스를 만들어내 주변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 재능을 일찍이 발견한 어머니가 그녀를 패션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을 영국에서 보냈어요. IMF 이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했는데, 영국에서 받았던 교육이 인정이 안 된다는 거예요. 결국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됐는데 그즈음 어머니가 다니시던 광주패션디자인학원(現 광주직업전문학교)을 다니게 된 것이 제가 패션디자이너가 되는데 결정적이었죠.”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이 중학교를 다닐 무렵, 그녀는 양장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그 능력을 눈여겨보던 학원 원장선생님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져, 마침내 그녀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든든한 선배로서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후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당시 원장선생님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의 의상부분 베테랑으로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심사위원을 비롯해 분과장까지 역임하는 등 그 실력이 따를 자가 없을 정도였단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과 함께, 선배들로부터 제대로 된 기술을 전수를 받는 것이 핵심이다. 김홍경 대표가 광주지방경기대회 1위,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 등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은사의 도움이 컸다.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는 시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선택한 길이긴 했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며 아이디어 소스를 얻는 저로서는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인내심에 한계가 오는 것 같았죠.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없었을 거예요.”

유난히 밝은 기운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고는 겪어보지 않았을 것 같지만, 사실 그녀도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반 대학교에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한 적도 있었고, 디자이너로 전향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과연 이것이 나의 길일까 고민을 했다고.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를 붙잡은 건 단 하나였다.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때야 비로소 살아있음이 느껴진다는 것. 드레스 자락을 만들 때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찌릿한 전율은 결국 그녀에게 패션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었다. 


세계 패션 시장을 디자인하기 위한
그녀의 꿈

지난 10월 14일, 김홍경 대표는 그동안 갈고닦은 자신만의 패션디자인 능력에 대한 우수성을 인정받아 한국산업인력공단의 2015 숙련기술인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앞으로는 라디오 광고에서 혹은 지하철 지면광고에서, 숙련기술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에 대해 알리는 그녀의 모습을 우연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새롭게 디자인해 나가는 그녀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언젠가 해외에서 작업실을 내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아프리카나 인도같은 제 3세계에 말이죠. 좋은 면을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지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면직물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 나라 산업 전체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단순히 이윤창출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착한 기업,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싶어요.”

패션디자이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동경에 가깝다. 하지만 마냥 화려해 보이는 디자인 업계는 사실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임금 때문에 회사 입사 1~2년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 그러나 김홍경 대표는 나만의 능력을 전문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일인 만큼 그 보람 또한 남다르다고 강조하며,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덧붙였다.

“학생들이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대부분의 어른들이 대학 패션디자인과에 입학하면 된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대학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목표하는 시장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단순하고 실용적인 옷을 디자인하고 싶다면 유럽보다는 미국시장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거죠. 또 경쟁력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합니다. 수영복, 란제리, 한복, 웨딩드레스 등 다양한 영역 중에서 수요는 많지만 아직 발전되지 않은 분야를 찾는다면 더욱 막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옷을 디자인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김홍경 대표. 앞으로 그녀가 선보일 화려한 패션 세계가 기대된다. 


 

 

 

업데이트 2015-11-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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