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펙 인플레이션 시대. ‘서류광탈(빛의 속도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것)’은 너나 할 것 없는 모두의 얘기가 됐다. 현직자 취업 멘토링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코멘토’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약 2만 건의 자기소개서를 분석(현직자 평가)한 결과 45%가 5점 만점에 4점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5점 만점을 받은 지원서도 10%나 됐다. 무난한 자기소개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다.
자기소개서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지원자들이 경험과 소감을 지나치게 부풀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현상을 두고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이란 말도 생겨났지만, 허구인 소설을 쓰지 않고도 ‘통하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전략은 있다. 3월 8일 청년희망재단에서 열린 취업 멘토 특강의 주제는 ‘2만 건의 현직자 피드백 데이터로 알아보는 채용, 그리고 자소설’이었다.
“미디어에선 서울대 출신에 풍부한 인턴과 봉사활동 경험,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를 지닌 지원자가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사례를 들어 취업난을 부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내가 최고경영자(CEO)라면 이러한 조건만 보고 과연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개 사람들은 스펙(서류), 인·적성 검사, 자기소개서, 면접 전형별로 지원자를 점수화해 총점이 높은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채용은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닌, 앞으로 30년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총체적 과정이다.”
이재성 코멘토 대표는 이같이 말하며 채용 준비는 그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합격 여부가 확실한 인·적성 검사를 제외하고 이력(스펙), 자기소개서, 면접 평가는 면접관의 주관적 의견이 주가 되기 때문에 지원자는 무조건적인 고스펙을 쌓기 위한 노력보다는 기업의 인재상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에서는 어떤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할까. 정답은 ‘나(기업)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성계 컴퍼니가 있다고 치자. 고스펙을 가진 정몽주 지원자와 그보다는 아래인 정도전 지원자가 있다면 회사는 정도전을 뽑는다. 그보다도 더 스펙이 떨어지는 하륜도 뽑는다. 이유는 이들의 가치관, 즉 정몽주와는 다른 세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강점은 한두 가지에 집중할 것
상대방 비교 아닌 자신 역량 가운데서 찾아야
이 같은 이유로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강점(역량)을 기술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예를 들어 리더십이 강점이라고 할 때 누군가는 이를 선두에 서 팀원을 이끄는 것으로 정의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뒤에서 팀원을 포용하는 것으로 각자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A사의 노트북은 인텔 코어 프로세서로 빠르고 가벼우며 배터리 용량도 크고 내구성도 좋아요.”
“B사의 노트북은 디자인이 끝내줍니다.”
위의 글을 보고 어떤 회사의 노트북에 끌리는가. 수많은 장점을 나열한 A사 노트북보다 한 가지 장점만을 어필한 B사의 노트북에 끌릴 확률이 크다. 이는 자기소개서에 그대로 적용된다. “많은 지원자들이 한 가지 역량만을 강조하면 다른 능력은 떨어지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이것저것 장점을 늘어놓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모든 장점이 희석된다.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의 특성 중 중요한 것 한두 가지에 집중하라”라는 게 이 대표의 조언이다.
자신의 강점은 강점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을 뽑은 뒤 그 근거를 적어보면 논리적으로 가장 확실한 한두 가지를 찾을 수 있다. 이때 강점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닌 내가 가진 역량들 간의 비교를 통해 찾아야 한다. 이 대표는 “어차피 한 명의 직원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는 만큼 조직 안에서는 가장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하위 역량은 개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게 바로 조직의 교환관계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완벽주의’, ‘꼼꼼함’처럼 자기소개서만으로도 쉽게 검증할 수 있는 것은 강점으로 꼽지 말라고 덧붙였다.
자소서는 상대 설득하는 ‘논설문’
제삼자 통해 자신 검증해볼 수 있어
최근 자기소개서는 항목이 다양해지고 분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이재성 대표는 핵심은 지원 동기, 역량, 가치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성장 과정을 묻는 질문은 성장 과정 그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형성된 역량이나 가치관을 묻는 것이라는 얘기다. 세 가지 답변 요소 중 선택은 지원자의 선택이다. 각 문항마다 어떤 요소를 드러내 이 세 가지를 모두 설명할지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다.
지원 동기는 자기소개서 항목 가운데 지원자들이 가장 쓰기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다.
“자기소개서 분석 중 지원 동기에 대한 피드백의 40%가 ‘지원 동기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성 간에 ‘내가 왜 좋냐’고 물었는데 ‘난 너에게 엄청나게 잘해줄 수 있어’라고 대답하면 ‘아니 내가 왜 좋냐’고 다시 물어보지 않겠나. 지원 동기에 자신의 역량을 쓰면 안 되는 이유다. 회사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관한 것도 안 된다. 그건 직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지원 동기는 경험에 기반을 두면 가장 좋다. ‘예전에 어떤 경험을 해본 결과 이런 게 힘들었고 이런 게 좋았다, ○○회사는 그런 것을 경험하고 성장시켜나가는 데 좋다’는 식이다. 경험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자신의 미래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지원 회사에 대해 구체적인 지원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닌바, 이 대표는 “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도 작은 신생기업이기 때문에 항상 지원 동기를 물어봐야 하나 고민한다”면서 “하지만 예전부터 생각은 안 해봤더라도 지원한 그 순간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 물어본다. 자신이 다니고 싶은 회사는 이러이러한데 이 회사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도로 무난하게 표현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자기소개서는 ‘논설문’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지원 회사에 걸맞은 사람임을 주장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는 무엇보다 주장을 분명히 하고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거다. 입사 지원 전에 제삼자를 통해 자신을 검증해봐야 하는 이유다.”
이재성 대표가 말하는 ‘채용과 자기소개서 쓰는 법’
• 사람을 뽑는 과정은 계량화돼 있지 않다. 기업은 30년 이상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한다. 즉 역량이 뛰어난 동시에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원한다. 자기소개서에 반드시 자신의 가치관을 기술하라.
• 대부분의 불합격은 물음표에 의한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라.
• 강점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게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한두 가지다. 강점의 정의와 근거를 확실히 하라.
• 자기소개서는 ‘논설문’이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설득력이 있는지 반복적으로 검증하라.
• 대부분의 불합격은 물음표에 의한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라.
• 강점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게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한두 가지다. 강점의 정의와 근거를 확실히 하라.
• 자기소개서는 ‘논설문’이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설득력이 있는지 반복적으로 검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