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늘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소리 없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들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며 오가는 건물, 매일 사용하는 제품들의 겉면에는 모두 색의 손길이 미친다. 조광페인트는 그러한 색을 만드는 곳이다.
소리 없이 우리의 일상을 물들이기까지 누군가는 끊임없는 고민에 잠긴다. 물질 간의 반응을 일으키고 기록하고 변화를 살피는 치열한 노력의 순간들을 만나는 것이다.
시큰하게 코를 자극하는 페인트 향이 갈수록 진해지더니 이내 조광페인트 공장 앞이다. 오후 2시가 되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근로자들이 보이고 페인트를 한가득 실은 지게차들이 건물 사이를 오간다.
하루 24시간이 주어져도 모자랄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사이클에 학습까지 일상이 된 곳, 우리 생활 곳곳에 정착하여 조용히 색을 만들고 입히는 그 현장이 궁금해졌다.
기업실정에 맞는
일학습병행제 도입하다
조광페인트는 건축용, 공업용, UV&목공용, 분체, 플라스틱용, 전기전자재료용, 자동차보수용, 접착제 등 우리 주변의 모든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도료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국내 종합도료제조업체다. 부산에 뿌리를 두고 커온 지도 어느 덧 60여 년. 경영평가부문에서부터 고객 만족도까지 탄탄하고 내실 있는 기업으로 인정 받아온 지 오래다.
이러한 조광페인트가 일학습병행제를 추진하게 된 데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매년 대졸 신입사원과 연구원을 채용하면서 한달 간의 입문교육을 진행하지만 대학교육과 실무와의 차이를 좁히고 현장적응력을 높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다방면에 실력있는 인재들을 선발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실무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최적화된 인재가 필요하다.
재교육 비용이 기업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이지만 모든 기업들이 매년 비용을 들여서라도 신입사원들의 실무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수인 요즘이다. 이러한 가운데 조광페인트는 기업 실정에 맞는 일학습병행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현장훈련OJT과 현장외훈련Off-JT을 모두 기업 내에서 실시하고 있다.
연구개발분야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도료용 합성수지 제조 및 연구’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웠다. 일주일에 2~3회씩 1년에 600시간의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이러한 제도를 인사팀에서 직접 검토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연구개발분야의 신입사원들은 대학교육에서도 실험과 실습으로 내실을 다진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대학교육과 현장실무 간의 괴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신입사원 입문교육만으로는 바로 실무에 투입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요. 인사팀에서도 계속해서 해결방안을 고민하던 부분입니다. 신입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합성수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 실시를 검토하고 있었던 때에 일학습병행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조광페인트의 인력개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손형주 과장은 명목상의 도입보다는 실제로 조광페인트에 필요한 제도를 시범시행하며 조광페인트에 알맞은 퍼즐을 만들어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종합도료제조업체로서 전 직원의 도료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도료는 합성수지, 용제, 첨가제, 물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조광페인트에서 가장 먼저 튼실하게 해야 할 부분이 바로‘ 합성수지’에 대한 이해다. 도료의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하는 합성수지가 도료의 특징과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광페인트가 일학습병행제를 통해서 연구개발분야인력들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학습을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개발 인력의 내실을
탄탄히 다지다
조광페인트의 일학습병행제는 총 12개월 과정으로 현재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신입 연구원들이 입사한 시점부터 약 6개월 동안은 주 3회로 집중적으로 교육을 실시했고, 나머지 6개월 동안은 주 2회로 진행하여 그간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습득한 현장경험과 이론지식을 각자의 업무에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주 2회로 진행되는 수업은 대부분 합성수지에 대한 심화 실습이다. 조광페인트 건물 2층에 위치한 실험실에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이면 작업복을 갖춘 네 명의 학습근로자들이 바삐 움직인다. 동일한
작업 공간에 한쪽은 실제 업무를 하고, 한쪽은 교육 중이라는 점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코끝을 찌르는 화학물질의 냄새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분석과정일 뿐이다.
