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목표를 이루기란 간단하다. 노력하면 된다.그 단순한 진리를 실현하기까지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오로지 그 힘으로 금메달을 획득하기까지, 사제지간에 오고 간 밝고 경쾌한 뒷이야기!
시간과의 한판 승부수를 띄우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정보기술 직종 금메달 획득, 경남 15년 만의 쾌거, 국무총리상 수상….
열아홉 소녀에게 주어진 왕관의 무게가 묵직하다. 그러나 무게만큼 짜릿함이 배가 되어서일까. 눈에 띄는 경쾌한 발걸음이 즐겁다.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제51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정보기술 직종에서크게 선전한 정소연 학생 그리고 지도자 문철우 선생님. 이는 한일여자고등학교에 기능경기부를 창설한 이래 웹디자인에서 선전해오다 정보기술로 분야를 바꾼 이후 2년 반만의쾌거다. 5년 안에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깨끗하게 물러서겠다는 호기로운 다짐으로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사제지간이 만들어 낸 완벽한 성과에 주변의 박수갈채가이어졌다. 두 사람은 경기장 주변을 맴돌며 몇 시간 동안 경기결과를 기다리던 때를 떠올린다.
“선생님이 먼저 전화를 받으셨거든요. 갑자기 표정이 환해지시는 거예요. 원래는 긴장해서 회색빛이었는데.(웃음) 선생님이 “소연아, 금메달이다!” 하시는데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어요. 선생님도 후배들도 잘했다고 그랬죠. 솔직히 지금도 안 믿겨요.”
“금메달도 사실 굉장한 거거든요.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무려 15년 만이에요. 거기다 소연이가 국무총리상까지 수상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제 귀를 의심했죠. 그 순간의 보람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지난 3년여의 시간이 짧다면 짧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창시절의 전부다. 선생님은 그 점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시작한다면 끝까지 해낼 만한 근성이 있는지를 먼저 보았다. 그렇게 한 달 간 타자 연습부터 시작해 매일 정규 교과과정이 끝나는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대회를 앞두고는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줄곧 연습에 전념했다. 연습이라 할지라도한 문제당 세 시간씩을 할애해야 하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진득한 한판 승부. 3년여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목표한 바를 향해 승부수를 던진 순간, 그 노력이 엇나가지 않고 과녁에 들어맞았다.
나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다
정보기술 직종은 총 4과제로 대회기간 동안 한 과제당 세 시간씩 총 12시간 동안 경기를치른다. 종목은 제1과제 도큐먼트 프로세싱, 제2과제 JAVA 프로그래밍, 제3과제 스프레드시트, 제4과제 프레젠테이션. 이에 더해 대회 중간에 주어지는 변경문제까지 합하면 제한시간 내에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제2과제인 JAVA 프로그래밍은 공과대학 4학년학생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문제를 받았을 때, 어떻게 풀어내겠다는 방법을 빼곡히 적었어요. 그러면 중간에 여기서뭘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안 하게 되죠. 그때부터는 손만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어려운 제2과제를 풀면서도 자신 있었어요. 변경문제는 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확실히 구분했고요. 그 덕분인지 마지막에 시간을 2시간 20분까지 줄였어요.(웃음)”
“심사위원들이 지나가면서 그래요. 여학생이 저렇게 코딩 잘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기존문제 풀기도 버거운데 변경 문제까지 손을 대니까 대단한 실력이죠.”
물론 첫 대회부터 선전하지는 않았다. 작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는 제2과제가 JAVA 프로그래밍으로 변경된 데다 잔뜩 긴장한 탓에 48명의 선수 중 16위에 머물렀다. 올해 달라진 게 있다면 제2과제인 JAVA 프로그래밍을 기초부터 집중 공략했다는 것과 지독한 ‘연습량’이다. 아주 기초적이지만 시간 단축을 위해 중요한 타이핑부터 전지훈련을 통한 실력 겨루기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하루는 문제가 막혀서 다들 밤 11시까지 머리를 싸맨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학교 이사장님까지 애를 쓰셨고. 해도 해도 안 풀려서 다음 날 다시 해보자 하고 집에 갔는데, 아침에보니 소연이가 한숨도 안 자고 그걸 다 풀어온 거예요.”
“짜증나서 풀었어요, 화가 나서요.(웃음) 새벽 6시인가 될 때까지 풀었죠.”
“그때 표현은 안했지만 이놈 대단하다 싶었죠. 오히려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는 연습할 때였을 거예요. 시간을 더 줄여라, 속도를 더 올려라, 자극을 많이 했죠. 그런걸 이겨낼근성과 끈기가 있어요, 소연이한테는.”
기분 좋은 도전을 기약하다
처음 선택한 건 어릴 적부터 이어온 프로그래밍에 대한 단순한 흥미에서였다. 기능경기부지원자가 있느냐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손을 번쩍 들고는 해보겠다고 했다. 선택은 스스로, 그 책임 또한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감함을 더해. 그렇지만 이 길로 들어선 이상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숱한 대회에, 예상치 못한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켰기에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그래요. 힘들지 않느냐고. 그럴 때마다 후배들이랑 그러죠. “저희 하나도 안힘든데요?”(웃음) 정말 끝까지 밀어붙이면 돼요. 이번엔 스스로 연습을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했어요. 후배도 고등학교 2학년인데 벌써 9위권 안에 들어 우수상을 수상했죠. 준비가 된 상태라면 어떤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다하면 되니까요. 시작하려는 후배들이 있다면 그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1999년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한 선생님 역시도, 우려 속에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이라 말한다. 이끌어 주는 스승이 있고, 나날이 성장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야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아이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무래도 대회 준비를 하다보면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다투기도 하죠. 그럴 때 서로 간의 신뢰가 있으면 질책해도 그이유를 알기 때문에 그간 쌓아온 시간들이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 게 바탕이 되어서 이렇게 큰 결과를 얻었다고 봐요.”
이제 그들 앞에는 또 한 번의 기분 좋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다가오는 10월과 11월, 지난 해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승자와 2017년 아부다비에서 열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출전권을 둔 승부를 벌인다. 선생님은 그간의 노력이라면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소연이의 근성과 기질을 믿는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기분 좋은답변.
“지금처럼 과감하게 도전해보는 거죠. 경기 후에도 계속해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일과 공부를 할 생각이에요.(웃음) 청춘이라는 게 별 거 있나요?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에게만 ‘청춘’이라는 단어를 쓰잖아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고 즐기는 사람에겐 다 쓸 수 있다고봐요. 그렇다면 누구든지 청춘으로 살 수 있는 거죠.”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청춘. 무엇이든 해볼 만하다 말하는 그 얼굴에 싱그러운 웃음이 담긴다. 무엇이든 좋다. 아직 청춘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아까운 영글지 않은 젊음이기에.