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9살에 불과했지만 1분 1초의 시간이 흐르는 것도 아깝다 생각했다는 그녀.
학창시절,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했음에도
4년제 대학 대신 전문대학에 진학해 조리학을 전공한 건 그런 이유였다.
그 열정을 발판삼아 지난 2년간 해외에서 한식을 만들어 온 그녀는
이제 메뉴개발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식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글. 김혜민 / 사진. 이승훈
꿈 많은 청춘, 한식에서 길을 찾다
또래 친구들이 한창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홍콩행 비행기에 오른 이십대초반의 앳된 소녀, 김다희. 그녀를 이끈 건 부모님이나 교수님의 설득이 아니었다. 그저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편견을 극복해, 제대로 된 한식의 세계화를 일구어 내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이었다.
“원래 식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외국어도 꾸준히 공부해왔기 때문에 언젠가 식품무역업에 종사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꿈을 키우고 있었죠. 그런데 결국 식품무역이라는 것도 직접 눈앞에서 음식을 접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연관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해외 한식당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는 미래를 그려보게 된 거예요.”
사실 그녀는 요리에 앞서 세계를 무대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이 더 컸다.
“요리를 배워보겠다 결심은 했지만 다시 한참을 고민했어요. 당연히 4년제 대학에 진학해서 요리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휴학이라도 한 번 했다가는 여기서 시간을 다 허비하겠구나 싶었죠. 저는 한시라도 빨리 한식으로 우리나라를 알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전문대학 조리학과에 진학했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든 해외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냈어요. 각국의 생소한 요리들까지 먹어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죠.”
새로운 시작, 한식과 함께 세계정복에 나서다
어릴 적부터 해외취업을 꿈꾸며 꾸준히 외국어 공부를 해 온 그녀지만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외취업에 관한 한, 그녀는 친구며 선배들 사이에서도 단연 선구자였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과연 내가 외국에서 제대로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잠시. 특유의 씩씩함을 회복한 그녀는 홍콩의 몇몇 한식당에 직접 이력서를 제출했고, 화상면접까지 통과하며 새로운 인생을 위한 도전의 문을 활짝 열었다.
“홍콩에는 총 3개의 공용어가 있는데 영어, 광동어, 만다린(중국 표준어)이예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홍콩 현지를 비롯해 태국, 네팔 등 다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당연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죠. 특히 광동어와 만다린이 비슷하겠지 생각했던 저는 광동어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영어나 만다린은 공부한 적이 있었지만, 광동어는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국적은 달라도 어디서나 진심은 통하는 법. 특히 순번을 정해 서로의 식사를 돌아가며 만들었던 경험은 서로 간의 친밀도는 물론, 식문화를 나누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로 불고기를 많이 꼽아요. 그래서 저도 불고기 요리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했죠. 힌두교, 이슬람 등의 종교 문제가 얽히니까 요리재료에 제약이 생기더라고요. 소고기 혹은 돼지고기를 못먹는 사람, 닭고기만 먹는 사람 심지어 채식주의자도 다 같이 섞여 있으니까 난감했죠. 결국 나중에는 같은 요리를 만들어도 각자의 취향별로 맛볼 수 있도록 재료와 레시피를 다 다르게 해서 만들었어요. 손이 많이 가긴 했지만, 식문화 교류나 실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측면에선 정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서로의 집에 방문해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까 정말 돈을 주고도 못 살 경험을 한 거예요.”
두 번째 도전, 세계화를 일구는 그날까지
홍콩에서의 1년을 무사히 마무리한 그녀는 다시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렸다. 월드잡을 통해 구인기업을 찾은 그녀가 선택한 나라는 싱가포르. 영어, 만다린, 말레이어, 타밀어(인도어)까지 총 4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싱가포르에서는 그 언어 수 만큼이나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을 만났다. 남는 시간에는 재능기부활동의 일환으로 도시락을 만드는 봉사활동에도 참가했다고. 이렇게 모든 생활이 순조롭고 평탄하게 흘렀지만 그녀에겐 새로운 요구가 생겼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더 폭넓은 식문화를 접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서 조리사로서의 생활도 만족스러웠고요. 하지만 한계가 있었어요. 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식의 참맛을 알리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식당을 찾은 손님들에 한해서만 제 음식을 선보일 수 있으니까 부족함을 느낀 거예요. ‘메뉴개발자’로 전향하게 된 건 그런 이유예요.”
이후 국내의 한 식품기업으로 이직한 그녀는 현재 메뉴기획자와 함께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메뉴기획자가 음식의 콘셉트나 방향성을 정하면, 메뉴개발자인 그녀가 그에 맞는 음식을 개발해내는 식이다. 이제는 조리뿐만 아니라 계절별 식재료, 음식의 색감이나 영양소, 조리시간, 제조원가 등 요리에 관한 모든 것을 총괄할 수 있어야 하기에 매일
이 숙제 같지만 그녀는 행복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마음껏 할 수 있어서다.
“요즘은 주꾸미볶음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어요. 거의 한 달째 계속 재료를 바꾸어 가며 최상의 레시피를 찾고자 노력하는 중이죠. 내내 매운 주꾸미 요리를 먹었더니 위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까지 다녀왔을 정도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일이 너무 재미있거든요. 게다가 지금 회사가 아시아권 국가로 해외진출을 앞두고 있어서, 그간의 제 경험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꾸준히 실력을 쌓아 언젠가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