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막에 핀 -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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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등록을 취소하시겠습니까?” 라는 버튼을 클릭해 버린다. 대학원 입학을 하루 앞둔 2014년 2월 28일,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던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아니라 갈 곳 잃은 나 때문이었다.

 

Chapter 1. 나, 길을 잃다

2005년, 전문대학 비서과를 졸업함과 동시에 대기업 비서로 근무를 시작하며 비정규직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퇴직을 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느꼈던 불안함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매일 12시간, 주말 근무까지 서슴지 않고 대기업의 업무체계를 배우며, 파견계약직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모두 누리자며 긍정마인드로 사회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계약이 만료된 후, 어학실력을 키우기 위해 곧장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곳에서 현지 경험과 더불어 어학 실력을 쌓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스물여섯 살, 재입사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바쁜 업무와 일정들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20대 후반이 되었다. 전문비서로서의 역량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하려던 찰나, 문득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전 세계를 누비며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승무원이 되리라 다짐한 적이 있었다. 한 번 머릿속에서 시작된 현실부정과 꿈에 대한 갈망은 어째서인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두 달여 간 고민에 빠졌다. 결국 고민 끝에 입학취소와 함께 퇴사결정까지. 그 당시 무엇이 나를 그렇게 확고하게 잡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의 20대라는 필름을 내가 주체가 되어 새롭게 연출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서른 살, 그 해 봄 나는 길을 잃었다.


Chapter 2. 서른,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여자 나이 서른, 한국 사회에서 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은 나이일 것이다. 동갑내기 30대 친구들과 동료들, 가족들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지만 보다 능동적인 내가 되어 30대를 맞이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꿈꿔왔던 항공사 승무원이라는 두 단어만을 가슴에 새긴 채, 막상 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앞이 막막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곧 나이제한, 성별제한, 학벌제한 등 확실히 자유롭고 오픈된 해외취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처음으로 해외기업 취업을 위해 찾은 곳은 한 유명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헤드헌터 회사였다. 회사 주관으로 싱가포르 현지기업 임원 초청 및 설명회를 열었고 해외취업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듣다보니 인턴 및 정규직 취업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학교를 등록하고 정해진 기간을 수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경력 있는 나로서는 메이저 기업에서 원하는 드림잡을 잡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할지를 밤새 고민하던 중 ‘월드잡’을 통해 K-Move 사업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월드잡에서 취업정보를 공유하고 멘토-멘티, K-move 스쿨 등 다양한 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외국 항공사 지병림 멘토를 통해 외국항공사, 중동항공사를 알게 되었다. ‘서른 살 승무원’ 이라는 멘토의 책을 접하며 조금 더 뚜렷하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에는 영어 토론 수업, 주말에는 영작문 수업, 오고 가는 시간에는 새로운 문장과 표현력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스터디그룹을 통해 다양하게 커리큘럼을 활용하며, 매일 한 개의 기사를 정리하며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고 모의 면접을 통해 실전에 대비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에서의 채용이 시작되었다. 바로 오픈 데이! 외국 항공사들이 한국에 직접 들어와 소수의 인원을 직접 선별하여 가는 방식이다. 처음 지원한 곳은 KLM 네덜란드 항공사! 정말 공들여 지원서를 작성하였지만 아쉽게 CV 이력서 탈락. 3개월 후 기다리던 중동항공사 카타르 오픈데이! 약 2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오픈데이로 CV 지원했지만 또 탈락. 셀 수없이 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다시 한 번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느꼈지만 이대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Chapter 3. 사막에 핀 꽃

중동 항공사 웹사이트에 들어가 채용정보를 확인하던 중 해외에서도 오픈데이가 열린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머뭇거림은 짧았다. 한 달의 준비 기간을 잡았고 꾸준한 면접 준비와 더불어 오픈데이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선택하게 된 목적지는 다양한 오픈데이를 경험할 수 있는 동유럽. 오로지 ‘열정’과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라는 생각으로 스위스 취리히로 떠났다. 처음 도착한 취리히에서 아랍에미리트 항공사의 오픈데이에 참여했고 약 150명의 지원자 가운데 마지막 5명 안에 들며 파이널 인터뷰를 치렀다. 첫 항공사 오픈데이부터 파이널 인터뷰를 보게 되어 독일 뮌헨과 폴란드 오픈데이는 아쉽게 포기해야 했다. 나와 관련된 서류들이 타 항공사에도 프로세싱 되기 때문이다. 그 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카타르 오픈데이에 참여하며 파이널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해외 오픈데이를 통해 놀란 것은, 그들은 국내의 지원자들처럼 획일화된 승무원의 태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른 지원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며, 소통해나갈 수 있는 지를 본다는 점이었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나 또한 해외 지원자들과 금세 친구가 되었고 면접을 즐기며 내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인터뷰 후 정확히 3개월 뒤! 항공권 티켓과 계약서가 도착했다. 항공사 입사, 해외취업을 준비한 지 9개월 만에 그렇게 골든 티켓을 손에 쥐었다.


Chapter 4. Shukraan 슈크란!

슈크란! 아랍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의미이다. 나에게 기회를 준 카타르 항공 슈크란! 용기 내어 여기까지 와 준 나에게 슈크란! 그렇게 손꼽아 오게 된 중동이라는 땅에서, 그토록 일하고 싶었던 항공업계에서 앞으로 머무를 약 몇 년은 굉장히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 종교, 사람들 그리고 오피스 업무와는 다른 육체적 노동, 서비스 마인드, 동료들과의 협력. 힘들어도 카타르 항공과 함께 성장해 갈 것이다. 서비스업계의 꽃 항공승무원으로서의 경험이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 큰 나침반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20대들에게 묻고 싶다.

"현재 내게 주어진 일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래 왔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공 때문에, 메이저 기업이기에, 급여가 높아서 등의 이유로 우리의 소중한 20대를 보낼 회사를 찾고 있다. 사실 100% 나의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항상 발전하기 위해 고민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지금 보내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해외 인턴, 해외 워킹홀리데이 등 많은 기회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고 나 또한 그러한 시간들이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더 크게 나아갈 수 있는 당신 자신에게 ‘전 세계’라는 보다 큰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지금 이 자리에서 느낄 수 없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게 될 것이다.

나이도 중요하지 않고, 성별도 중요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그 어떠한 차별 없이 노력과 열정만으로 잡을 수 있는 해외 취업으로 나는 제 2의 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업데이트 2016-08-1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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