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아기 엄마의 외국항공사 승무원 합격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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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떨어져 살면 보고 싶지 않겠어요? 어떻게 아기 엄마가 승무원의 직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만약 승무원이 되어서 외국에서 산다면, 아이가 너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엄마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직업과 가정의 좋은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프로패셔널한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은 특별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아이가 보고 싶고 외로울 때마다 제 목표와 가족의 더 좋은 미래를 생각하고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의 초심을 기억하겠습니다. 이 다짐을 기억하며, 제 일에 애정을 갖고 가족에게도 당당한 아내이자 멋진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위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은 전 직장이 되었지만, 두살 아이가 있는 30대 아기 엄마를 뽑아준 고마운 저의 첫 번째 항공사 면접 때 받은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첫 번째 항공사 AIRASIA X(에어아시아 엑스 항공)에서 2여 년간 일했고, 지금은 ETIHAD AIRWAYS(에띠하드 항공-아랍에미레이트 국영항공사)의 객실승무원으로 아부다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5살 사랑하는 아이를 가슴에 한 편, 다른 한편에는 자랑스런 태극기를 품고 하늘을 날고 있는 저의 해외취업 스토리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제 1장. 내 인생의 결정적 한 순간

저는 29살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한 뒤, 외국계 회사에서 비서로 있던 저는 출산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이기 때문에 산후 휴가신청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열심히 몸 바쳐 일한 회사를 그렇게 억울하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TV에서 팔짱 끼고 보기만 한 일이 저에게 일어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자주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첫돌이 되기도 전에 까무러치게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을 내 집 드나들 듯 해야 했으니까요. 신생아이기에 실비보험 하나 없이 1인실 병실을 사용해야했고, 남편의 벌이가 고정적이지 않아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저로서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한 순간 한 순간이 위기였고, 그때 제 나이 겨우 서른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막막하다가도 또 금방 나아서 해맑게 웃는 아기를 보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와중에, 우연히 아이를 담당했던 여의사 선생님과 사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산후휴가에서 돌아왔다며 아이가 자기 아이와 동갑이라며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대해 주셨습니다. 그때 그 흰 가운을 입고 엄마로서 당당히 일하는 그 선생님이 왜 그리 멋지게 보이던지요. 해고 당한지 얼마 안 되어 의기소침해졌던 것도 있었지만 아이가 아플 때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무능한 엄마인 것 같아 4개월 아이 앞에서 부끄럽고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진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마음 속 선명한 외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 순간 저는 오랫동안 미뤄뒀던 숙제를 펴보듯 처녀적 꿈을 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결혼과 출산으로 접어둘 수밖에 없던 외국항공사 승무원이라는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습니
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30대 애도 있는 아줌마고. 아직 출산 부기도 안 빠졌는데. 질문과 의심은 많았지만 품에 안겨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습니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상한 큰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 맞아, 나는 이제 고작 30살이고! 건강해.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진 않지만, 연습하면 되잖아!’
저는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오던 날 약을 먹어 곤히 잠든 아이 앞에서 아무도 모르게 승무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2장. 달려라 엄마

그것 아십니까? 비행기는 상공으로 날기 전 활주로에서 시속 약 600 km로 달립니다. 이것은 현재 지상에서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라고 합니다. 저는 그때 이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날개를 가슴에 품고, 남들보다 한참 뒤쳐진 격차를 좁히기 위해 한 시간을 열 시간처럼 달렸습니다. 당시 한국 항공사에선 20대라는 나이제한이 있었고, 외국 항공사에서도 30대가 넘어 승무원에 합격한 사례는 흔치 않았습니다. 특히 아기 엄마로서 합격한 경우는 전무후무 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호주대학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한 저는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만의 전공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외국항공사를 목표로 하되 아이와 자주 만날 수 있는 한국과 가까운 동남아시아쪽 항공사를 위주로 준비했습니다.