“공업용 아크릴 수지를 제조한 뒤, 합성된 수지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중입니다. 이때, 수지의 점도나 색상, NV(불휘발분) 상태를 확인한 후에 분석기기를 통해 수지의 Tg(유리전이온도)을 측정하고 분자량과 분자량 분포를 확인합니다. 기본적인 물성(물리·화학적 성질) 등을 평가하는 일이지요.”
실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송삼차 기술이사는 현장교사로서 왜 이러한 실무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주었다.
“일학습병행제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기업은 Off-JT와 OJT를 모두 현장에서 진행합니다. 제가 20년 넘게 이 분야에서 근무하면서 후배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노하우가 분명 있습니다. 저 또한
업무와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한 점에서 유익한 시간이라고 봅니다. 또한 도료의 기본적인 골격을 형성하는 합성수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지금 습득해놓으면 앞으로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점차 자신의 분야에 맞게 응용해나갈 수 있는 거지요.”
이러한 점에서 합성수지에 대한 심화 실습은 합성팀뿐 아니라 건축팀, UV목공팀 등 총 네 명의 근로자가 실험과 분석을 함께 한다. 이전에도 사내에서 다양한 교육들이 진행되었지만,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체계화된 교육프로그램 아래 선배들의 현장경험을 공유하고 실력을 쌓는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
이렇듯 20여 년간 현장에서 일한 현직 선배이자 실무 베테랑을 현장교사로 두고 있다는 점이 신입사원들에게는 기회이다. UV목공팀에 소속된 서도원 사원은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듯했다.
“20년차 선배를 통해서 직접 보고 배우는 중입니다. 일과 학습을 병행하면서 어려운 점도 분명 있지만 일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교재를 통해서 해결하기도 합니다. 저는 고분자 공학을 전공했지만 이것은 바탕이 되는 것일 뿐입니다. 현장에서 적용하고 연구해야 하는 영역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탄탄히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학습은 미래를 위한 알찬 투자다
실험도 중요하지만 이론과 평가의 과정도 중요하다. 실험이 끝난 후 학습근로자들은 책상에 앉아 오늘의 실험 결과에 대해 현장교사와 함께 이야기한다. 모두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풀어낸다. 합성팀, 건축팀, UV목공팀 등 다양한 분야의 피드백을 통해 오늘의 학습을 자신의 분야에 맞게 응용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총 600시간이라는 교육기간의 절반을 넘어선 지금, 일학습병행제를 통해서 무엇을 얻게 되었냐는 다소 딱딱한 질문에 합성팀 홍석의 사원의 유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합성에 대한 깊이는 있지만 여러 분야에 활용하는 부분은 부족했는데 다른 팀원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대학에서는‘ 과정과 방식’에 대한 훈련을 주로 했다면 기업의 원료에 따라서 실험해보면서 그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UV목공팀 김영재 사원의 답변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연구개발 분야라는 것이 새로운 것을 찾고 배합하여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일이잖아요. 신입사원으로서 회사에 매출을 좌우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이러한 과정이 앞으로 중요한 자리에 갔을 때 더 잘 해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습근로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일학습병행제를 통해서 기업에 맞는 실무를 배워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조광페인트의 실무교육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한편, 일학습병행제를 담당하고 있는 손형주 과장은 제도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리고 앞으로 개선해나가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내놓았다.
“일학습병행제를 통해서 사원들이 힘든 부분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학습시간이 있다고 해서 업무가 줄거나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교육을 진행하면서 실무능력향상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앞으로는 1년간 600시간의 교육을 진행하는 시스템에서, 학습시간은 기존대로 유지하되 교육기간을 대폭 줄여서 학습근로자들의 집중도를 높일 계획입니다.”
조광페인트가 일학습병행제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실무능력중심’의 인재다. 채용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아닌 기업실정에 맞는 일학습병행제로 차츰 변화를 시도해나가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앞으로도 제도 보완을 통해서 조광페인트만의 알맞은 퍼즐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인간과 환경 중심의 화학을 가치로 일상에 스며들 듯 자리한 기업, 조광페인트. 그 중심에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노력이 있기에 앞으로의 60년이 또다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