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도씨를 넘나드는 고온에서 제 몸을 다해 견뎌내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 도자기.
도자기를 일컬어 ‘불의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움만큼은 불이 아닌,
‘흙의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다. 김진량 통도요 대표에게라면 더욱 말이다.
글. 김혜민 / 사진. 이승훈
전통 도자기 계승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
‘흙’의 가치를 탐하다
입을 따라 둥글게 떨어지는 배를 지나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그리고 아래로 이어지는 우뚝 선 다리까지. 도자기의 매끈한 곡선을 좇는 사람들의 눈길이 경탄으로 번진다. 곁에서 지켜보는 김진량 통도요 대표의 표정이 꼭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그것만 같다.
“다 내 가족 같고 자식 같습니다. 도자기 하나 만드는 데만 손이 62번 이상 가니 정이 많이 들법하지요. 그래서 작품을 보낼 때는 ‘시집 보낸다’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보낸 후에도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지를 항상 생각하죠.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도자기는 그 모습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모습과 빛깔이 달라지거든요.”
무생물인 도자기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화한다는 것은 얼마나 낯선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 재료가 온전히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훨씬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 땅에서 나는 건강한 흙과 물, 나무를 사용해 살아 숨 쉬는 도자기를 만들고있다.
“도자기 제작공정을 흙 반죽을 빚어 굽는 것 정도로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특히나 전통 도자기를 계승하는 도예가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흙 그 자체입니다.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공부하기전, 10여 년에 걸쳐 흙만 찾으러 다녔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도예 명장 천한봉 선생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전국을 헤매고 다닐 정도로 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그에게 비범함을 느낀 선생은 하나하나 흙에 대한 성질을 전했고, 그 배움을 바탕 삼아 그는 또 다시 흙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기본 토대를 쌓아가던 그는 스스로가 정한 기준을 겨우 넘어설 즈음, 제대로 된 우리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내면세계를 중시해왔습니다. 전통 도자기가 사기장의 고집을 요하는 건 당연한 일인 게지요. 재료를 선별하는 것도 그래요. 전통가마에서 소성과정을 거치는 동안 흙 본연의 색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자연재료를 잘 배합하죠. 유약은 최소한만 사용합니다. 청자가 청색이 도는 이유는 청색유약을 써서가 아니라 흙, 물, 불 등 자연재료들의 합에서 판가름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도자기를 통해 다시 만나는 과거,
조상들의 지혜를 읽다
김진량 통도요 대표는 주로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그릇을 살피고 연구하여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그릇들을 재현하는 일을 한다. 그가 전통도예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고향 통도의 그릇이 어느 샌가부터 하나 둘 사라져버려, 그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라 하니 스스로의 일에 대한 사회적 책무가 깊게 느껴진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을 뒤적이며 공부도, 실험도 많이 해봤는데 제대로 성공한 게 없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였죠. 시중의 책들은 대부분 일본에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었으니까요. 그때 제 스승이 되어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그릇이었습니다. 작은 도편 하나도 귀한 스승이 되죠.”
그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지만 도자기 전시는 가지않는다. 눈앞에 자꾸 새로이 변형된 그릇이 보이면 원래 전통그릇의 모습을 잊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형태가 변형된 그릇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이유 있는 장인의 고집. 이는 우리네 옛 그릇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릇 제작의 배경까지 이해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백토를 붓으로 찍어서 사발 입부터 안쪽 배까지 휙돌려 칠한 사발을 귀얄사발이라 합니다. 대부분 이를 단순한 장식이라 생각해, 우리 것을 배워갔던 일본인들은 이를 변형시켜 사발 안쪽 전체에 귀얄을 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전통그릇을 만들며 이는 조상들의 원래 의도와는 동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번에 최대한 많은 그릇을 굽기 위해서는 가마 안에 그릇을 겹겹이 포개어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소성과정에서 그릇이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않죠. 그러니까 귀얄을 친 것은 붙었더라도 쉽게 떼어낼 수 있도록 한 장치인 것입니다.”
모든 공정에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져 온 그의 호기심은 이렇듯 감추어져 있던 우리네 도자기의 비밀을 속속들이 풀어오고 있는 중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다
전통 도자기를 만드는 시간은 더디다. 재료준비에 3개월, 도자기 성형에 2개월 가량을 쓰고 굽는 시간까지 더하면 못해도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나간다.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일 년에 두 번이면 제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작품을 많이 하지 못하는 마음이 아쉽기는 해도, 진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단다.
“그래도 저 김진량만의 이름을 내 걸 수 있는 독특한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참 뿌듯한 일입니다. 흑점청자, 분청호족구름접시, 분청도화 같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전통이라는 기본토대를 제대로 쌓아 올려왔기 때문이겠지요.”
전통 도예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는 해외에서 현대 도자기로도 명망 높은 예술가다. 특히 나무틀에 도자 그림을 끼워 회화 작품처럼 벽에 걸 수 있도록 제작한 분청도화는 지난 2014년, 그가 영국 굿모닝 런던이 선정한 한국작가 초대전에 초청되면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닉 클레그 부수상은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분청도화의 신비로운 자태에 취해 작품을 소장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해외교류전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그의 작품은 지난 2015년 아랍에미리트에서 다시 한 번 큰 이목을 끌었다. 통도의 흙으로 빚어진 그의 찻사발을 보고 반한 만수르 왕세자가 그를 수도인 아부다비로 단독 초청한 것이다. 이렇듯 세계무대에서 우리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활약하고 있는 그이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아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요즘 젊은 분들이 외국그릇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몸에 좋은 그릇이라면 단연코 우리 조선사발인데 말이지요. 하지만 그것도 다 사기장으로서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진짜 전통 그릇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급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남은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