일단 4개월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파트타임으로 맡기고, 10~12시까지 신촌에 있는 승무원 면접대비 스터디에 참여했습니다. 지하철 오가는 시간은 저에게 독서실이자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실직한 저는 돈과 차비를 아껴야 했기에 아침 점심은 언제나 편의점 김밥 한 줄로 대신했고, 쟁쟁한 20대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면접 답변, 예습·복습을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남편과는 주말부부였기에, 4개월된 아이를 주중에는 혼자 봐야 했습니다. 때문에 집안일에 아기 돌보기 등 모든 것을 해치우고 나면 아이와 같이 쓰러져서 9시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매일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만 모유 짜기, 아기 젖병삶기, 집안일, 그 외 스터디 시간까지의 과제를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꿈꾸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의 저자이기도 한 김미경 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절실한 일이 있으면 새벽 4시에 일어나 보라고. 4시라는 시간은 절박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만이 깨어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시간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절박한 제 꿈이 4시 알람을 한번도 놓치지 않고 일어났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제 삶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승무원이 되는 길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1차 면접을 20번도 넘게 떨어진 것 같습니다. 보통 승무원 면접이 3차까지 있다는 걸 감안하면 저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셈입니다. 전부 제나이와 기혼여부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훨씬 예쁘고 쟁쟁한 20대 지원자도 많은데 나이 많은 아줌마를 뽑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1차 인터뷰 통과도 못한 제가 어느 순간에는 심각하게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열심 가지고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낼 순 없겠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했던 부정적인 생각이 발목을 잡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30대 아줌마지만,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진 못하지만, 나만의 무기를 만들고 뽑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뚜렷하다면 합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교과서처럼 그럴싸한 답변이라도 면접관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답입니다. 저는 인터뷰 답변에 좀 더 진정성을 담기로 했습니다. 제 약점일 수 있는 엄마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매번 최종면접에서 아기문제로 떨어졌지만, 저는 엄마이기 때문에 절실하고 엄마로서의 승무원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어필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1차 면접, 2차 면접, 최종면접까지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합격 소식을 받은 날, 저는 아이를 안고 한 시간을 넘게 펑펑 울었습니다. 그때의 눈물은 합격의 기쁨보다는 열심히 또 최선을 다했던 나에게, 엄마 없이도 잘 놀아준 아들에게, 말없이 나를 믿어준 남편에게 보내는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제 3장. 더 큰 세상 더 큰 날개

에어아시아엑스항공은 세계최고 저비용(LCC) 항공사입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아시아 여러 나라를 비행하면서 국제 서비스인의 기본적인 소양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힌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풀 서비스 항공사로 이직해 서비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더 큰 날개를 품게 되었습니다. 에어아시아엑스항공의 한국인 승무원은 보통 4회정도의 인천비행을 받습니다. 밤샘 비행으로 한국에 도착하면 아이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를 재우고 밤 11시에서 12시까지 주4회 전화영어 과외를 받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화장하고 비행준비를 해서 7시 반까지 공항에 도착합니다. 외국 거주 시에도 토익공부, 영어 인터뷰 준비 등 계획을 세워 실천했습니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나이와 기혼여부를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몇몇 외국 항공사의 경우 나이나 스펙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곳이 있습니다. (보통 신생항공사가 그렇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도쿄에서 ‘에띠하드 항공 승무원 채용 공고’를 보았습니다. 에띠하드 항공은 이력서와 에세이를 인터넷으로 접수하면 서류심사 합격자에 한해 면접을 볼 수 있는 Invitation(초대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직승무원으로서 상공 전선에서 배운 점과 나만의 좋은 서비스의 정의를 잘 접목하여 에세이를 작성했고, 이력서도 정성껏 작성해 에띠하드 인사팀으로 보냈습니다.

3일 후에 서류가 통과되어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며칠 후 저는면접을 보기 위해 일본 도쿄로 날아갔습니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160명에 가까운 한국인과 일본인 등 여러 국적의 지원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수많은 훌륭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나를 어떤 차별성으로 어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160여 명의 지원자가 같은 패턴을 말할때 조금은 다른 시도를 통해 잊히지 않는 첫인상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로 나의 장점이 무엇일까? 30여 년간 살아오면서 느낀 나의 정말 솔직한 장점을 찾아 어필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힘들게 준비했던 나의 노력들과 고생하는 가족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더 멋진 서비스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그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기 싫었습니다. 그저 경험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제 자신의 나약함을 다잡았고, ‘그래, 오늘만큼은 하고 싶은 말 떨지 말고 다 하고 오자’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1차 면접은 이력서를 면접관에게 접수하고 가벼운 토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차 면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이 첫인상이 제 면접 전반을좌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퍼스트 클래스의 승무원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공손한 말투와 자세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의 작은 떨림과 직업에 대한 강한 열정이 면접관에게 긍정적으로 전달되었을 때, 저에게도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1차에서 160여 명 중 35명만이 통과했고, 2차 면접은 20명 정도 통과, 마지막 면접을 본 지 일주일 만에 최종합격 메일을 받았습니다.

저는 승무원이란 직업은 ‘외적인 아름다움 + 내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자신만의 차별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지원자들이 돋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만의 색깔이나 차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면접 준비와 외모에 대한 강한 집착보다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고 파악해 어필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약점 또한 극복하면 감동적인 나만의 스토리가 되고 그 과정들을 통해 나만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현재 알이탈리아항공(이탈리아 국영항공사) 통역승무원으로 이직하여, 다음 주면 이탈리아로 날아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로써, 세 번째 날개를 달게 되었네요. 사회적인 편견으로 보면 저의 사회복귀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이 평범하고 나이 많은 지원자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이라는 이름에서, 또한 엄마라는 이름에서 갖게 되는 성숙함과 강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갖고 있는 약점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저만의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는 이 말의 의미조차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정말 사서도 할 만큼 값진 것입니다. 그 고생들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적금처럼 하나 둘씩 쌓여 여러분의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고 더 높이 더 오래 날 수 있게 도와줄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업데이트 2016-07-2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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