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미국 땅 한 번 밟아본 적 없던 내가 일본 도쿄와 미국 LA, 뉴욕 현지 점검 출장을 다녀왔다.
공단에 입사해 해외취업연수팀에서 국내 청년들의 미국 취업지원 업무를 담당하며 ‘선무당이 사람 잡지는 않을까’ 불안에 떨었던 날들을 뒤로 하고 5박 7일간 출장길에 올랐다.
그간 해외취업 지원자들의 많은 서류들을 검토하고, 나보다 많은 월급을 받으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취업자를 보면서 ‘나도 여기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번 출장길에서 만난 우리 청년들과 지원기관 관계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바탕으로 일본과 미국 같은 글로벌 선진국의 해외취업 실정(말 그대로 실정이다!)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해외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글. 홍의경 공단 해외취업연수팀 대리
일본은 아베노믹스 정책과 2020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으로 경기 활성화 노선을 걷고 있다. 유효 구인 비율(구인 인원 대비 구직 기업수) 1.3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일본은 이전의 소극적인 국제 인력 채용 경향을 벗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특히 우리 한국인의 우수한 언어구사 능력과 근성을 높이 사고 있기 때문에, 현지 IT업계는 꾸준히 한국인을 채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동안 그 규모는 지속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 현지기업의 이러한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뿌리 깊은 반일 감정과 방사능 오염 및 지진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현지취업에 성공한 우리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서도 “반한 감정으로 차별을 당하지는 않나요?”, “방사능 오염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죠?”라는 질문 등이오고갈 정도였으니 해외취업 희망자들의 선입견 아닌 선입견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취업자들은 유사한 외양과 아시아권 문화덕분에 이질감 없이 일본에 적응했으며 승진 등 인사에서 현지인과의 차별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IT업계 특성상 야근이 있는 편이나 야근수당을 철저히 지급받고 있고 사생활과 개인시간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에 만족하기 때문에 정착의지도 높은 편이다. 이외에도 일본은 근무환경이 안정적이고 뛰어나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직원복지나 임금격차가 크지 않아 중소기업도 직원에게 교통비와 기숙사를 지원하는 곳이 많다. 나이 어린 신졸자(신규대졸자)를 선호하지만 평생직장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일단 취업하면 고용형태가 안정적이다. 또한 육아휴직 후 일터 복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여성의 경력단절도 없는 편이다.
미국 취업 ‘손 닿을 듯 먼 곳에’
미국은 우리 청년들의 해외취업 선호도가 단연 높은 국가다. 연수 담당자인 나까지도 ‘미국’이라는 국가를 담당하게 된 것만으로 설렜을 정도였으니…. 연수 지원자들은 하나같이 지금껏 배워왔던 영어를 활용하고 실력 향상도 꾀할 수 있는 점, 자유로운 기업문화, 익숙한 정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동경 등을 이유로 미국 취업을 꿈꾼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의 동경과 달리 실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선 자국민 보호정책 때문에 비자를 취득하는 게 쉽지 않다. 모든 연수생들은 문화교류비자인 J-1비자를 발급받아 근무해야 하고 법적으로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담당할 수 없기때문에, 대부분 최저시급을 받으며 보조 역할에 머무르는 일을 하게 된다. 이마저도 기한이 보통 1년에서 최대 1년 6개월까지로 제한돼 있고, 연장도 불가능하다.
비자 수속 절차도 복잡하다. 고용주 인터뷰는 물론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하는 스폰서 기관 인터뷰와 대사관 인터뷰까지 이 모두를 통과해야만 비자가 발급된다. 수속비도 평균 500만 원으로 높게 책정돼 있다.
미국 현지에 취업한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할지라도 취업비자인 H-1B비자를 발급받는 건 더 어렵고 복잡하다. 취업처에서 직접 변호사를 고용하여 수속절차를 밟아야 하고, 비자신청을 하더라도 쿼터 제한(연간 8만 5천 개) 때문에 능력과 상관없이 큰 운도 따라야 하는데 작년의 경우 3: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한 한국 청년들은 주로 한인기업에 취업하기 때문에 업무 중 영어 한마디 하지 못하거나, 한국형 야근을 하기도 한다. 미국 현지 기업에 취직하더라도 비원어민으로서 느끼는 언어장벽과 인종차별로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다. 또한 귀국 후 경력이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어, 단순 경험이 목적이 아니라면, 미국 취업의 녹녹치 않은 현실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취업 연수생 선정 업무를 하다보면 국내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해외취업을 준비한다는 지원자를 왕왕 만나곤 한다. 대학시절 막연하게나마 ‘나도 중국에서 한국어 강사나 해볼까?’ 했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실은 겪을수록 어려운 게 해외취업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확고한 목표, 도전정신, 열정이 없는 상태에서 막연한 기대감과 동경심만으로 중무장한 지원자들에게는 해외취업의 실상(?)을 직시할 수 있도록 어렵고 힘든 온갖 사례들을 제시하며 ‘너 그래도 해외취업 할 테냐’고 시험하곤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해외취업지원을 해야 할까? 인턴시절 때부터 고민해 왔지만 좀처럼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했었다. 현지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학을 갓 졸업해 경력이 없는데다 기껏 일을 가르쳐 놓으니 1년 만에 귀국하는 외국사람을 선뜻 채용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출장을 통해 그 묘수를 찾았다. 현지 취업처나 간담회에서 만난 취업자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그들은 언어 전공자나 관련 직무 전공자로서 꾸준히 해외취업에 관심을 가져왔거나, 해외취업에 관심을 가지게 될 만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연봉 3000만 원을 받고 물류회사에서 일하는 최정희 씨는 국내 동종 업계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K-Move스쿨을 통해 영어능력을 보완하여 조기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국내기업 재직 때부터 해외취업을 염두에 두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으며, 현재도 정식 취업비자 전환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영남전문대학 출신 김현재 씨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해외취업 관련 특강을 듣고 일본에서도 인정되는 자격증을 취득하여 졸업과 동시에 해외취업의 기회를 잡았다.
두 번째, 그들은 남들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훨씬 더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며 도전적인 경향을 보인다. 현지 IT업계에서 한국인 1호로 근무하고 있는 진세연 씨는 국내 굴지의 여행사나 대기업에 합격하고도 남들과 차별화된 경력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해외취업을 선택했다. 취업에 성공한 이후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신규 고객을 유치했고 현재는 회사에서 그를 롤 모델 삼아 매년 한국인을 채용할 만큼 뛰어난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글로벌 번역업체에서 근무하는 이민선 씨는 ‘해외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어디든 신입사원은 힘들죠.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웃으며 당차게 얘기한다.
미국연수에 대한 어려움을 안내받고 ‘이렇게 열악한 해외취업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과는 출발부터 마음가짐이 다르니 결실이 다름은 자명한 일일 터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해외취업에 성공하는 이들은 국내취업의 차선책으로 해외취업을 준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국내취업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인
것이다.
1년 전 공단 입사 면접 대기실에서 떨고 있을 때 인재개발팀의 한 직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Best Person’이 아니라 ‘Right Person’을 뽑는다고. 해외취업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있다 해도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내가 좋아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일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신감과 열정, 도전정신이 있을 때 성공적인 해외취업의 길은 열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번 출장길에서 확인한 것은 그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